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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투 Oct 04. 2021

망태 할아버지


"엄마 망태할아버지 알아요?"

(밑도 끝도 없이 아들이 망태할아버지를 아냐고 묻는다.)

"알지!"

(나야 그렇다 치고 얘는 망태할아버지를 어떻게 알지?)

"근데 넌 망태할아버지를 어떻게 아니?"

"학교에서 방과 후 수업 끝나고 시간이 조금 남아서 선생님이 틀어줬어요."

"망태할아버지를 틀어줘? 그게 무슨 말이야?"

"에이, 엄마! 망태할아버지 몰라요? 요즘 내가 제일 좋아하는 노래인데!"

답답한지 바로 유튜브에서 '망태할아버지'를 검색해서 틀어준다.

듣다가 웃겨서 기절하는 줄 알았다 ㅋㅋㅋ


망태할아버지 한 번 듣고 가실게요~


https://youtu.be/dGRAZn8mQDg


우리 어렸을 적엔 아이들에게 '엄마 말 안 들으면 망태할아버지가 잡아간다'라고 협박하던, 뭔가 음침하고 무섭고 가까이하기에 꺼려지는 아우라가 있었다. 그런데 어떤 분이(과나) 이 망태할아버지를 요즘 감각에 맞춰 아주 유쾌하고 재미있게 노래로 만들어 유튜브에 올려놓았다. 세대는 다르지만 유튜브 덕에 아들과 내가 공유할 수 있는 게 하나 더 생겼다. 등교시간 학교에 조금 빨리 도착해 자투리 시간이 생기거나, 저녁 먹고 소파에서 배 두들기며 쉴 때 이걸 틀어놓고 동작까지 따라 하며 둘이 낄낄거리고 아주 신난다. 내가 나이 반백 살 먹고 아들과 '망태할아버지'를 부르며 놀고 있을 줄이야.


요즘 망태할아버지를 소환하고 싶은 일이 많다. 


나는 특별한 일이 없으면 거의 아이 하교 시간에 맞춰 집에 오니 도착하면 지하 주차장에 자리가 많다. 보통 오후 4시 전후다. 내가 선호하는 자리는 기둥 옆이다. 기둥 덕에 여유 공간이 많아 짐 내리기도 편하고, 타고 내릴 때 긴장이 덜 된다. 차와 차 사이에 세우면 혹시 옆 차에 문 콕하지 않을까 조심스럽다. 기둥 옆에 댈 때도 최대한 기둥 쪽으로 붙여 댄다. 그러면 반대쪽 자리에 여유가 생겨 옆 차량이 주차하기 훨씬 쉽다. 그런데 이런 배려가 꽃피어야 할 주차장에서 숨겨왔던 나의 거친 자아가 고개를 든다. 나보다 먼저 주차장으로 진입한 차 한 대가 통로를 가로막고 몇 번 왔다 갔다 하더니 주차장이 텅텅 비어있는데도 코너에 차를 세우고 유유히 아파트로 올라간다. 아~ 식빵 언니 김연경 소환된다. 그런데 이런 사람들이 한 둘이 아니다. 코너에 그렇게 미리 차를 세우면 다른 차들이 코너를 한 번에 돌아 나갈 수가 없다. 그 차 때문에 꼭 한 두 번 핸들을 꺾어주고 뒤로 백 했다가 다시 나가야 한다. 밤에 주차장이 빽빽이 다 차면 늦게 들어온 차들은 별 수 없이 이중 주차를 해야 한다. 여지없이 주차 자리가 많은 대낮부터 이중주차를 하는 사람들이 있다. 떡하니 자리가 있는데 이중주차를 하고 올라간다. 그럼 나중에 그 차가 막아놓은 자리에 주차하려면 내려서 이중 주차된 차를 밀어내야 한다. 출차 때도 마찬가지다. 아 이런 거지발싸개 같은 님들. 주차도 출차도 자기만 힘 안 들이고 쉽게 하겠다는 얘긴데 나만 편하면 다른 사람은 불편해도 된다는 그런 생각은 도대체 어떻게 하면 할 수 있는 건지 그들의 뇌를 열어보고 싶다. 


