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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울과 철학 Aug 01. 2022

신의 존재가 요구되는 경우

불행에 대한 분노 대상으로서의 신

나는 요즘 되는 일이 없다. 정확히 말하면 근 6년동안 내 몸은 제상태가 아니었다. 우울증약에 중독되어 살았으며 세로토닌 수치는 바닥을 기어다니고  있었다. 음식을 먹으면 설사를 하고, 폭식증에 점점 살이 쪘으며 성기능도 최악이었다.

어찌하여 내 몸은 우울증에 이렇게 취약하게 만들어졌는가? 어머니를  아버지를 탓할수 밖에 없었다. 더 나아가 나를 이렇게 창조한 신을 원망할 수 밖에 없다. 몸에 이런 다양한 문제점을 겪으며  희망도 잃고 삶이 망한것 같은 좌절감을 느끼게 된다. 하나님을 증오하고 욕한다. 왜 나를 이렇게 창조했을까? 왜 내 정신과 건강을 이렇게 엉터리로 운용하고 있을까? 계속되는 불행속에서 나에게 바라는 것은 무엇인가? 나를 죽이려고 하는 것인가  차라리 교통사고로 급사시켜 줬으면 좋겠다. 한가지도 내 뜻대로 진행시키지 않으면서 나를 살려두는 이유가 무엇인가 이런 엉터리같은 삶 아무 미련도 없다.


 내가 불행에 빠져있을때 신은 원망의 대상으로서 그 존재가 요청된다. 신의 존재가 없다면, 그 불행이 그냥 주사위놀음처럼 랜덤하게 닥치는 것이라면 나는 바로 자살을 실행할것이기 때문이다. 무신론적 세계관에서 죽음은 물질운동의 소멸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신이 존재하기 때문에 나는 신을 욕하며 눈물로 하소연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다시 행복했던 때로 돌아가질 못할것이란 강한 예감속에서도 한줄기 희망을 어떻게든 찾아 보려고 한다. 누군가를 원망할수 있다는 것은 죽음을 조금 지연시켜준다. 원망이라는 행위에는 강한 삶의 의지가  숨어 있기 때문이다. 부모를 원망하고, 사회에서 만난 타인을 원망한다. 국가를 원망하고 사상을 원망한다. 무언가 원망할 대상이 있다는 것은  아직 삶의 모든 연결고리를 끊지 못한 것이다. 하물며 신을 원망하는것 만큼 궁극적인 원망이 또 있을 수 있을까? 이만큼 삶에 대한 미련을 강하게 보여 주는 것이 있을 수 있을까? 신은 기적을 내재하고 있다. 신을 원망하는 사람은 그 기적이 일어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신의 존재는 불행한 자에게 요구되는 무엇이다. 불행의 욕받이가 요구되기 때문에 인간은 신을 필요로 한다.  신의 존재를 통해 불행은 의인화되고  불행에 대해 한바가지 욕을 한 뒤에야 그는 다시 걷을 정신을 얻는다. 그리고 그에게 남은것은 오로지 하나, 기다리는 것이다.

우울증은 기다림을 망각한  병이라는 말을 들은적 있다. 기다리다보면 우울증도 사라질것이라는  뜻이다. 하지만 그 기다림이 너무 힘들다. 그 긴 기다림동안 신을 죽도록 원망할것 같다. 그말인즉슨  신의 존재가 나에게는 계속 요청된다는 것이다. 신은 잘못된 설계를 하기도 한다. 아마도 내 경우가 그럴것이다. 하지만 신은 오류를 수정하기도 한다. 다시 밝은 모습으로 돌아간다면 그 때야 신이 오류를 수정했다고 직관할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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