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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케네디 Aug 11. 2023

공주님과 나 外 2

빌런들의 성공 철학 2

Episode 1. 正(정)


계속 이어지는 상담 일정으로 바쁜 날들이었다.

집에 돌아와서도 자기 전까지 카페에 접속해 실시간 채팅으로 초벌 상담을 하고 그들을 사무실로 불러 세부 상담으로 최종 결정을 이끌어냈다.

그렇게 모여드는 학생들로 분주하던 어느 날, 상담을 마치고 잠시 쉬며 학부모를 모시고 온 학생에게 열변을 토하는 직원의 상담을 흥미롭게 지켜보는 사이 한 학생이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

같은 공간에 있는 모든 이들의 시선을 단번에 사로잡은 그녀의 독특한 외모.

머리띠와 구두에 붙어 있던 반짝반짝 작은 별들은 실내조명을 받아 아기자기 조잘대며 빛을 내고 있었고, 긴 생머리에 분홍색 드레스는 왕가의 기품을 유감없이 내뿜고 있었다.


"저, 어제저녁에 카페 채팅으로 케네디 님에게 상담 예약했는데요"


그제야 떠올랐다. 


"아! 공주님 맞으시죠?"

"네"


그녀의 카페 닉네임은 공주, 먼 길을 친히 행차하신 공주님을 못 알아보다니 불경스럽기 이를 데 없는 녀석.

공손히 의자를 빼어드리고, 드시고 싶어 하시는 차를 내 드렸다.


"멀리서 오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지난밤 공주께서는 지방에 기거시기 때문에 행차하시는 데 몇 시간 걸릴 거라 말씀하셨다. 

가벼운 대화를 나누는 동안 가끔씩 우리를 쳐다보는 사무실 백성들. 그도 그럴 것이 서로를 칭하는 닉네임에 '님'을 붙여 부르니 내 입에서 계속 흘러나오는 '공주님'과 그녀를 대하는 극진한 태도에 의아해할 수밖에.

자세한 상담과 기록을 위해 공주님께 상담카드 작성을 요청드렸다.

그 사이 나를 향한 각 시선에 눈웃음으로 답하는데 먼저 와서 상담 중인 학생 부모님의 황당한 표정이 재밌다.

하긴 어학연수 떠나려는 21세기 공주님과 신하의 상담이 흔한 일은 아닐 테니.

그 표정이 일깨워 준 닉네임 '공주', 버릇처럼 붙였던 존칭 '님', 그녀의 패션, 이 세 가지 조합에 일순간 폐 한가득 웃음이 차고, 조금이라도 새어 나올세라 우라늄 농축시키는 것 마냥 힘겹게 억누른다. 

간신히 참아 호흡을 가다듬고 공주님께서 작성하신 상담카드를 자세히 살피는데,


이름 : O공주

주소 : 충남 '공주'시 OO동 '궁전'빌라 OOO호


그녀는 공주여야만 했나 보다. 공주일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나 보다.  

본명도 공주, 사는 도시도 공주, 집은 '궁전'빌라.

(사실 궁전, 용궁 둘 중 하나인데 기억이 가물가물)


괄약근의 힘이 풀리며 결국 농축 우라늄 폭소가 터져 버렸다.

상담카드로 얼굴을 가려보지만 입으로 터져 나오지 못하는 그 웃음이 킁킁대는 소리와 함께 코로 분출하는 걸 어찌하랴.

그래도 공주님은 어리석은 백성의 오만방자한 처신에 전혀 동요 없이 온화한 자태로 일관하셨다. 

마지막 순간까지 금지옥엽의 고귀한 몸가짐, 기품 있는 언어.

그날 이후 공주님은 날 다시 찾지 않으셨다.

지은 죄를 알기에 감히 연락드릴 수도 없었다.

날 재수 없게 여기셨음이 분명하건만 불편한 기색 하나 드러내지 않으시고, 다른 유학원을 찾아 캐나다로 연수 떠나신 공주님.

20년 조금 모자란 긴 세월이 흘렀음에도 멀리에서 발걸음 하신 성은과  한 시간 남짓 그분을 대면했던 영광은 여전히 내 기억 속에 고화질로 생생히 자리 잡고 있다.



Episode 2. 反(반)


요원 1은 과거에 함께 카지노에서 일했던 직원, 요원 2는 고시원에서 친해진 동생으로 그들과 함께 풍운의 큰 꿈을 안고 필리핀에 돌아왔다.

