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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 p Jun 10. 2024

비담임 학폭담당교사의 월요일 아침


 나흘 간의 연휴를 마치고 출근한 월요일 아침이다. 오늘은 오후 수업 하나밖에 없는 여유로운 날이다. 어쩌다 이런 여유를 갖게 되었냐 하면 '학교폭력'이라는 엄중한 업무를 맡았기 때문이다. 그 엄중함을 공식적으로 인정받아 교육청으로부터 수업 지원 시간강사를 배정받는 호사를 누리게 되었다. 

 다만 이런 여유가 길지는 않다. 왜냐하면 사건이 수시로 터지기 때문이다. 우리 학교는 올해 이상하리만치 사건이 많아 벌써 21개의 사안을 접수해 진행 중이고 오늘도 하나의 사건을 기다리고 있다. 다른 학교에서 곧 우리 학교 학생이 가해자인 사건을 접수해 공문 발송을 할 것이라는 연락을 받았다. 

 오늘은 말하자면 한 차례 폭풍이 지나가고 또 다른 폭풍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는 찰나의 여유이다. 이런 여유가 왔을 때 때 잘 누려야 한다는 것을 지난 세 달 간의 경험으로 배우게 되었다. 이런 시간이 쉽게 오지 않는다. 

 많은 사건들을 다루다 보니 두통을 달고 살게 되었다. 사건을 그냥 일로만 대하면 괜찮을지 모르겠으나 나는 그게 어렵고 사건 속의 아이들이 보이고 감정을 공유하게 되다 보니 머리가 아프다. 이건 특별히 내가 착한 인간이라서가 아니라 성향 때문이다. 어려서부터 타인의 감정에 공명하는 능력이 남들보다 뛰어나다고 느끼며 살았다. 남이 아플 때 나도 아프고 특히 누군가의 고통에 쉽게 공명한다. 그런 덕분에 조금이라도 덜 이기적으로 살아왔다고 생각해서 나의 그런 특징을 사랑하지만 올해는 덕분에 많이 아프다. 

 그러지 않으려고 노력하는데도 아침에 눈을 뜨면 사건 속 아이들이 떠오르고 사건에 대한 생각을 한다. 오늘 아침에 들은 새로운 사건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가해 학생이지만 짠하다. 그 아이가 살아온 삶을 들여다보면 마음이 아프다. 아직 열여섯 밖에 안 되었는데, 다른 길로 갈 수 있는데 또 한 번의 사건으로 이 아이가 절망을 학습하게 되는 건 아닐까. 

 

 아침마다 마음을 펴기 위해 톨스토이의 인생독본을 필사하고 있는데 오늘 마침 그 아이에게 해 주고 싶은 문장을 발견했다. 


 "과거의 행위가 삶의 방향에 아무리 큰 영향을 미칠지라도 인간은 정신력으로 그 방향을 바꿀 수 있다" - 톨스토이 


 지금의 결과가 앞으로의 인생의 모든 것을 결정짓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아이들이 알았으면 좋겠다. 그러나 자신의 행위에 대한 반성과 책임은 필수다.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가르쳐주어야 할 것은 이런 것들이다. 하지만 요즘 아이들은 반성과 책임도 없고 희망도 긍정도 없는 것처럼 보인다. 나는 교사로서 충분히 학생들에게 가르침을 주고 있을까. 

 학생들과의 만남은 이 시간이 지나고 나면 돌아오지 않는다. 매년 새로운 학생들을 만나고 늘 비슷한 만남들이 이어지기에 쉽게 매너리즘에 빠질 수 있지만 '한 아이'와의 만남은 '그 순간'뿐이다. 그 순간에 진심을 다하는 것. 최선이라는 말은 어렵고 '진심을 다했는가' 그것은 중요하고 늘 따져봐야 한다. 나는 너에게 진심인가. 

 진심이었다고 해서 후회가 남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 당시에는 진심이었지만 지나고 보면 옳지 않은 선택이었던 경우도 많다. 내 삶의 선택에 대해서는 지난 일 어쩔 수 없지 하며 털어버릴 수 있지만, 나의 선택으로 인해 영향을 받은 학생들의 삶에 대해서는 어쩔 수 없다고 넘겨버리기는 어렵다. 그래서 아직도 생생하게 떠오르는 얼굴들이 여럿 있다. 그때 내가 이렇게 했었더라면, 그때 그렇게 하지 않았더라면... 하는 후회가 몇 년에 걸쳐 계속 떠오른다. 그 아이들과의 인연은 끊어졌고 더 이상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지만 이런 후회들이 생생하게 남는 것은 새로운 아이들을 위해서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다시 같은 실수는 하지 말자. 그래도 죄책감은 남는다. 그 아이들의 고통에 대해서는 내가 해줄 수 있는 일이 없기 때문이다. 

 

 월요일 아침부터 무거운 생각을 할 수밖에 없는 게 학폭담당 교사의 숙명인가 그래서 그 엄중함을 공식적으로 인정받는 건가. 오늘은 일년 중 몇 번 오지 않는 한가한 날이다 일단 오늘은 쉬자. (어디선가 연락이 오기 전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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