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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는 수의사 Aug 25. 2023

같이 걸을래

산책을 하면 병원비를 아낄 수 있다

산책은 얼마나 하세요?  


  강아지들 진료 시 내가 반드시 하는 문진항목 중 하나이다.

가장 많이 듣게 되는 대답은, "음... 일주일에 한두 번?", "예전에는 자주 했었는데 요새는 너무 바빠서 잘 못 나갔어요." 이런 식의 답변이다.


  물론 아주 적극적으로 산책을 자주 그리고 잘 시켜주시는 보호자들도 있다.

출처 : closeup-shot-of-a-dog-walking-in-the-park:Freepik.com  


  기억에 남는 보호자 중 한 분은 나이가 지긋하신 매너가 좋은 신사분이었는데, 셔틀랜드 쉽독 Shetland Sheepdog 을 입양하여 매일 10km씩 산책을 하다 보니 본인의 건강이 매우 좋아졌다고 했다. 그래서 앞으로는 마라톤대회에도 참가할 예정이라고 웃으며 말하곤 했다. 병원에 오실 때마다 늘 같은 이야기를 자랑스럽게 하는 모습에 매번 큰 리액션을 하기 힘들 때도 있지만, '매일 10km라니' 정말 존경스러웠다. 

  하지만 그러던 중 이 아이는 유전병으로 고관절이형성증이 발생했고 결국 수술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호자의 열정적인 재활 트레이닝을 통해 지금도 매일 10km의 산책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렇다면 우리 집에 있는 뽀삐는 대회에 참가하는 선수가 아니니까 굳이 산책을 많이 시키지 않아도 되는 걸까? 당연히 아니다.


  강아지들의 경우 산책의 목적은 운동을 통해 신체를 튼튼하게 만드는 것만이 아니다.

  산책을 통해 얻고자 하는 가장 큰 목적은 바로 정신건강이다.

출처 : dog-posing-with-white-background:Freepik.com


  흔한 예로, 발을 너무 많이 핥아서 습진이 생겼다고 피부 진료를 받으러 오는 강아지들 중 대다수는 산책을 늘려주는 것만으로도 해결이 되기도 한다. 산책을 하지 못해서 쌓인 정신적인 스트레스로 인해 계속해서 발을 물어뜯거나 핥는 증상을 보이게 되는데, 이를 그저 피부병으로만 생각하고 치료하다가는 근본적인 부분이 치료되지 않은 채 끝이 없는 무한궤도에 진입하게 될 것이다. 

출처 : Designed by Freepik


  또 재발성 방광염 때문에 주기적으로 혈뇨를 보는 강아지가 있었다. 미생물 검사에서 특별한 원인균을 찾지도 못했다. 하지만 그 아이는 실외배뇨만 하는 아이였고 보호자와 단 둘이 살고 있었으며 보호자는 아침에 출근하고 저녁 늦게야 퇴근하는 일반적인 직장인이었기 때문에 혼자 있는 긴 시간 동안 늘 소변을 참아왔던 것이다. 

  방광염 약을 처방해 달라는 보호자에게 나는 산책을 처방했다. 본인이 일을 해야 하는 동안 산책을 시켜줄 수 없으면 어차피 병원비로 나갈 돈으로 펫시터나 강아지 산책 아르바이트를 고용하라 했다. 그 이후로 그 아이는 아주 튼튼하고 건강한 방광을 갖게 되었다. 


  그만큼 강아지들에게 산책이란 정신건강에 중요한 행위이고 산책을 잘 못 할 경우 정신건강에 치명적인 손상을. 입게 되며 결국 신체건강에도 해를 입히게 된다. 그리고 몇몇 보호자들은 산책을 못하는 것에 대한 보상으로 간식을 많이 주는 것으로 아이의 삶에 행복을 주었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맛있는 것을 먹어서 순간적으로 행복할 수도 있겠지만, 그보다 산책이 우리 강아지들에게 더 좋다는 것은 이미 대부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렇게 행복만 추구하다가 고도비만에 췌장염으로 고생하는 친구들을 정말 많이 봤다.

출처 : cartoon-man-taking-photos-with-smartphone:Freepik.com


  나는 산책을 자주 처방하기도 하지만 정말 상태가 심각하거나 보호자가 경제적 여유는 있으나 의지가 너무 약할 경우 나에게 강아지를 맡기시라 하고 한동안 내가 보호하면서 직접 데리고 산책을 나가고 식단을 관리하기도 한다. 대부분이 비만한 친구들이다 보니 '다이어트 캠프'라고 부른다.

  그렇게 규칙적인 식사와 더불어 하루에도 수차례 산책을 해주면 체중이 조절되고 정말로 건강상태가 상당히 개선된다. 이 캠프는 정말 보호자들의 만족도가 높다. 그리고 캠프 기간 동안 헤어져있다 보면 애틋한 마음도 더 생기는지 캠프를 마치고 집에 돌아갈 때에 눈시울을 붉히는 분들이 많다.

출처 : Designed by pikisuperstar / Freepik


  내가 유일하게 캠프 도중 포기한 강아지도 있었는데,  연세가 많으신 할머니께서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유기동물보호소에서 입양한 강아지였다. 그러나 입양 직후 갑자기 할머니의 거동이 불편해지면서 그 아이는 산책을 단 한 번도 못하게 되었다. 그렇지만 그 아이는 할머니에 대한 집착이 매우 강해서 다른 가족에게 보내려 해도 할머니와 함께가 아니면 매우 불안정한 상태가 되어서 어쩔 수 없이 할머니와 집 안에서만 지낼 수밖에 없던 아이였다. 그러다 보니 분리불안이 매우 심각했고, 소화기 장애도 심했으며, 사회성이 결여되어 있었다.


  나는 호기롭게 캠프에 맡기시라고 했고 그날 그 아이를 데리고 산책을 나갔는데 병원 문 앞에서 꼼짝도 하지 않아 한참 동안 달래고 꼬시는 씨름을 벌여야 했다. 다행히 조심스레 발을 뗀 아이와 불안한 산책을 시작했는데 갑자기 그때부터 목줄이 팽팽해지도록 어디론가로 나를 끌고 가기 시작했다. 나는 그래도 산책을 성공했다는 자부심을 갖고 그 아이가 향하는 곳으로 함께 갔는데 어떤 빌라 앞에서 멈추더니 다시 또 꼼짝도 안 하기 시작했다. 수상함을 감지한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보호자 할머니께 전화를 드렸는데 역시나 그 집에서 나오셨다. 할머니께서는 강아지를 보며 웃으셨고 나를 보시고 또 웃으셨다. 

  이후 할머니 건강 문제로 지방에 전원주택으로 이사를 가셨고 그곳에는 마당이 있어서 마당에서 잘 뛰어놀고 지금까지 건강하게 지낸다고 한다.

출처 : walking-dogs-in-park-people-take-care-of-their-dogs-beautiful-green-park:Freepik.com


  강아지와 함께 산책을 하는 것은 강아지를 위한 행위이긴 하지만 동시에 보호자에게 좋은 것들을 많이 가져다준다. 보호자 역시 신체활동을 하게 되므로 운동이 되고, 스트레스도 완화되며, 병원비도 아낄 수 있다. 따스한 햇살이 눈부신 아침에, 점심식사 이후 나른해진 오후에, 상쾌한 밤공기를 마실 수 있는 저녁에도 우리 집 강아지와 같이 산책을 나가보는 것은 어떨까? 이 글을 읽은 보호자님들은 이미 목줄과 배변봉투를 들고 강아지와 함께 산책 나갈 채비를 하고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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