동업자와 헤어진 이후 여전히 그곳에서 일하던 요원 1에 대해 늘 주변 사람들에게 '갖고 싶은 남자'라 떠들었을 만큼 녀석은 정말 바른 친구였고, 강남 유흥업계에서 웨이터와 보도방 운영 경험이 있는 요원 2는 같은 환경의 친구들과는 다른 식견으로, 외롭기 지내던 나에게 유익한 대화 상대가 되어 준 마음 맞는 친구였다.

한국에서 미리 계획한 몇 가지 일을 진행하며 생활을 유지하고 점차 세를 확대시켜 과거의 명성을 되찾고자 했던 세 사람.

시작은 순조로운 듯했으나 초기 수입의 근간이 되어줄 거라 예상했던 일들은 일어나지 않았고 바닥을 향해 치닫는 잔고에 위기감은 서둘러 찾아왔다.

몇 년 만에 돌아온 필리핀은 예전과 많이 달랐다.

그래도 낙담한 기색 전혀 비치지 않았던 요원 1,2.

큰 수입을 창출해 낼 만한 경로는 아직 준비가 덜된 상태라 그 시간을 안정적으로 보내기 위한 단기 수입처가 시급했으며 그러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했다.

세 사람 모두가 절실하던 그 시기에 나와 갚은 관계에 있던 누군가 찾아왔다.

나 때문에 동업자에게 돈이 물린 친구 A, 그에게 미안함은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컸지만 내 인생 자체에 대해 훈계하고 훈수 두려는 태도는 못마땅했다.

한국 여성과 결혼한 후 지금은 이혼해서 전처와 아이에게 양육비를 보내는 동시에 필리핀에서 만난 여인과 둘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에게 좋은 집에서 살게 하고 충분한 생활비를 쥐여 주는 A.

필리핀에 산 세월이 있고, 한때 마닐라 유흥가 전체를 내 집 안방인 양 드나들던 내가 모를 줄 알고.

남 얘기 퍼뜨리기 좋아하는 빨대가 어디 한둘인가?

그러면서도 자신에 비하자면 한층 깨끗한 내 필리핀 생활에 관해 주변에 험담하던 인물.

요원 1,2를 불러내 좋은 곳에서 술을 사며 그들에게까지 나와 우리의 계획을 비난했다.


'머리는 좋은데 어쩌고 저쩌고......' 


나는 그런 말 하는 사람들이 참 한심해 보인다. 머리가 좋았으면 이렇게 됐을까? 쓸데없는 억양법으로 상대를 향한 비난의 죄책을 피하려는 의도.

요원들에게 우리 먹고사는 문제 해결을 위해 8천만 원을 투자할 용의가 있다고 했단다. 듣는 순간 입에서 터져 나오는 한마디, 


"bull shit"


나와 요원들은 잘 알고 있었다. 

나를 포함한 우리에게 투자하기보다 재력을 과시하며 요원 둘을 포섭하고 날 단념 혹은 좌절시키려는 속셈이라는 것을.

속내가 어쨌든 간에 전략은 무척이나 거슬렸다. 


서로를 다독이며 힘든 현실을 극복하자는 의지를 키워 나가던 어느 날, 마무리하지 못한 내 과거로 인해 큰돈을 물어야 하는 일이 벌어졌다. 

당사자와는 좋게 합의해서 분할로 처리하기로 했지만, 안 그래도 자금난에 시달리는 터라 걷잡을 수 없는 위기감에 셋 다 막막해하던 순간 요원 2에게 A로부터 연락이 왔다.


"사장님 제가 가서 투자해 달라고 부탁해 보겠습니다."

"정 만나야겠다면 막지는 않겠다만 그 얘기는 절대 하지 마라. 전에 그 8천만 원은 우리 반응 떠보려고 그냥 한 말이야. 가서 부탁하는 그 자체가 우리 밑바닥 드러내는 꼴밖에 안 된다."


요원 2는 '그래도 한 번'의 마음이었고, 나는 그 녀석이 왜 그리하고 싶었는지 정확히 이해했다.

남들은 순진하다 비웃을지 모르지만 내게는 한없이 순수한 녀석. 세 사람 모두 잘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십자가를 짊어지려 했던 것이다.

나로 인한 일이요 나로부터의 대책이 없었기에 말릴 명분은 없고 부디 상처받고 오지 않기만을 바랄 뿐.


