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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홍성 Aug 05. 2022

실크로드 기행 5 : 둔황 1

밤바람에 모래 울음소리 아득히 들리는데

 실크로드 여행을 기획하면서 다짐한 바가 있었다. 첫째, 비행기를 타지 않고 반드시 육로로 이동할 것. 둘째, 육로로 이동하되 될 수 있으면 가장 느린 교통수단을 타고 이동할 것.

 중국이 빠르게 변화 발전하듯 중국인들의 주요 교통수단인 기차도 빠르게 변화 발전하고 있다. 가장 느린 기차를 타고 이동을 해도 10년 전의 절반의 시간밖에 걸리지 않고, 그 당시 가장 빠른 기차보다도 더 빠르다. 무서운 속도다. 전 중국이 하루 생활권까지는 아니더라도 이틀 생활권에는 들어왔다고 무리 없이 말할 수 있게 되었다. 기차가 빨라진 만큼 우리는 그만큼의 시간을 얻었다. 하지만 삶은 그만큼 더 여유로워졌을까. 이는 내가 20살 무렵 막 여행을 다니기 시작했을 때부터 품고 있던 문제의식이었고, 무엇이든 효율적인 것이 최고의 가치로 여겨지는 시대에 적어도 여행만큼은 '효율'이라는 가치에서 한 발 떨어져 있기를 바랐다. 느리게 이동하는 것이 내가 여행을 떠날 때마다 항상 지키려고 하는 신조인 이유이다.

자위관 발 둔황 행 열차
간쑤 북부의 황량한 대지를 지나

 자위관에서 둔황으로 가는 기차는 내가 지금껏 타 본 모든 기차를 통틀어 가장 오래된 기차였다. 낡은 의자에는 시트도 씌어 있지 않았고, 객차 천장에 달려있는 선풍기는 돌아가지도 않았다. 차장이 직접 석탄을 때 물을 끓이는 기차, 근 400km의 거리를 한국 돈 4,000원도 안 되는 가격에 데려다주는 기차는 6시간을 달려 우리를 둔황역에 내려주었다.

명사산
명사산
명사산
낙타의 무리

 호스텔에 짐을 풀고 잠시 쉬다가 명사산(鳴沙山)으로 향했다. 둔황 사막에 있는 모래산인 명사산과 그 아래에 있는 오아시스 월아천(月牙泉)은 막고굴과 함께 둔황을 대표하는 관광지이다. 명사산은 맑은 날에 바람에 날리는 모래소리가 수만의 병마가 두드려 치는 북과 징 소리같이 들린다고 하여 '울 명(鳴)' 자에 '모래 사(沙)' 자를 써 '명사산(鳴沙山)'이라 이름 붙여졌다. 신기하게도 시가지 바로 옆에 사막이 펼쳐져 있었다. 월아천을 한 바퀴 돌아보고 맞은편의 모래언덕에 올랐다. 나무 사다리를 깔아놓기는 했지만 발이 푹푹 빠지는 모래언덕을 오르기란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20여 분을 힘겹게 올라 뒤를 돌아보니 사막 한가운데 폭 담겨있는 월아천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왔다.

모래 언덕을 올라
맞은편 모래언덕에서 바라본 월아천
3일간 여행을 함께한 소 형과 함께

 오아시스는 사막을 여행하거나 사막에서 살아가는 모든 생명체에게 없어서는 안 되는 중요한 물 공급처이다. 실제로 오아시스는, 우리가 막연히 상상해 온 야자수 몇 개 거느린 사막의 작은 샘물 정도의 크기가 아니다. 수만 명의 사람이 오아시스 하나에 의지해 농사지으며 살아갔으며, 오아시스 하나마다 독립된 왕국이 있을 정도로 풍부한 물의 원천이다. 내가 지나 온 하서주랑과 신장의 도시들도 오아시스를 기반으로 형성된 도시들이다. 하지만 이곳 월아천은 평소 우리가 갖고 있던 오아시스의 이미지에 가장 근접했다. 황량한 모래사막 한가운데서 갑자기 솟아 나온 작은 못. 생긴 게 초승달 모양이어서 월아천(月牙泉)이라 이름 붙여졌다는데, 매년 모래 광풍이 불어도 이곳만큼은 한 번도 모래에 덮이지 않아 기이하게 여겨졌으며, 이곳에는 신선이 산다고 하여 샘 옆에 도교사원도 지어져 있다. 이 모래언덕에 올라 바라보는 일몰이 장관이라고 하는데 내가 간 날은 아쉽게도 구름이 잔뜩 껴 일몰을 제대로 보지 못했다. 다음날 날이 맑으면 다시 와보려고 했지만 이 역시 여의치 않게 되었다. 모래언덕을 내려올 때는 나무 사다리가 없는 곳으로 발이 푹푹 빠지며 뛰어내려왔다. 마치 어린아이처럼.

둔황의 명물, 당나귀고기

 저녁으로는 둔황의 명물이라는 당나귀 고기를 먹으러 갔다. 값은 비쌌지만 맛은 그저 그랬다. 말고기 못지않게 뻑뻑했다. 둘 다 어제 과음한 탓에 맥주 한 병씩만 가볍게 비우고 숙소로 돌아왔다. 소 형은 내일 오전에 막고굴(莫高窟)을 보고 바로 신장 우루무치로 가 북신장(北新疆)을 7일간 여행하는 투어에 참가한다고 했다. 나는 둔황에 며칠 더 머물렀다 투르판을 거쳐 우루무치로 갈 예정이었기에, 7일 후 우루무치에서 다시 만나 함께 카슈가르로 가기로 했다. 모래 섞인 바람이 시원하다 못해 서늘하게 느껴지는 사막의 밤, 모래언덕의 모래 울음소리가 바람에 실려 들리는 듯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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