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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홍성 Aug 23. 2022

실크로드 기행 10 : 카슈가르 2

먼 길을 돌아 서쪽 끝에서 마주한 것은.

 내가 6일간 쭉 머물렀던 카슈가르의 올드타운 유스호스텔. 지금은 이곳 카슈가르를 찾는 여행자가 많아져 유스호스텔도 여러 개 생겼지만, 이곳 올드타운 유스호스텔과 맞은편 파미르 유스호스텔은 그중에서도 가장 유서가 깊다. 아주 오래전부터 실크로드를 지나가는 많은 여행자들이 쉬어 가는 곳. 처음 들어설 때부터 안내해 주던 직원이 이곳에 처음 오는 것이냐 아니면 왔던 적이 있느냐를 묻는 걸로 보아 재방문율도 높은 거 같다. 멀리 이란에서부터 자전거를 타고 온 독일인 아저씨도, 나와 같은 후베이에서 오토바이를 타고 이곳까지 온 중국인 커플도 여기서 며칠씩 휴식을 취하며 자신들의 교통수단을 재정비한다. 내 교통수단은 내가 정비할 필요가 없으니 나는 내 한 몸만 잘 정비하면 돼서 편하다. 내가 다녀 본 유스호스텔 중에 손에 꼽을 정도로 시설이 낙후한 곳이지만, 손에 꼽을 정도로 잠이 잘 오던 곳. 이곳에서의 내 일상은 심히 단순하다. 아주 더운 낮 시간을 피해 동네를 한 바퀴 산책하고 남는 시간은 근처 찻집에 앉아 사람들을 구경하거나 호스텔 테라스에 누어 낮잠을 잔다. 호스텔 마당의 나른한 풍경에 절로 눈이 감긴다. 이곳에 머무는 다른 이들의 일상도 크게 다르지 않다. 빡빡한 여행자에게 게으름은 사치라는 관념을 비웃기라도 하듯 누구나 맘껏 게으를 수 있는 곳, 카슈가르 올드타운 유스호스텔.

 하루는 긴 머리도 자르고 면도도 할 겸 호스텔 근처 이발소를 찾았다. 먼저 면도를 하는데 정말 정성스럽게 한다. 비누거품을 묻혀 마사지를 하고 칼로 정성을 다해 면도를 해나간다. 이발소에서 이런 식으로 면도를 해본 건 처음인데 정말 시원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머리도 정말 정성스럽게 자르더라. 내가 처음 들어섰을 땐 무뚝뚝하게 대하던 이발사도 내가 한국인인 걸 알고 나서는 그 누구한테 하는 것보다 정성스럽게 머리를 잘라 주었다. 마치 군대에서 병장 시절 머리를 자르러 가면, 이등병이 손 벌벌 떨며 연신 "괜찮으십니까" 물어가며 한 시간에 걸려 머리를 잘라주던 느낌. 그래도 생각보다 괜찮게 잘랐다.


 이발소에서 또 하나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 딱 봐도 초등학교만 갓 졸업했을 나이의 아이가 오픈할 때 청소부터 손님들 머리 감는 일을 하고 있었다. 아마 학교는 안 다니고 이발소에서 견습생 생활을 하고 있는 듯했다. 그런데 그 아이를 대하는 이발사들의 태도가 무척이나 사나웠다. 이발사가 머리를 자르거나 면도를 할 때 딱 옆에 달라붙어서 보며 배우고 조수 역할을 하는데 아직 어린아이 인지라 켜 놓은 티비에 눈이 가는 건 어쩔 수 없는 법, 잠깐 티비에 한 눈을 판 사이 이발사의 요구를 놓친 아이는 머리를 세게 얻어맞았다. 머리를 다 자르고 그 아이의 고사리 같은 손으로 내 머리를 감고 말리는데, 그 미안함이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또래들은 한창 책가방 매고 학교 다닐 나이에 벌써 고달픈 일을 시작한 아이. 물론 나의 잣대로 누군가의 삶을 평가하는 건 옳지 않은 일이지만 서글픈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작은 돈이지만 돈 십 원이나마 팁 삼아 주머니에 찔러 넣어주고 왔다. 그 아이가 진심으로 행복하길 바라며.