한 시간 후, 무표정으로 돌아온 요원 2. 씁쓸함을 감추려 하지만 말하는 문장들 행간에 그 느낌이 자욱하다.

이심전심, 염화미소, 불립문자.

이미 다 느껴서 알고 있는 본인의 진심을 토해내는 요원 2가 한없이 안쓰러웠지만 위로할 수 없었다.  

오히려 혼내고 싶었다. 그게 그 친구에게 도움 되리라는 생각으로.

나이 마흔에 눈물 뚝뚝 흘리는 녀석, 나는 그 녀석이 상처받고 돌아올 줄 알았다.

이겨내서 더 담대해졌으면 하는 바람도 있었지만, 희생을 불사하고 앞장서서 문제를 해결하려는 녀석의 심성과 절실함은 이성이 아닌 감성적 선택을 불러냈고 그래서 감성적 상처를 피할 수 없었다.

며칠 뒤 자기로 인한 부담을 줄여야겠다고 생각했는지 서둘러 한국으로 돌아가기로 결심한 녀석.

공항으로 출발하기 전 가진 돈 다 긁어모아 내게 건네고, 공항에 가서도 내 블로그 포스팅에 필요할 것 같아 찍었다며 수십 장의 사진을 보내주었다.


"OO아! 형이 너무 미안하고, 너무 고맙다. 자기 전 상상하는 형의 미래, 꼭 실현시키마."



Episode 3. 合(합)


나는 결국 지키지 못했지만 직원들에게 늘 강조하던 철칙이 있었다.


"우리가 얼마 가지고 있는지, 얼마나 버는지 남들에게 절대 드러나지 않게 해라."


모든 분야에서 그렇지만 특히 카지노에서는 더욱 그래야 했다. 갖은 이유와 협박으로 뜯어내려는 하이에나들이 도처에 널린 곳에서는 돈이 묶였다느니, 빌려준 돈 떼였다느니 등의 죽는소리로 불편한 상황을 모면하는 방법이 최고.


"드나드는 손님이 많은데 들키지 않을까요?"

"이 바닥 특징이 있잖아. 손님 많은 곳에 돈거래도 많고, 그런 곳에서 금전사고 나면 크게 나니 그러려니 하는 거지. 의심한다고 해도 상관없어. 없다는데 어쩔 거야? 오히려 그럴 때 바쁘게 움직이는 모습을 드러내는 게 좋지. 다들 분주하게 다니는 공간에서 자기만 혼자 한가하게 있다 보면 본인이 귀찮은 존재밖에 안 된다는 거 알아서 느낄 테니. 그런 인간들한테는 떡 한 조각도 주면 안 돼. 또 기어 오거든"  


그렇게 없는 척으로 지내다 진짜 없어서 허덕이던 때가 있었다.

손님 중 우리와 각별히 지내던 분이 심각한 자금난에 처했고, 처음 우리를 위해 투자해 주셨던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운영하고 있던 자산 전부를 빌려줬던 것.

영혼까지 끌어 금액을 맞췄던지라 집세 내기도 버거운 한 달 이상의 퍽퍽한 시간이었다.

어찌 보면 직원들의 학습을 위한 좋은 계기. 다들 불러 모아 강의를 시작한다.


"잘 됐다. 거지들 오면 다 까서 보여줘. 떨쳐 내고 싶은 놈들한테는 밑바닥을 보이고, 끌어당겨야 할 놈들한테는 표정관리 잘하면서 최대한 있는 척하는 거야. 사랑, 우정같이 마음으로 하는 일들하고는 반대란 말이지. 돈으로 하는 사업에서는 그래야 해."


카리스마 있게 연설을 마치자마자 급히 돈 필요한 상황이 닥쳤다.

누구에게 빌릴까 핸드폰 주소록을 살피다 가장 입이 무거운 녀석을 선택, 과거에 잠시 함께 일했던 후배였다.


"200만 페소만 보내줘. 형이 쓰고 바로 돌려줄게."

"형님! 정말 죄송한 말씀인데 저도 지금 돈이 여기저기 다 묶여서 밥 먹을 돈도 없습니다."

"야! 돈이 무슨 인질이냐? 이 XX야! 묶이게."


기억을 더듬어 보니 전에 그 자식에게도 직원들에게 했던 것과 같은 조언을 한 적 있다. 요놈의 주둥이가 방정이지. 


