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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울과 철학 Dec 12. 2023

부끄러움

나는 어릴적부터 엉망이었던 것 같다. 지극히 정상이었다면 좋았겠지만 그렇지 못했다. 균형점에서 조금씩, 때로는 많이 벗어나 있었다. 내가 좀 더 겸손한 사람이었다면 어땠을까? 다른 사람들의 시선과 판단에 좀 더 예민한 사람이었다면 어땠을까? 내가 알고 있는 것, 알 수 있게 될 것 같은 것들에 더 관심이 없었다면...

세상이 무섭다는 것을 일찍 알았어야 했다. 너무 겁없이 모든 일에 덤벼들었다. 내가 알 수 없는 것들이 많다는 것을 알고 나는 때로는 바보라고 생각하고 세상일에 발을 담구는 것을 자제해야 했다. 그랬다면 이제 와서 내가 한 행동들로 인하여 이처럼 부끄럽지는 않을 것이다. Stay humble 그게 나에게 필요했던 삶의 자세였다.


아주 어릴때 동생을 정신적으로 학대했던 기억이 난다. 오빠를 존경했지만 오빠만큼 하지 못했던 동생에게 지독히 역겨운 과제를 내곤 했다. 동생은 지금도 그때의 기억으로 오빠를 좋은 사람이었다고 말하지 않는다. 동생은 자신이 노력해도 따라가지 못하는 나에게 두려움을 느꼈을 것이다. 나의 모든 것이 무너진 지금이 되어서야 동생과 나는 평등한 관계가 되었고 동생도 나를 조금은 동정한다.

나는 나 자신도 학대하였다. 내가 뭔가 대단한 인물이 될 줄 알았다. 무엇가 대단한 것을 발견할 줄 알았다. 그러한 가능성이 제로가 된 지금이야 나는 그때 나 자신에게 너무 했다는 것을 깨닳게 되었다.

나는 성장하면서 내 나름대로 큰 성공들을 이루었다. 그 성공의 가도안에서 나는 다른 사람들에게 함부로 하였다. 내가 윤동주처럼 부끄러움을 크게 느끼는 사람이었다면, <인간실격>의 요조처럼 내 안의 모순들에 진실로 예민하고 그 것을 끝까지 파고드는 사람이었다면 나는 이처럼 지금의 내 모습이 부끄럽지는 않을 것이다.

내가 거둔 큰 성공들은 다른 성공으로 이어지지 못했고 나는 좌절하여 우울과 절망에 빠져들었다.


인간관계에서 큰 실패들이 많았다. 특히 여자 문제에서...내가 처음 만난 여자는 무척 착하고 이런 나를 잘 보듬어 줄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나는 정말로 황당한 이유로 그 사람과 멀어지기를 선택했다. 내가 헤어진 여자들 대부분이 좋은 사람들이었지만 나는 되도않는 자존심을 부리거나 화를 참지 못하고 이별을 고하곤 했다. 물론 그중에는 안 만나는게 나은 사람도 있었지만... 만약에 내가 여자를 더 어려워하고 무서워했다면 그들과 그렇게 대책없이 인연을 만들어 가지 않았을 것이다. 또다른 문제는 조직생활이었다. 나는 조직생활이 어울리지 않는 인간류이다. 조직생활에 처음부터 미련을 두지 않았더라면 우울증이 발병하지도 않았을 것이다(물론 이는 아버지 쪽으로 부터 이어받은 유전형질의 영향도 크다) 그냥 무언가를 꾸준히 연구하는 연구자로서의 삶을 살았더라면... 그 연구가 내가 하고 싶은 분야에 대한 것이 아니라 내가 잘할 수 있는 분야에 관한 것이었다면 지금 훨씬 만족스럽고 후회없고 부끄럽지 않고 자책없는 삶을 살게 되지 않았을까? 


나는 수학을 너무도 못했다 그런 머리로 물리학을 연구하겠다고 다짐한 것도 잘못이었다. 고전 역학, 유체역학 등등 까지는 잘 따라갔다. 하지만 양자역학에서 부터는 수학이 너무 어려워져 잘 따라가지 못했다. 그때 나의 진로를 바꾸었다면 어땠을까?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인데 나는 화학공학에 뛰어난 재능이 있었다. 그때 요행이도 그런 재능을 알고 화학공학자로서의 나의 인생설계를 하였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화학공학에 재능이 있다는 것은 공학자로서의 삶을 살아야겠다고 마음 먹었을 때가 아닌 조직생활을 하기 위해 국가에서 준비하는 시험을 치르겠다고 마음먹은 다음이었다. 나는 우수한 성적으로 시험에 합격했지만 치열한 조직안에서 나의 내구성은 형편 없었다. 나는 정신적으로 무너지고만 것이었다.


이 후로 우울증은 종종 재발하였다. 그것은 나의 가정과 직장에서의 삶을 파괴했다.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간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무엇일까? 나는 하루하루 겨우겨우 살고 있다 연명하고 있다는 것이 더 맞는 표현일 것이다. 이러한 삶속에서 가끔씩 아니 매우 자주 느껴지는 과거 나에 대한 부끄러움을 마주칠때 마다 절벽으로 수직낙하하는 기분이 들곤한다. 그렇다고 죽음을 결정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나는 자살을 결정할 수 있을 정도로 강한 사람도 아니기 때문이다. 단순한 겁장이에 불과하니까 이렇게 살다가 늙어서 죽게 되는 것일까? 요즘 나는 코인에 한창 열을 올리고 있다. 코인이 큰 돈을 벌어다 주면 새로운 삶을 살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돈 속에 숨어서 더 이상 세상에서 성공하지 못함에 괴로워하지 않고 부자인 은둔자로 살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다. 그런데 그런일은 아무래도 일어나지 않겠지... 그냥 이렇게 살다가 가는 것이겠지...안타깝지만 받아들여야 할 일인 것 같다. 처음부터 모든 것을 알고 태어났더라면 더 험블한 사람이 되어 살아왔을 것을...

부끄러움을 생리적으로 느낄 줄 아는 아이었다면 훨씬 더 단촐하게 살았을 텐데... 후회가 불쑥불쑥 솟구쳐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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