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레이먼드 & 레이>를 봤습니다. 뭐랄까, 죽음에 대한 새로운 경험이었습니다. 죽음에서 격한 슬픔의 감정은 휘발시켜 버리고, 그 자리에 유머와 웃음을 제공한 영화였습니다. 감독과 제작자, 출연자가 모두 눈길을 사로잡았습니다. 감독은 로드리고 가르시아. 1982년 <백년 동안의 고독>으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아들입니다. 아버지의 유산인 마술적 리얼리즘의 유전자가 영상으로 펼쳐집니다. 죽음과 유머를 복합적으로 합성시킨 드라메디(드라마와 코미디 합성어) 형식을 통해 인간의 근원적 욕망과 전통적 가족관에 대한 독특한 시각을 보여줍니다. 제작자는 <그래비티> 감독이었던 알폰소 쿠아론이 맡았습니다. 이복형제인 레이먼드와 레이는 이완 맥그리거와 에단 호크가 맡았습니다.
난봉꾼인 아버지 해리스의 사망소식을 들은 형제, 동생인 레이먼드(이완 맥그리거)와 형인 레이(에단 호크)가 장례식에 참여하게 되면서 아버지의 과거가 땅속에 있던 고구마처럼 하나둘씩 드러나게 됩니다. 레이먼드가 몇 년 만에 레이를 찾아가는 게 오프닝 씬인데 아버지의 사망소식을 전하자 냉소적인 표정으로 묻죠.
“직접 했대?”
아버지 해리스는 손대는 것마다 실패해서 세상에 대해 늘 불만이 많았고, 항상 화난 표정만 기억에 남아있기에 레이로서는 총구를 입에 대고 방아쇠를 당겼을 거라 생각했던 거죠. 결국 형제는 장례식으로 가기 위해 차를 몰고 길을 떠납니다. 장례식에 가는 도중 휴게소 편의점에 잠시 들렀을 때, 레이는 여직원에게 유연한 말발로 플러팅을 하죠. 레이가 여성 밝힘증이 있다는 걸 암시합니다. 레이먼드가 아버지의 사망소식을 전하러 집에 들렀던 첫 장면에서도 레이 집에서 나온 건 향수냄새가 물씬 풍기는 섹시한 여자였습니다. 장의사 사무실에 들렀을 때, ‘형제가 자신의 무덤을 직접 파야 한다’는 유언과 함께 아버지가 살아생전에 선택해 놓은 합판쪼가리로 만든 관을 보고 나서는 황당해하죠. 그때에도 레이는 장의사사무실 여직원에게도 플러팅 하는 걸 놓치지 않습니다. 여자로부터 ‘웰컴’의 눈빛을 받죠. 레이 자신의 말대로 ‘똥에 파리가 꼬이듯’ 여자들이 레이한테는 사족을 못쓰죠. 그건 아버지 해리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레이는 아버지의 여성편력이 엄청났기 때문에 아버지의 죽음으로 수많은 아버지의 여자들이 ‘버려진 아내들 클럽’을 만들어도 될 거라고 비꼽니다. 아버지의 유품을 정리하던 중에 아직 쓰지 않은 콘돔이 줄줄이 나오고, 아버지의 과가 여인들 사진을 보면 그런 반응은 당연했습니다. 더구나 시체안치실에 수시포로 덮여있는 아버지의 시신을 보고 레이먼드가 “아버지 고추가 아직도 우리 꺼보다 훨씬 커.”라고 한 걸 보면 해리스는 한평생 여자사냥꾼으로 산 게 분명합니다.
그런데 이상한 건 아버지와 인연을 맺었던 여자들은 모두 섹시한 미인이었고, 아버지에 대한 평가도 레이먼드와 레이의 시각과는 완전히 달랐습니다. 50세가 넘어서 포경수술을 하고, 80세 가까이 돼서 현재 5세인 아들 사이먼을 낳은 엄마이자 죽기 직전까지 해리스의 애인이었던 루시아는 “내가 가장 어려웠을 때, 나에게 관심을 줬고, 나를 웃게 해줬다.”고 극찬을 아끼지 않죠. 병원에서 숨을 거두는 마지막 직전까지 아버지를 돌봐줬던 간호사 키에라도 아버지에 대한 평가가 무척 호의적이었습니다. 세상에 그런 분 없다는 식이었죠. 뿐만 아니라 장의사도 그랬고, 변호사 또한 아버지에 대한 인간성을 마치 위인전의 한 부분처럼 감동적으로 늘어놓았습니다. 장례식을 주관하는 목사마저 아버지를 높이 평가하는 게 못마땅한 레이가 따지듯이 묻습니다.