시간 여유가 있는 날은 저녁 먹고 남편, 아들과 산책을 간다. 집 근처 호수공원은 밤에는 야경이 화려해 꼭 외국 어디쯤 와있는 착각이 들고, 낮에 호수 주변의 오래된 큰 나무들 사이를 걷고 있으면 저 길 끝에서 빨강머리 앤이 마차를 타고 나타날 것 같은 동화 속 길처럼 낮과 밤이 다른 이중적인 매력이 있다. 청량한 바람을 맞으며 그날 있었던 일도 얘기하고 유치한 농담 따먹기를 하며 걷는 그 시간이 더없이 만족스럽다. 그런데 그 좋은 기분을 한 번씩 망칠 때가 있다. 바로 산책로에 나타난 개똥, 보는 순간 확 저녁 먹은 게 넘어올 것 같고 다행히 피해서 지나친 후에도 신발 바닥에 똥이 묻은 것처럼 찝찝함이 오래간다. 공원 곳곳에 동물의 배변 봉투를 버릴 수 있는 통도 있고, 만약 없어도 주인이 치워서 가져가야 하는데 한 번씩 양심 없는 사람들이 다른 사람의 행복한 순간을 가차 없이 뭉개버린다.


한 번은 목줄을 하지 않은 개가 갑자기 나에게 달려들어 심장이 떨어질 듯 놀란 적이 있다(나는 모든 동물을 무서워한다). 감정을 누르고 "아주머니 목줄 좀 해주세요."라고 말씀드렸는데, 나를 쏘아보며 "우리 개는 안 물어요." 하는 게 아닌가, "개를 무서워하는 사람도 있으니 줄을 매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또 한 번 참고 말씀드렸는데 도리어 화를 내면서 "아니 이만한 개가 뭐가 무섭다는 거야 별 유난을 다 떠네" 이러신다. 아 식빵 언니 김연경 또 소환되죠! 몇 번 설왕설래하다가 되려 나에게 너무 무례하게 화를 내길래 "그럼 경찰서 가서 말씀하시죠, 공공장소에서 개를 목줄 없이 데리고 다녀도 되는지" 하니까 덜컥 겁이 났는지 알 수 없는 욕을 하면서 개를 데리고 줄행랑쳤다. 누가 보면 100m 달리기 선수인 줄 착각할 정도로 얼마나 빠르게 도망가는지, 본인도 잘못된 행동인 건 알면서 그러고 다닌 거라니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힌다. 


아들도 원래 강아지를 무척 좋아했는데 공원에서 목줄 없는 개가 달려들어 다리에 피가 날 정도로 긁히고 나서 개에 대한 공포가 생겼다. 점점 나아지곤 있지만 지금도 원래 알고 있는 지인들의 강아지 외에는 무서워서 가까이 가지 못하고 조금 큰 강아지가 근처로 지나가면 자기도 모르게 움찔한다. 반려견의 수는 엄청나게 증가하고 있는데 준비가 안 된 주인들이 아직 많다. 하기야 시험 보고 면허증 딴 사람들도 운전도 주차도 개판으로 하는데, 시험도 안 보고 반려견을 키우는 사람들은 그저 그들의 기본 소향에 기대는 수밖에. 


이럴 때 아들과 나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자꾸 그러면 망태 할아범이 잡아간다. 애들보다 말 안 듣는 어른들 잡아간다"가 입에서 튀어나온다. 이렇게 노래라도 부르고 나면 그나마 그분이 좀 풀린다. 요즘은 잘못한 사람들이 목소리도 더 크고 운이 나쁘면 흉한 일을 당할 수 있어서 대놓고 뭐라 하지도 못한다. 어른으로서 아이 보기가 너무 창피하다. 


진짜 망태할아버지가 나타나 이런 사람들 다 잡아가 혼 좀 내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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