 카슈가르에서 또 하나 기억에 남는 장소가 바로 찻집이다. 노성 산책을 마치고 숙소로 들어가기 전 매일같이 들러 테라스에 앉아 차 한잔 마시며 글을 쓰거나 지나가는 사람들 구경을 하던 100년 전통의 찻집. 그곳에서 파는 홍차나 우유차가 썩 입에 맞지는 않았지만, 현지 노인들이 차 한잔 시켜 놓고 수다 떨며 시간을 때우는 동네 사랑방 같은 그 느낌이 너무 좋아 매일같이 갔다.


 이곳 사람들은 무척이나 담배를 즐기는데, 시장에서 담뱃잎을 사다가 직접 말아서 핀다. 시장에 가보면 담뱃잎을 커다란 자루에 담아 작은 삽으로 퍼서 파는 장면을 쉽게 볼 수 있다. 하루는 옆자리의 노인이 한 대 말아서 주는데 필터 없는 담배라 독하기 그지없다.

 찻집이 위치한 대로변의 가게들은 모두 내가 매일같이 들락거린 단골집들이었다. 아침으로는 노점에서 화덕에 구운 난이나 빵, 만두를 사 먹었다. 화덕에서 갓 구운 하나에 1원짜리 빵은 도저히 손으로 들 수 없을 정도로 뜨거운데, 겉은 딱딱한데 속은 부드러운 식감이 베이글과 비슷했다. 난 역시 인도식 난보다 훨씬 딱딱했는데 아마 반죽의 차이에서 비롯된 듯하다. 나중에 함께 국경을 넘은 프랑스인들은 이곳에서는 부드러운 빵을 찾을 수가 없다고 볼멘소리를 했다. 이곳 사람들은 그 딱딱한 빵을 차에 적셔먹는다. 찻집 아래층에 있는 밥집도 내 단골집이었다. 메뉴라고는 양탕과 볶음면, 탕면(이 집 탕면에는 길쭉한 면이 아닌 수제비가 들어가는데 우리나라 김치수제비와 맛이 아주 유사하다), 양꼬치가 전부인데, 하나에 3원짜리 양꼬치는 내가 지금껏 중국에서 먹어 온 양꼬치 중 단연 최고였다. 소금 간밖에 되어있지 않은 양꼬치가 그렇게 맛있을 수 있는 이유는 아마 신선한 고기를 좋은 불에 구웠기 때문일 것이다. 아침에 거리에 나가보면 꼬치집들마다 큰 통나무에 불을 붙여 숯을 만드는 광경을 볼 수가 있었다. 또 집마다 큰 양을 한 마리 걸어놓고 주문이 들어올 때마다 잘라 꼬치를 만드니 고기 역시 신선할 수밖에. 내가 그전까지 먹어 온 양꼬치는 다 가짜였다.

 신장하면 빼놓을 수 없는 게 또 과일인지라 과일도 정말 배 터지게 먹었다. 한 통에 10원짜리 수박과 하미과(신장 멜론)는 너무 달아 쓰게 느껴질 정도였다. 인공감미료가 들어가지 않은 천연 과일이 어떻게 이렇게 달 수가 있나 싶었다. 포도 역시 신장의 오랜 특산물인데, 그냥 포도는 물론 말린 건포도 역시 맛이 좋다. 신장에서는 포도는 물론 오만 과일을 다 말려먹는다. 큰 살구도 하루만 널어놓으면 먹기 좋게 마른다고 하니 과일을 오래 보관할 수 있는 최상의 방법인 셈이었다. 신장의 과일은 중국 전역에 다 공급이 되는데 아무래도 현지에서 먹는 게 가격도 훨씬 싸고 신선했다.