“해리스가 정말 신을 믿었다고 생각해요?”
“상관 안 해요.”
“무슨 소리예요? 농담이죠?”
“우리보다 위대한 것에 속한다는 사실이 중요한 거죠. 무한한 거요. 아버님은 그걸 아셨어요. 멋진 시간이 끝나서 아쉬울 뿐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어요.”
거기다 장례식이 진행되는 중 아버지의 아들이라고 말하는 두 사람, 이란성쌍둥이인 레온과 빈센트가 나타납니다. 생전에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두 사람을 아들로 받아들인 아버지는 어쩌면 신의 대리인 같은 느낌이 들 정도였습니다. 뒤늦게 나타난 두 아들은 장례식 진행 중에 아크로뱃을 보여줘 사람들에게 웃음을 줍니다. 슬픔으로 짓눌릴 분위기를 전도시켜 버리는 거죠. 우리의 전통장례에서도 꽃상여를 메고 가는 상두꾼들이 슬픔에 빠져있는 유가족들에 웃음을 주기 위해 짓궂은 장난을 하는 것과 유사하다고 느꼈습니다.
무덤을 삽으로 다 판 뒤에 관을 내리고, 흙을 덮으려 할 때 사이먼이 마지막으로 아버지 모습을 보고 싶다고 하여 관 뚜껑을 엽니다. 아버지의 뜻에 따른 거라고 시신은 수의를 입지 않은 나체였고, 얼굴은 땅을 향해 엎드려 있었습니다. 특이한 자세죠. 평생 패배자로 살아온 자로 세상에 대한 최후의 감상적인 속죄방식이었던 셈입니다.
레이먼드와 레이는 결국 꾹꾹 눌러놓았던 감정이 폭발합니다. 레이먼드는 차로 달려가 총을 가지고 와서 아버지의 관을 향해 마구 쏘아댑니다. 자신의 아내와 동침을 해서 아버지의 아이를 낳게 한 원망을 관에 총을 난사하는 것으로 드러냅니다. 형인 레이는 트럼펫을 꺼내 무덤 앞에서 연주를 시작합니다. 레이가 어렸을 때부터 가졌던 트럼펫 주자의 꿈을 아버지가 트럼펫을 빼앗아 전당포에 저당 잡히는 깊은 상처를 받습니다. 전국의 전당포를 다 찾아다녔지만 결국 찾지 못하고, 꿈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죠. 그런데 아버지의 유품 가운데 자신의 트럼펫이 있었고, 죽기 전에 그 트럼펫을 깨끗하게 손질해 놓았던 겁니다. 뿐만 아니라 병상에 누워 죽기 전까지 아버지가 반복해서 들었던 건 레이가 연주했던 곡이었습니다. 레이가 화가 나서 소리를 지르죠.
“음악이 고통에 도움이 된다는 걸 80년이 지나서야 깨달았냐!”
장례식이 끝나고 레이몬드는 아버지의 여자였던 루시아의 집에서 며칠 묶게 되고, 레이는 아버지 간호사였던 키에라와 재즈바에 들러 즉흥 연주를 하게 됩니다. 아버지 해리스로부터 입은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트럼펫 연주자로서의 앞날을 어떻게 펼쳐질지 암시합니다.
해리스는 죽기 전에 사람들에게 편지를 한통씩 남겼는데 레이먼드한테는 고통을 준 것에 대해서 후회한다는 것과 레이는 자신의 아들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려줍니다. 한 여자를 만나서 살았는데 이미 그녀는 임신 중이었고, 그때 낳은 아이가 레이였던 거죠. 앞으로 레이를 어떻게 대할지는 전적으로 레이먼드의 몫입니다.
레이한테 쓴 편지는 간결했습니다.
“넌 출중했어.”
해리스는 그야말로 모두를 좋아하는 인종차별주의자 같은 인물이었죠. 더구나 그는 불량한 삶을 살았지만 그의 죽음은 삶의 패배가 아니라 사랑의 본질을 생각하게 만들고, 가족의 지평을 넓혀준 신의 메신저 같은 인물이기도 했습니다. 죽어서도 여전히 깨닫지 못하는 욕망덩어리의 야수적인 인간들이 부지기수인 걸 감안하면 해리스의 삶과 죽음은 사랑과 화해의 빛으로 현현합니다.
