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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울과 철학 Nov 30. 2021

절망에 대한 단상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 것들

절망은 어떤 사실이 아니라 어떤 상태, 즉 죄의 상태 그 자체라고 보는 키에르케고어의 관점보다 더 심오한 것은 없다

  「시지프 신화」(알베르 카뮈) 中


절망은 외부의 사건과 결합되는 내부적 형식을 가지고 있다.  절망은 외부의 사건이 그 이유인 것처럼 생각된다. 하지만 외부의 사건만으로는 절망의 감정을 모두 설명하기 어렵다. 외부의 사건만이 나에게 절망의 원인이라면 외부 세계와 등을 돌리거나 죽음을 선택함으로써 절망의 감정을 해소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절망은 끈질기게 우리의 정신을 갉아먹는다. 그 정도가 너무 심해 과연 외계의 현실이 절망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 사실인지 의심하게 한다.

 

절망은 외계의 사태가 개선되지 않는다라는 인식과 관련이 있다. 그런데 우리는 경험적으로 외계의 사태들은 변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사태의 본질이 변하지 않더라도 그에 대해 우리가 느끼는 감정은 변할 수 있다. 절망적인 사건을 겪었다면 당장은 괴로울 수 있으나 시간이 지나면 상황이 나아질 수도 있는 것이고 상황이 나아지지 않더라도 상황에 대한 나의 감정은 긍정적인 것으로 바뀔 수도 있다. 하지만 절망에 빠진 사람에게 이런 전망은 전혀 인식되지 않는다. 절망은 그 내재적 형식으로서 영속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영속성은 무엇과 관계하고 있는 것일까?

인간의 정신에서 어떤 것이 영원하다는 인식은 죽음과 관련이 있다. 일단은 죽음을 통해 많은 것들이 종결된다는 것을 어렴풋이나마 알고 있기 때문이다.

죽음을 통해서도 어떤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그 문제는 영속적이라고 여길 수 있는 것이다.


우리 내부에는 죽음보다 본유적인 것들이 존재한다. 죽음은 선험적이지 않다. 어린아이들은 죽음에 대해 잘 인식하지 못한다. 우리는 죽음을 외계에서 마주치는 여러 사건들과 정보를 통해 알게 된다. 외계에서의 죽음은 신체의 종말과 불가분의 관계가 있다. 이러한 신체의 종말이 우리에게 죽음의 개념을 형성하게 한다.

반면 절망, 죄의식, 불안은 선험적이다. 죽음보다 먼저 오는 개념들인 것이다. 그러므로 죽음을 통해서도 절망, 죄의식, 불안 등의 감정이 우리에게서 사라지지 않을 것임을 직관할 수 있다.  이러한 개념들이 영속하기 위해서는 어떠한 조건이 필요한가? 그것은 우리의 정신이 영속해야 한다는 것이다. 절망, 죄의식, 불안 등의 개념을 담지하고 있는 우리의 정신도 영속성을 갖는다고 할 수 있다. 영속하는 개념들이 담지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존재하는 것으로 여겨지지 않기 때문이다. 어떤 것을 담지하고 있는 것은 그 어떤 것과 항상 함께 한다. 즉 우리는 절망과 같이 영속하는 개념들을 통해 정신의 영원성을 증명할 수 있는 것이다.

당연하겠지만 죽음 뒤의 정신은 그전의 정신과 완벽하게 동일한 것은 아니다. 정신을 구성하는 것들 중 죽음을 넘지 못하는 비본질적인 것들은 모두 사라져 버릴 것이기 때문이다.

죽음 뒤에 우리에게 남는 것은 정신의 본질적인 부분과 여기에 담지되어 있는 절망, 죄의식, 불안 등의 개념일 것이다.


절망에 빠진 자는 울고 있다. 절망이 영속하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죽음도 뛰어넘어 존재하는 것이다. 우리의 영혼에 영원히 담겨있는 것이다. 존재는 죽음을 통해 사라지지만 우리의 정신은 사라지지 않고 영원히 절망을 품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절망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영원히 울고 있을 것인가? 아니면 그것을 회피하는 기술을 연마할 것인가? 그것이 사라지지 않는 것이라면 우리는 어떻게 영혼의 안온을 추구할 수 있을 것인가? 신과의 대면을 통해 절망은 해결될 것인가? 신은 (절망하는) 우리가 어떻게 행동하기를 원하시는가?


내게 진실로 필요한 것은 내가 알아야 할 바를 명확히 아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해야 할 것을 정확히 아는 것이지만, 그러나 지식이 모든 행위에 선행하게 마련인 그런 방식으로는 아니다. 그것은 내 운명을 이해하는, 하느님이 정말로 나에게 하기를 원하는 바를 아는 문제이다. 나에게 진리인 진리를 찾는 것, 내가 그것을 위해 기꺼이 살고 또 죽을 수 있는 그런 이념을 찾는 것이다.

  「기록과 일지」(쇠얀 키에르케고어)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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