"너 전에 형이 도와준 거 다 잊었니?", "너 인간이 그러면 안 된다 어디 너 어려울 때 보자." 


천사 같은 목소리로 회유, 악마 같은 저주로 협박해 인질로 묶여 있다던 돈을 가까스로 빼앗아 숨통을 트여 내지만 배고픈 건 전과 동일.

어떻게 돈을 만들어내야 할지 고심 중에 K사장에게 전화가 온다.


"O사장! 혹시 1,000만 페소 있어? 저녁까지 페소 맞춰야 하는데 큰일이네."

"요즘 페소 구하기 무지하게 힘들죠." 

"그러게. 기준율 +1에 살 테니까 있으면 좀 줘. 원화 바로 쏴줄게"


한국인들 사이에 페소가 귀하던 시기이긴 했지만 매매기준율 +1은 업자 간의 거래에서 좀처럼 보기 힘든 거래 환율. 급하긴 많이 급했던 모양이다. 


"잠시만요. 직원들한테 좀 물어보고요."


옆에 있던 직원이 무슨 일인지 입모양으로 묻는다.

직원에게 조용히 하라고 손짓하고 K사장 들으라는 듯 전화기 가까이 대고 소리친다.


"OO야! 우리 그 1,500만 언제 들어오냐? 그래? 알았어."


웃음을 참는 직원을 몸짓으로 윽박지르고 다시 K사장에게 말한다.


"오늘 1,500만 들어올 수도 있을 것 같거든요. 들어오는 즉시 연락드릴게요."

"어! 그래? 정말 고마워. 연락 기다릴게"


직원을 불렀다.


"봤지? 이렇게 하는 거야, 자식아! 굳이 없어 보일 필요 없다는 말이야. 그렇다고 지금 당장 있는 것도 아니잖아? 이게 바로 최적의 겉보기 상태지. 거지는 떨치고 있는 자들은 날 찾게 만드는. 흐흐흐"


돈 만들 궁리에 빠져 두 시간여를 보내고 또다시 걸려오는 K사장 전화


"아직 안 들어왔어? 큰일이네. 저녁까지 무조건 맞춰야 하는데"

"아! 깜빡하고 있었네요. 다시 그쪽에 전화해서 독촉해 볼게요."


또 한 번 선보이는 내면 연기에 직원은 자지러진다.

둘 다 그러거나 말거나 머릿속은 온통 무에서 유를 창조해야 한다는 생각뿐.

고개를 쳐들어 눈을 깜빡이며 게으른 신경들을 흔들어 깨우는데 10분도 지나지 않아 다시 울리는 전화벨.


'어허! 이 양반 똥줄 타나 보네.'


막상 전화기를 확인하니 발신인은 K사장이 아닌 S사장.


"아이고 어쩐 일이세요?"

"O사장! 혹시 페소 안 필요해? 1,000만 페소 급하게 팔아야 해서"


누구는 1,000만 페소 사려고 안달 났고, 누구는 1,000만 페소를 급하게 처분해야 하는 기막힌 우연의 일치. 그 한가운데에서 손 안 대고 코 풀 수 있게 된 나.


고인 물 중에 고인 물인 S사장은 음흉하고도 치밀한 은둔형 성공인으로 짧은 주기로 왔다가 사라지는 떨거지들과는 말도 섞지 않고, 소개받는 것마저 거부하며 건달이 아닌 민간인들 중에 오래된 지인들 몇몇 하고만 은밀하고 조심스럽게 연락하던 인물이었다. 

게다가 협상 잘하기로 소문난 S사장이 에누리를 용납하지 않는 나를 찾았다는 사실은 그의 똥줄도 이미 활활 타고 있다는 증거.

K와 S, 둘의 섞이지 않은 인맥에 감사할 따름이었다.

남은 문제는 환율을 얼마나 낮게 후려치느냐.

환희에 벅찬 가슴을 억누르고 손수건 없이 볼 수 없다는 내면 연기를 또 한 번 펼친다. 


"처리해 드릴 원화가 있긴 한데 솔직히 지금 페소가 남아 돌아서 굳이 살 필요는 없거든요. 오랜만에 연락 주셨는데 모른 척할 수도 없고. 거참 난감하네요."


이쯤이면 S사장도 잠시 시간을 가진 뒤 곧 남우 주연 상급 연기를 선보일 만도 하건만 예상대로 뭔가 활활 타고 있는 중인가 보다. 


