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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란하마 Mar 31. 2024

영화 <위대한 레보스키> : 나도 듀드주의자이다

- 부랄 두 쪽 가진 사내들의 천국 

    


  결코 마초가 아닙니다. 먹고 자고 싸고 그리고 안단테로 숨을 쉬죠. 주머니에 들어있는 건 교통카드와 70년대 나온 문고판 이상의 <날개>뿐입니다.  나는 그렇게 듀드주의(Dudeism)의 길을 걷고 있습니다. 듀드주의는 자유로운 이념이면서 동시에 널널한 종교이기도 합니다. 라이프 스타일이기도 하죠. 깃발도, 상징도 없으며, 성전이나 십일조 같은 것도 없습니다. 슈퍼마켓과 볼링장, 지하철과 버스, 카페와 패스트푸드점, 중국집과 설렁탕집이 다 성지라고 할 수 있죠. 누구 눈치 볼 것 없이 꼴리는 대로 사는 겁니다. 삶의 구원이 거기 있었습니다. 밤낮으로 짓누르는 온갖 심리적 강박과 곳곳에 있는 지뢰 같은 제도적인 굴레에서 벗어나 해방이 된 거죠. 

  듀드주의자가 되려면 조엘 코엔 감독의 영화 <위대한 레보스키>부터 봐야 합니다. 거기서부터 시작되는 거니까요. 영화를 보는 건 경전을 읽고, 성지순례를 하는 거라고 할 수 있죠. <위대한 레보스키>는 일종의 정신적 마약이기도 합니다. 보면 볼수록 묘한 마력에 빠지니까요. <위대한 레보스키>는 인류의 불완전한 제도와 정의에 대한 대체적 조언인 게 확실합니다. 자유로운 해방구거든요. 

  <위대한 레보스키>는 레보스키라는 동명으로 백수 레보스키(제프 브리지스)와 억만장자 레보스키(데이비드 허들)가 얽히고설킨 해프닝이지만 잘 짜진 플롯과 다양한 캐릭터들이 보여주는 액션과 대사가 풍자와 위로, 웃음과 페이소스를 비빔밥처럼 얼버무려 영화적 즐거움을 무한제공합니다. 아직 못 봤다구요? 그럴 수도 있죠. 하지만 보고 나면 인생이 조금 달라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나처럼요.    



  영화의 인상적인 장면들을 정리해 봅니다.      


  첫째, 볼링장의 죽돌이인 듀드(이름은 레보스키이지만 결코 레보스키라고 부르는 법이 없음. 쨔샤! 딱 어울림)와 월터(존 굿맨), 도니(스티브 부세미)의 캐릭터가 멋진 조화를 이룹니다. 천하태평의 느긋한 듀드와 충동적이고, 과잉 감정인 월터. 그 중간에 끼어있는 유약하고, 소심한 도니. 세 인물의 캐릭터가 완벽합니다. 납치를 당하면서도 손에 든 술잔의 러시안 화이트가 쏟아지는 걸 목숨보다 더 중요하게 여기는 듀드. 볼링장에서 선을 넘었다고 총을 뽑아들고 점수를 0으로 하지 않으면 쏴버리겠다고 위협하는 월터. 그 사이에 끼어 언제나 주눅이 들어있는 도니. 이들의 일상은 볼링을 치고, 마시는 일입니다. 부인도 없고, 애인도 없는 오리지널 아저씨들이죠. 그런 듀드의 평화로운 일상이 집에 쳐들어온 낯선 사내들로 인해 무너져버리고, 낯선 세상으로 기행을 떠나게 됩니다. 결혼도 하지 않은 듀드에게 찾아와 다짜고짜 아내가 빌려 간 돈을 갚으라고 하면서 머리를 양변기에 처박아 고문을 하고, 러그(rug-깔개) 위에 방뇨를 하는 것으로부터 사건이 시작됩니다. 그런데 정작 중요한 건 사건의 기승전결이 아니라 현재적 장면과 스토리를 편하게 즐기면 그만입니다. ‘처음-중간- 끝’에 얽매이지 않고 그들이 벌이는 아이러니한 향연의 흐름을 좇으면 됩니다. 