 매주 일요일마다 열리는 가축시장 역시 카슈가르에서 빼놓을 수 없는 명소이다. 크게는 우시장과 양시장으로 구분되어 있는데, 소나 양뿐 아니라 염소, 당나귀, 말, 낙타 등 오만가지 동물이 가득하다. 본디 유목민족이었던 위구르족인지라 더 이상 유목적 삶을 살지 않는 지금도 가축을 기르는 것이 전통으로 남아있다. 염소 한 마리를 팔려고 끌고 나온 노인부터 몇십 마리의 양을 트럭 가득 싫고 나온 사람들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가축을 사고판다. 십여 년 전만 해도 위구르족들의 주요 교통수단이자 신장의 명물이었던 당나귀 수레는 이제 다 삼륜차로 바뀌었지만 이곳은 아직 가히 신장스럽다. 시장 좌판에서 양탕으로 점심을 해결하고 더운 줄도 모르고 미친 듯이 사진을 찍으며 돌아다녔다.

 동물도 동물이지만 역시 시장은 사람 구경이다. 어른들은 서로 흥정에 열을 올리고, 장날 길을 따라나선 아이들도 많이 보인다. 자기네 양이 한 마리씩 팔려나갈 때마다 아빠의 바지춤을 잡고 엉엉 울어대던 아이, 그런 아이들이 많은지 시장 한구석에는 아이들을 상대로 만화영화를 틀어놓은 가게도 있다. 그중에서 내게 강한 인상을 남긴 장면이 하나 있었다. 갓 초등학교에 입학했으려나, 사내아이 하나가 자못 심각한 표정으로 양을 묶어 놓은 새끼줄을 꼭 쥐고 있다. 자기보다도 덩치가 큰 양. 조금 그늘로 들어와 있어도 되겠건만, 내리쬐는 뙤약볕에 얼굴이 빨갛게 익고 눈을 한껏 찡그리면서도 망부석이다. 아마 같이 장에 나온 할아버지가 아이에게 잠시 팔 양을 맡겨놓고 어디를 다니러 가셨나 보다. 순한 양은 여물을 씹으며 잠자코 있는데도 혹시나 양을 놓칠세라 혼자만 심각하다. 누가 양을 빼앗아 갈 것도 아닌데.

 항상 사람을 보는 여행을 하려고 노력한다. 멋진 자연경관이나 오래된 유물도 좋지만 결국 가장 큰 울림을 주고 오랫동안 여운을 주는 건 사람 사는 모습이다. 이전에 본 적도, 앞으로 볼 일도 없는 사이 이건만 내 기억 속엔 선명히 남아 오래도록 뜯어먹을 수 있는 감상의 양식이 되어준다. 자위관의 웅장함에도 둔황 막고굴의 화려함에도 의연(?) 했던 나는 소년이 양을 잡고 있는 장면에 무너져 버렸다. 그 장면 하나를 보기 위해 나는 먼 길을 돌아 서쪽 끝까지 왔는지도 모르겠다.


 중국의 모든 도시들이 그러하듯 카슈가르도 빠르게 변할 것이다. 누구를 위한 변화인가를 묻는 근원적인 질문은 차치하고라도 그 변화를 받아들일 준비할 최소한의 시간은 주어야 하건만, 발전이라는 미명 아래 행해지는 비인간적인 변화의 조류 앞에 맨몸으로 선 그들이 자신들의 삶을 지키기는 너무나 버거워 보인다.

 하지만 설령 내가 카슈가르에서 보고 경험했던 모든 것들이 깡그리 사라지더라도, 내 기억 속의 카슈가르는 양고기를 굽는 매캐한 연기, 골목을 가득 메운 아이들의 웃음소리, 그리고 양을 꼭 잡고 있는 소년의 모습으로 남아있을 것이다, 영원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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