"그러면 기준율로라도 좀 사주면 안 될까? 내가 너무 급해서 그래."

"있는데 안 된다고 할 수도 없고 참 애매하네요. 잠시만요. 직원한테 물어볼게요."


숨죽여 지켜보던 직원에게 입모양으로 말한다. 


"기준율이래 푸하하하"


깊은 호흡으로 감정을 가다듬고,


"사장님! 예전부터 오래 일하시던 분들 다 떠나고 이제 몇 분 남지도 않았는데 우리끼리 도와야지 어쩌겠습니까? 제가 눈 질끈 감고 해 드릴 테니 나중에 저 급할 때 도와주세요."

"정말 고마워 O사장! 내가 꼭 신세 갚을게"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고, 산 입에 거미줄 치는 일 없다 했다.

K사장은 직원을 보내 호텔 로비 커피숍에서, S사장은 5층으로 불러 내가 직접 만나 한화 2억 7천 이중 거래를 성사시켜 풍성한 이익을 취한 뒤 십만 원 단위 자투리는 두 사람에게 인심 썼다.

그들이 떠난 뒤 위풍당당한 목소리로 직원에게 지시하길


"당장 탕수육 넉넉하게 시켜라!"


(환치기는 외환관리법 위반으로 명백한 불법. 과거에는 수익이 꽤 커서 징역살이를 각오하고 뛰어드는 이들이 많았지만 상당수가 사기에 휘말리거나 각종 사건에 연루 돼 가져온 돈 모두를 날리는 경우가 허다했으며, 근래에도 소수에 의해 행해지고 있으나 과거와 비해 턱없이 낮은 수익과 조밀해진 수사망에 대부분 손해 입고 포기하는 실정. 주변의 솔깃한 제안에 넘어가 범죄자로 전락하는 운명을 자초하지 않으시기 바람) 



광고는 자신의 것을 대중에게 드러내 가급적 많은 소비자들을 이해, 소비시키는데 목적이 있다.

식품을 예로 하자면, 유명인을 모델로 등장시켜 맛과 모양을 강조함으로써 그의 평판으로 믿음을 얻어내고, 단점이 될 만한 첨가물의 노출은 최대한 자제하면서 서둘러 구입하게 만들려는 의도라 할 수 있다.

자극적이고 요란스러운 광고에 속아 구입했는데 맛이 없다면 다시 찾지 않을 것이고, 구입 절차와 동기를 떠나 일단 맛에 합격점을 주었다면 재구매할 확률이 높다.

소비자의 구매를 유발했다면 그나마 다행.

주인을 만나지 못해 오랜 시간 창고에 방치되었다가 유통기한 이후 사라지는 실패작이 부지기수다.

두 가지로 요약하면, 

맛, 광고

둘 다 적절하다면 많은 이들이 계속 찾을 것이요, 맛이 괜찮았다면 찾은 사람은 또 찾고, 광고만 좋았다면 한 번은 찾을지 모르며, 둘 다 형편없다면 찾는 이 없이 적자의 원흉으로 남는다.


이제 위의 내용을 토대로 생산자인 동시에 제품인 인간, 우리 각자에 대입해 보자.


- 날 찾게 하기 위해 무엇을 광고해야 하는지? 

- 무엇을 드러내지 말아야 하는지?

- 그들을 만족시킬 만한 내 능력은 무엇인지?

- 능력이 있긴 한지?


이 책에서 중복되는 내용을 제하고 두 가지 사항을 다루도록 하겠다.



1, 날 찾게 만들기 위해 무엇을 광고해야 하는지


Episode1에서 O공주 학생의 외모는 공주님이었다. 그리고 그녀의 언행 역시 공주의 품격과 자태였다. 

만약 둘의 입장이 바뀌어 내가 그녀를 선택하는 면접관의 자리에 있었다면 나는 합격란에 사인했을 것이다.

그녀는 분명 잘 드러냈고 제대로 만족시켰기 때문이다.

같은 이유로 Episode 3에서 나는 큰돈이 오가며 원활히 돌아가는 내 사업을 드러내려 했고 많은 사람이 찾게 했다. 

없어도 있는 척했고 만일을 위한 핑계를 미리 준비해 명성에 흠 갈 일을 애초에 차단했으며 거래 당사자의 구매 가능성을 붙잡아 놓았기에 기회가 왔을 때 능력을 확인시켰다.