  둘째, 오프닝 씬이 눈길을 끕니다. 사막에서 구르는 덤불(tumble weed)이 L.A.까지 굴러 들어오고, 염소수염에 아무렇게나 기른 머리를 하고, 슬리퍼와 반바지, 그리고 허름한 잠옷가운을 걸치고 슈퍼마켓에서 우유를 사는 듀드. 사실 구르는 덤불은 서부영화에서 거의 스테레오 타입으로 나오는 장면이고, 김지훈 감독도 <달콤한 인생>에서 밑도 끝도 없이 이를 썼죠. 인생은 여기저기 구르는 덤불 같은 거라는 비유일 수도 있고, 우주와 인간의 삶에 대한 함수관계를 시적으로 나타낸 것일 수도 있겠죠. 어쨌든 첫인상을 통해 듀드가 루저이고, 게으름뱅이라는 낙인을 찍는 건 제도권 교육으로 인한 조건반사적 반응입니다. 듀드 스타일로 그냥 등장했을 뿐인데 그걸 굳이 사회적 관습에 의해 퍼스낼리티를 규정해버리죠.      


 


  셋째, 듀드는 조금 별나게 살아도 세상에 대해 결코 냉소적이지 않습니다. 자신의 방식대로 쿨하고 느긋하게 행동할 뿐이죠. 아니, 사랑할 뿐입니다. 억만장자 레보스키의 비서 브랜트(필립 세이어 호프만)와 나누는 대사는 듀드의 캐릭터를 명확하게 드러내 줍니다.

  “남자란 뭘까요? 레보스키.”

  “듀드요.(자신은 레보스키가 아니라 듀드라고 고집)”  

  “네?”

  “모르겠습니다.”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올바른 일을 할 준비가 되어 있는 것, 그게 남자 아닌가요?”

  “그렇죠. 그거랑 부랄 두 쪽인 거죠.”

  듀드는 물질에 탐욕을 가지고 있다거나 정치적 욕망이나 명예욕 같은 건 ‘개나 줘버려!’하는 인물이죠. 볼링을 치고, 러그에 누워 워크맨으로 음악을 듣고, 러시안 화이트를 마시는 게 일상의 전부입니다. 

  백만 불과 관련해 듀드를 둘러싼 인물들을 살펴볼까요. 백만 불을 요구 조건으로 내세워 인질자작극을 벌인 레보스키의 아내 버니 레보스키, 포르노 제작자 재키 트리혼, 레보스키의 딸이면서 전위적인 예술가인 모드 레보스키(줄리안 무어), 니힐리스트 갱스터들은 모두가 한결같이 백만 불을 서로 차지하려고 혈투를 벌이죠. 억만장자 레보스키가 백만 불이 들어있는 가방이라고 속이고 그 빈 가방을 갱스터들에게 전해주라고 듀드에게 임무를 맡겼다는 걸 모른 채 말입니다. 듀드는 납치범들에게 가방을 건네주는 수고비로 억만장자가 제시한 2만 불에 만족하고 그 제의를 흔쾌히 수락하지만, 듀드의 친구 월터는 납치범들에게 건네줄 백만 불이 든 가방을 자신들이 차지할 수 있는데 왜 주냐고 하며 그 가방 안에 더러운 속옷을 넣어 납치범들에게 던져주죠. 이 사건이 인물 간의 갈등을 증폭시키고, 극적인 흐름을 추진시키는 동력이 되지만 정작 중요한 건 그 흐름을 끌어나가는 시퀀스들이 주는 유쾌한 매력입니다. 백만 불이 든 가방의 최종적인 행방과 사건의 결말은 그다지 중요한 게 아닙니다. 시퀀스 하나하나가 유쾌하고 즐거울 뿐이죠. 


  

  넷째, 다양한 인물이 아이러니한 행동은 관습적인 모럴과 익숙해진 우상을 여지없이 파괴해버립니다. 

  돈가방이 있었던 차를 도난당한 후 차 안에서 발견된 에세이를 추적해 그가 돈을 가지고 있다고 결론을 내려 결국 래리라는 학생을 찾아가 월터는 다짜고짜 돈이 어디 있냐고 추궁하죠. 묵묵부답인 래리. 월터는 집밖에 주차돼 있는 스포츠카를 보고 그 돈으로 산 거라고 생각해 차를 박살내버리죠. 그때, 진짜 차 주인이 나타나 분기탱천해서 듀드의 차를 마구 부숴버립니다. 웃음이 터져 나올 수밖에요. 인상적인 건 월터가 상대를 위협할 때 쓰는 말입니다. 심각하고 진지한 표정으로 말하죠. “넌 고통의 세계를 맛보게 될 거야!”