<레이먼드 & 레이>의 인상적인 장면
첫째, 레이가 여자한테 플러팅 하는 장면을 보고 <방자전>에서 마노인(오달수)이 방자(김주혁)한테 전수한 여자 뒤로 눕히기 기술이 떠올랐습니다. 비스듬히 뒤로 누워 여자의 어깨를 슬며시 쳐다보는 한국의 고전적 방식이나 레이가 어떤 여자한테는 정신없이 수다를 떨고, 또 어떤 여자한테는 사탕을 은근슬쩍 말없이 건네주고, 어떤 여자한테는 몰입해서 지그시 쳐다보는 게 결국 목적은 딱 하나죠.
둘째, 장례식이 다 끝난 뒤 레이가 루시아의 집에서 지낼 때, 레이와 루시아가 사랑을 나누는 장면은 불편하면서도 신화의 재현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루시아가 자신의 나체 사진을 장례식장에서 해리스의 관에 넣었을 때, 그걸 레이가 빼서 자신의 지갑에 넣죠. 루시아가 침대에 누워 레이의 바지를 벗기다가 그 사진을 발견했을 때 레이는 낭패한 표정을 짓지만 루시아는 쿨하게 한마디 합니다.
“사진보다 실제가 더 나아요.”
레이는 레이먼드가 루시아와 잤다는 걸 눈치 채고 놀리죠.
“아버지의 여자와 성적 관계를 맺었구나. 네가 아버지 아이의 아버지가 되다니!”
이런 장면은 신화적 사실주의의 시각으로 보면 은유나 상징으로 치환해야 할 터인데 영화적 장면이 너무 현실적이어서 치환이 잘 되지 않습니다. 우리의 정서로서는 이해불가능이죠. 이해불가능이지만 어쩌면 드러나지 않는 불편한 사실일지도.
셋째, 레이가 트럼펫을 부는 장면은 기시감이 물씬 듭니다. 영화 <Born to be Blue>에서 에단 호크가 쳇 베이커 역을 맡아 트럼펫 연주를 하던 장면이 오버랩되죠. <레이먼드 & 레이>에서는 재즈의 하모니와 선율로 경도된 스토리의 균형을 잡아주고, 감정적 안정을 도모하기도 하죠.
넷째, 죽음은 누구도 피할 수 없습니다. 그런 죽음은 해결해야 할 문제가 아니라 받아들여야 하는 현실이죠. 그걸 어떻게 받아들이는가는 전적으로 산자들의 몫입니다. 처음에는 아버지의 부고를 소음 정도로 여기고, 장례식장에는 결코 가지 않겠다고 고집부리던 레이가 아버지의 주검과 장례 과정을 다 겪고 나서 레이먼드한테 말합니다.
“여기 오게 해 줘서 고마워. 우리는 아버지를 몰랐던 것 같아.”
가족과 관계되어 훼손된 부분과 상처는 아무리 모른 척 해도 결코 치유되지 않고, 어떤 경우는 죽음에 이르러서도 화해는 요원하기에 레이의 마지막 대사가 가슴을 짠하게 합니다. 영화가 보여주는 매력이기도 하죠.
다섯째, 레이먼드를 루시아 곁에 남겨두고 혼자서 차를 몰고 도로를 질주하는 레이. 차창으로 비가 내리치자 윈도 브러시를 작동시킵니다. 윈도 브러시가 작동하면서 Nathaniel Rateliff의 ‘Love Me Till I’m Gone’이 흘러나옵니다. 엔딩 크레딧도 뜨죠. 빗물이 뚝뚝 떨어지는 듯한 리듬과 선율에 온몸이 녹아듭니다. 거의 시적인 장면입니다.
여섯째, 화면이 처음부터 끝까지 어두워 답답한 느낌이 들 정도입니다. 필터를 끼고, 촬영을 한 게 아닌가 싶을 정도입니다. 그건 삶과 죽음이 교차하고, 살아있는 자와 죽은 자가 수평과 수직으로 만나는 현재의 시공간을 하나의 암호로서 보여준 게 아닌가 싶었습니다. 장례지도사가 망자를 화사하게 화장은 할 수는 있지만 세상에 화사한 죽음이란 없죠. 죽은자를 보내고 산자들이 살아가는 우리의 삶이 그런 어두운 빛의 향연에 지나지 않는다는 로드리고 가르시아 감독의 시각일지도.
사족 – 죽음에 이르러 화해하지 말고, 살아있을 때 사랑한다고 말하는 게 제대로 죽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