입수과정을 논외로 하고, '만약 내게 있다면'이라는 거래 조건만 따지자면 나는 허위, 과장 광고하지 않았다. 내가 당장 없다는 건 이미 밝히지 않았는가?

상대의 관건은 내가 '실물을 가지고 있는 상태에서 자신과 거래를 하느냐'였고 그 조건을 충족시키는 광고 또한 적절히 해온 결과로 양쪽으로부터 수익을 거머쥘 수 있었다.

정리해 보자.


거래 => 기회 => 광고를 통해 얻어야 하는 대상

나는 할 수 있고 => 능력 => 광고해야 할 내용

만족시킬 수 있다 => 품질 => 능력 발휘의 결과


배역을 따내기 위한 오디션에 참가해 능력을 선보이고 훌륭한 연기력으로 영화에 출연했다면 차기작에 캐스팅될 확률이 높고 출연 횟수가 늘어감에 따라 경력은 쌓인다. 

단역이 주연으로 성장하며 출연료가 높아지는 과정.

다행히 한 개인이 자신을 남에게 알리기 위해 소비하는 광고비는 기업들의 그것에 비해 그리고 과거에 비해 터무니없이 적은, 발품 정도의 수준이다. 다시 말해 충분한 능력을 전제로 한다면 발품만 팔아도 된다는 얘기.


내가 즐겨보는 과학 유튜브 채널이 있다. 

처음 편집은 형편없는 수준이었지만 심도 있는 내용을 누구보다 명쾌하게 전달하는 노련함에 구독자는 빠르게 증가했고 광고비와 후원이 늘어남에 따라 콘텐츠 질도 나날이 향상했다. 

쌓인 경력이 능력을 신장시켰다는 의미.

능력을 적절히 광고하며 많은 구독자를 모았고 그들이 준 기회 즉, 발생한 수익으로 양질의 콘텐츠를 더 많이 제작할 수 있었다.

성공한 일반인들은 대개 그런 절차를 거쳤고, 굳이 광고로 큰돈 지출하는 일없이 지속적인 성장을 이룰 수 있었다.

목돈으로 시작하지 않았고, 누구나 할 수 있는 '맡겨 주시면 최선을 다 하겠습니다.' 따위의 강한 의지 표명만으로 기회를 떠안겨 줄 호인을 만나는 행운도 기대하지 않았다. 

단지 디지털 문명의 이기들을 십분 활용해 그들의 능력을 적절히 광고하려 했을 뿐이다.

바꿔 말해 광고를 위한 광고는 하지 않았다. 

우리 주위를 둘러보면 광고를 위한 광고에 시간과 돈을 헛되이 낭비하는 이들이 너무도 많다.

자신의 능력을 적절히 알리려 하기보다 기회를 구걸하는 광고에 돈과 시간을 낭비하는 사람들 말이다.

특히 개성과 능력이라고는 찾아보기 힘든 실속 없는 생산물로 자신이 아닌 프랜차이즈 본사, 플랫폼사들의 이익을 위해 희생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 채 실패를 거듭하는 무리수를 반복하는 사람들은 보는 이들을 더욱 안타깝게 한다.

관심, 흥미, 품질로 소비자를 당기려 하기보다 수고, 선택, 희생을 바라는 나태함, 비굴함, 뻔뻔함.

직장 안에서는 인사과가 알아서 자각시켜 주지만 그 외의 공간에서는 자기 안에 냉정한 인사과를 두고 있지 않아 머릿속 홍보과의 지시에 따라 광고에만 열을 올리고 스스로 노고를 치하하며 자위한다. 


자신이 가진 능력의 콘텐츠는 무엇인지 돌아보자.

내세울 만한 것이라면 광고하되 고객 반응이 시원치 않다면 당장 광고를 중단하고 콘텐츠를 의심하자.

광고의 핵심, 고객의 관심은 내 능력이다.

능력이 없다면 광고비, 체력, 시간이라도 아끼자.



2. 드러내지 말아야 할 단점은 무엇인지?


'바닥을 드러내지 말라'와 비슷한 뜻의 격언들은 많이 들어왔으나 내 가슴 깊이 새겼던 계기는 나와 동갑인 건달이 내 앞에서 그의 동생들을 훈계하는 자리였다.