  버니 레보스키가 처음 본 듀드에게 발톱에 칠한 메니큐어를 입김으로 좀 불어달라고 부탁하죠. 이어서 억만장자의 집사인 브랜트에게 밑도 끝도 없이 천 달러를 주면 네 소중이를 빨아주겠다고 제의하죠. 백 달러만 내도 좋다고 하죠. 브랜트는 웃으면서 말합니다. “멋진 여성이죠. 우리 모두 사랑해요. 아주 자유분방하세요.”

  억만장자의 딸 모드 레보스키도 기이한 캐릭터로 볼 수 있죠. 자신의 몸을 로프에 매달고서 허공을 오가며 캔버스에 물감을 뿌려 그림을 그립니다. 듀드와 섹스를 한 뒤 몸을 웅크리고, 다리를 오므리는 행동을 보며 듀드가 묻죠. “요가를 하는 겁니까?” “이렇게 하면 임신이 더 잘 됩니다. 당신을 사랑하지 않지만 아이를 낳고 싶어서요.”

  아동성애자로 볼링을 잘 치는 지저스 퀸타나(존 터투로)도 빼놓을 수 없죠. 볼링을 칠 때 혀를 뱀처럼 날름거리며 볼링 볼을 핥고, 볼링 볼을 닦는 자세도 야릇합니다. 그런 장면은 어디서도 볼 수 없었고, 앞으로도 그럴 겁니다. 

  레스토랑에서 듀드와 월터가 소리 높여 언쟁을 벌이자 웨이트리스가 나가달라고 할 때, 월터가 오히려 소리를 높여 웨이트리스에게 반박하는 장면도 인상적입니다.

  “이봐요. 당신과 내가 데일리 레스토랑에서 즐길 수 있도록 전우들이 전쟁터에서 진흙탕에 머리를 박고 죽었어요. 이건 우리 모두의 기본족인 자유라고! 난 여기 있을 거야. 내 커피를 끝까지 마실 거요. 내 커피를 즐길 거라구!”

  도니가 심장마비로 죽자 화장을 한 뒤 유골함을 사려고 할 때, 너무 가격이 비싸 도니의 유골을 데어돌 도널드 케라밧소스 깡통에 넣어 바다에 뿌리며 그럴듯하게 읊는 추모의 장면도 묘한 느낌이 들죠. 

  “자네의 마지막 유언이 이것이었으리라 생각하고, 자네의 마지막 유골을 자네가 너무나 사랑했던 태평양 바다의 품에 맡기네. 잘 가게. 사랑스러운 왕자.”     



  다섯째, <위대한 레보스키>에서 모든 건 볼링장으로 통합니다. 볼링장이 왜 그렇게 중요할까요? 볼링장은 꿈과 현실이 교차하는 공간입니다. 현실로서의 볼링장은 사람들과 만나는 일상의 공간이며, 거기에서 보여주는 몽환적 시퀀스는 초현실적인 감각과 웃음을 제공합니다. 스토리까지 무의식으로 무한히 확대시키는 효과까지 자아냅니다. 논리적인 인과관계와 핍진성을 띤 사건을 완전히 무화시키고, 관객들이 색다른 영화적 체험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거죠.       



  여섯째, 음악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지저스 퀸타나가 혀를 뱀처럼 날름거리며 볼링 볼을 핥고 나서, 스트라이크를 했을 때 라틴 리듬으로 편곡한 Gipsy Kings의 ‘Hotel California’가 어깨를 들썩이게 만듭니다. 듀드가 양탄자를 타고 하늘을 나는 몽환적인 장면에서는 Bob Dylan의 ‘The Man in Me’, 계단에서 댄스를 추며 내려오는 장면에서는 Kenny Rogers의 ‘Just Dropped in’이 관객의 기분을 몽롱하게 만듭니다. 듀드가 미행하는 차를 백미러로 살피다가 부주의해서 담배꽁초를 사타구니에 떨구는 바람에 난리가 나는 장면에서는 CCR의 ‘Lookin’ Out My Back Door’가 다이나믹하게 흥을 돋우죠. 듀드가 두 번째 억만장자의 집을 방문했을 때, 문이 열리면서 Mozart의 ‘Requiem in D Miner’가 묵직하고도 웅장하게 울려 퍼집니다. 음악으로 현실을 비트는 아이러니였죠. 음악과 장면들이 멋지게 조응을 이룹니다.



  일곱째, 잠언 같은 대사들도 기억에 남습니다. 

  “의지가 있으면 더 이상 꿈이 아닙니다.”

  “때로는 내가 곰을 잡아먹고, 때로는 곰이 나를 잡아먹죠.”

  “듀드는 계속됩니다.”        


  사족 – 우리의 영화보기도 계속됩니다. 아무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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