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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홍성 Aug 20. 2022

실크로드 기행 9 : 카슈가르 1

골목에서는 시간이 멈춰 있다.

 카슈가르에 대한 포스팅이 얼마나 길어질지 아직 모르겠다. 그래서 일단 제목에 1번이라고 번호를 붙였다. 어쩌면 생각보다 쓸 말이 없어 한 편으로 끝날지도 모른다. 그만큼 카슈가르에 대해서는 어떤 이야기를 해야 할지 잘 감이 잡히지 않는다. 아니, 머릿속에, 가슴속에 담아둔 바는 많으나 내 언어적 소양이 짧은 관계로 다 표현해내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게 더 정확한 말이겠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건, 물론 이 도시에 대해 느끼는 바는 다녀간 사람마다 모두 다르겠지만, 누가 되었든, 이곳에 얼마를 머물렀든 간에, 적어도 깊은 인상을 받았음은 부인할 수 없으리라는 점이다. 누군가 카슈가르에 와서 아무것도 느끼는 바가 없었다면 그 사람은 그냥 여행을 그만하는 게 좋을 것 같다. 다소 거슬리게 들릴 수 있는 이 말이 정확하다는 걸 알게 될 것이다, 카슈가르에 가보면. 눈부시도록 파란 하늘의 도시, 카슈가르.


 문혁이라는 과격한 문화 반달리즘의 시대를 겪은 탓일까. 아니면 너무나도 빠르게 나아가는 사회의 발전 속도가 따라가기 버거운 탓일까. 그것도 아니면 유구하고 찬란한 역사를 가진 만큼 사람들이 역사에 대한 관심이 많기 때문일까. 옛 것에 대한 중국 인민들의 향수는 남다르다. 옛 모습을 재현해 놓은 거리는 대도시 상업 지구에서 흔한 모습이고, 옛 유적지에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예부터 이름난 건축물이나 고성, 거리들은 깔끔하게 복원이 되어있다. 문제는 전에도 지적했듯 그 과정에서 옛 정취는 사라지고 상업주의만이 남았다는 것. 원래 살던 사람들은 자신들이 살던 곳에서 쫓겨가고 남은 자리는 눈먼 자본이 가득 채우고 있다. 윈난 성의 이름난 다리 고성이나 리장 고성, 후난 성의 펑황 고성 등을 가보았지만 다 그 짝이다. 옛 고성의 그윽한 정취는 진작에 간 데 없고, 복사 붙여 넣기를 한 듯 똑같은 가게들과 스타벅스 빰 정도는 그냥 후려쳐버리는 가격의 카페들, 밤이면 현란한 불빛과 요란한 소리를 뿜어 대는 클럽들 만이 즐비하다. 누군가 진짜 중국을 보고 싶어 그런 데를 가고자 한다면 뜯어말리고 싶다. 차라리 베이징이나 상하이에 옛 거리를 재현해 놓은 상업 지구를 가라고 하고 싶다. 상업화가 될 대로 되었으면서 겉모습만 고성의 탈을 쓴 채 고성 입네 하고 장사하는 가식보다는 그래도 그냥 대놓고 장사하는 게 그래도 덜 역겨우니깐. 그래도 굳이 가겠다면 번화한 상업거리를 벗어나 골목 깊숙이 들어가 보기를 권한다. 어쩌면 운 좋게도 정말 고성스러운 장면과 조우하게 될지도 모른다.

 이곳 카슈가르도 유서 깊은 도시인만큼 고성이 있다. 중국에서 고성(古城)은 실제 성곽으로 둘러싸인 마을뿐만 아니라 오래된 마을이나 구시가지를 통틀어 가리키는 말인데, 이곳 카슈가르의 고성은 특이하게 ‘노성(老城)’이라고 불린다. 몇 년 전 이 노성 지구를 재개발했기에 옛 정취는 사라졌지만 사람들의 체취는 깊게 남아있다. 재개발되기 전에는 정말 어마어마했을 것이다. 카슈가르에 있는 동안 매일 고성의 골목 이곳저곳을 헤매고 다녔다.

 나는 골목을 사랑한다. 골목에는 우리가 지금껏 잊고 지냈던 것들, 잃어버렸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행길은 시간을 절약할 수 있지만 골목길은 시간을 멈출 수 있다. 내 동경은 오리엔탈리즘적으로 보일 수도 있으나 그 마음만큼은 순수하다. 내 유년 행복한 기억의 파편들이 골목골목 숨어있기 때문이다. 내 생활 반경의 전부였고, 그 누구와도 친구가 되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놀던 곳.

 골목의 주인은 아이들이다. 뜨거운 햇볕 아래 얼굴이 까맣게 타는 줄도 모르고 하루 온종일 뛰어노는 아이들. 골목에서 뛰어노는 아이들의 풍경은 한국에서는커녕 이제는 중국에서도 보기 힘든 모습이나 이곳은 아니다. 아이들의 놀이는 골목에서 밤늦게까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어진다.

 그 아이들 입장에선 분명 이국적일 내 모습에 호기심이 일었는지 간단한 중국어로 말을 걸며 내 꽁무니를 졸졸 쫓아다녔다. 동남아 유명 관광지에서 만난 애들이 이렇게 말을 거는 것은 보통 '원 달러'를 외치며 구걸을 하거나 조악한 기념품을 팔기 위해 들러붙는 것인데 여기는 아니었다. 그건 순수한 호기심이었다. 물질적인 대상이 아닌 순수한 호기심의 대상이 된다는 건 얼마나 기분 좋은 일인가. 매일 아침 호스텔을 나서며 그 앞 구멍가게에서 5 마오 짜리 막대사탕을 한 큼 사 들고 아이들에게 나누어주었다. 카슈가르는 아직 싸구려 사탕 하나에도 세상을 다 가진 듯한 아이들의 함박웃음을 볼 수 있는 곳이다.

 난 개인적으로 무지(無智) 한 사람이 되기는 싫지만 단 하나 부러운 무지가 있다면 그건 어린아이들의 순수한 무지이다. 그들의 시선이 부럽다. 아직 세상을 잘 모르기 때문에 그 무엇도 호기심 어리게 쳐다보는 그 무지가 부럽다. 세상에 닳을 만큼 닳고 그 부작용으로 세상 모든 걸 다 부정적으로만 보기 시작한 나로서는, 다시는 갖지 못할 그 시선이 너무나도 부럽다.

 매일 밤 관광객들의 떠들썩한 술자리가 펼쳐지는 호스텔을 나와 그 앞 벤치에 앉아 노트북으로 일기를 썼다. 골목은 골목대로 번잡하다. 고성 대로변에 위치해서 인지 밤늦도록 사람들이 지나다니고 그 시간까지 아이들이 뛰어논다. 몇몇 호기심이 많은 아이들은 내 옆으로 와 이것저것 말을 걸어 댄다. 아이들은 중국어를 못하고 나는 위구르어를 모르니 말이 통할 리 없지만 아이들은 아랑곳 않고 조잘조잘 말을 한다. 겨우 하나 아는 위구르어로 "만 코리야릭(난 한국 사람이야)"이라고 하니 한국이라는 나라는 아직 모르고 내 이름을 소개하는 줄 아는지 한 명씩 돌아가며 자기 이름을 얘기해 준다. 그런 모습이 귀여우면서도 한 편으로는 측은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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