"사기꾼이 어떻게 사기 쳐? 없는 걸 있다고 믿게 만들어서 돈 뜯어내는 거 아니야? 반대로 생각해 봐. 없어 보이는 놈이 있다고 말하거나, 대놓고 없다고 말하면 사기 칠 수 있어? 그런 놈을 누가 믿냐? 사업도 마찬가지야. 없어 보이면 안 돼. 능력도 없다고 생각하니까. 그런데 이 멍청한 놈들아! 금방 쓰고 갚을 거라고 해도 빌릴 거면 100만 단위로 빌리지 형 모양 빠지게 10만 페소를 빌리냐? 아주 잠깐이라도 바닥을 드러내지 말라고." 


흔히 말하는 '건달의 가오'에 대해 지극히 섬세하고 민감했던 동갑내기 건달.

그가 동생들에게 주의시킨 '바닥을 드러내는 실수'는 우리 실생활 여러 영역에서 많은 이들에 의해 무심코 저질러지는 다반사며 손해를 동반하기 일쑤다.

내 대학 동기의 캐네디언 아내는 물건값을 깎지 못하는 그녀의 어머니를 흉내 내며 'oh~'라는 감탄사와 흡족한 표정을 강조했다.

좋은 가격을 흥정하지 못한 이유로 그것들을 꼬집은 것이다. 

정리하자면 그녀의 어머니는 감정의 바닥을 드러내는 실수를 저지르며 가격 협상의 유리한 고지에서 스스로 내려왔다.

Episode 2에서 나와 요원 1은 카지노에서 수많은 위선자들에 의해 떠벌려지는 '내가 투자해 줄게' 등의 떠보기용 말처세를 지겹도록 경험했기에 요원 2를 설득하고 말리려 했다. 

투자 여부는 우리 능력에 달린 문제이지 투자받고 싶은 마음과는 별개. 우리의 궁색한 처지를 여실히 드러냄과 더불어 A의 비웃음거리가 되는 결과를 낳았다.

바닥을 드러내 손해 보거나 상처 입지 않았어야 했다.

종합하자면 바닥은 감추어야 할 정보를 뜻하며 감정, 기술, 자산, 계획 등이 이에 해당한다.

사랑, 우정에 관한 일이 아닌 사회생활에 있어 이 네 가지 정보는 가급적 드러내지 않아야 한다.


- 감정

나쁜 감정을 자주 드러내면 나를 향한 반감을 일으키고, 좋은 감정을 크게 드러내면 가벼워 보이거나 상대가 내 속셈을 간파하는 빌미로 작용한다. 굳이 반대의 감정으로 속일 필요도 없으며 그로부터 상대의 속을 읽으려 해서도 안된다. 같은 전술로 맞서는 상대와의 관계 해석이 더 복잡해질 뿐. 여러 매체에 실린 대부호들의 일할 때 모습과 같이 무표정을 유지하되 분위기를 맞추고 싶다면 그냥 짧고 가볍게 웃어 주고 말자. 희비애환 절제의 미.


- 기술

마술사가 기술을 공개하면 마술이 아닌 코미디로 변한다. 긴 설명이 필요 없을 듯


- 자산

보통 지식으로 이해 가능한 실물경제 범위에 한해 가장 냉철하게 분석하고 큰 이익을 취하는 집단 중 하나가 바로 건달이다. 잘 나가는 건달들이 그렇듯 차마 있는 척은 못해도 없는 척은 하지 않는 게 좋다. 능력은 있는데 돈 없는 사람 보다 돈 있는 건달에게 더 많은 사람이 몰리는 걸 지겹도록 목격한 내 경험에 의하면 그렇다. 물질만능주의가 팽배한 요즘 사회에서 쓸데없이 낮은 수입과 자산을 공개해 무능해 보일 필요 있겠는가? 있다고 자랑하지 말고, 없다고 까 보이지 말자. 재벌 되면 어쩔 수 없이 만천하에 공개되니 그때까지 자제하자.


- 계획

계획은 정보 가치가 가장 크다. 또한 정보 가치가 큰 계획을 노출할수록 손실은 커지기 마련이다. 하물며 출산 계획조차 가족 외에는 알리지 말자. 




위의 4가지 정보는 상대가 날 섣불리 평가하거나, 여실히 가늠하는 단초나 빌미로 작용할 수 있다. 

능력을 광고하고 능력에 맞는 평가와 대우를 받고 싶다면 바닥을 드러내지 말자.

드러내서 손해 보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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