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믿거하는 환상의 조합
한 2~3년 전 이야기다. 요식업을 하는 '참치맨'이라는 친구는 어느 술자리에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당시에 우리 동네에 오는 친구들에게 맛집을 어떻게 소개시켜줘야 욕 안 쳐먹을 수 있을까하고 고민을 토로하던 참이었다. 홍대에 산다고 해서 홍대 맛집을 다 섭렵하는 것은 아닌데, 꼭 이것들은 왜 홍대 사는데 그런 것도 모른다며 '싸우자'를 시전한다. 아무튼 모임에서 참치맨은 말했다.
"청년, 감성, 퓨전, 마약 포차. 이런 것만 피하면 앵간하면 맛있을 거야."
나는 이게 뭔소린가 싶다가도 내가 최근에 시켜봤던 배달 음식 업체 이름이나 외식해 봤던 리스트에서 묘하게도 그런 이름들을 교묘하게 피해갔다는 것이 스멀스멀 떠올랐다. 어쩌면 한 때의 나쁜 기억이, 아니면 이름에서 오는 신뢰성을 따져봤을 때 그런 것들을 피해왔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편견이거나.
아니면 그런 키워드를 너무나도 많이 봐서 '재미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문득 생겼는지도 모른다.
이번 이야기는 어떤 특정 업체를 까고자 만든 것은 결코 아니다. 비단 이러한 키워드들을 기피하는 사람들이 분명히 있을 것이고, 왜 이런 키워드들을 나도 모르게 기피하게 되었는지 뇌피셜을 끄적여 보려고 한다.
아픈 단어다. 이 단어가 처음 뇌리에 박힌 때의 문구는 분명 '청년 실업 88만 명'이었을 것이다. 나같은 어른 호소자들은 이러한 숫자에 임팩트를 씨게 받곤 한다. 뭔가 일이 안 풀리면 사회가 잘못되었고, 이 88만 명 중에 나 역시 포함되어 굴러간다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그래서 이 단어의 첫 인식은 '청년=힘든 이들'이었다. 비슷한 시기에 난도 형님이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며 힘들어도 괜찮다, 원래 아픈 거다라고 위로를 해 줬던 것 같은데, 지금와서는 그 책 내용도 사실 기억이 잘 안 난다. 그래도 원래 아픈 거라고 하면 참 잔인한 거고, 요즘 청년들이 '유독' 아프다고 생각이 들 뿐이었다.
그런 '힘든 사람들'이 이제 뭐 좀 해 보겠다고 나서기 시작했다. 누구는 대학에 흥미를 못 느꼈거나, 못 들어갔거나, 들어갔다 나왔거나 해서 창업, 회사에서 버티다가 나와서 창업, 회사에서 버티다가 이직하려다가 미끄러져서 창업, 그냥 창업... 아무튼 회사에서 안 써 준다면 내가 너를 사용해 주겠다며 많은 청년들이 사장님이 되었다. 당시 나는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근근히 학점 구걸을 하던 시기였는데, 이미 일찌감치 이른 나이에 매니저를 달거나 창업을 하여 사장님이 된 이십 대 초반 친구들을 심심치 않게 봤었다. 저마다 바나 카페를 차리면서 사장 타이틀을 달고 꿈을 키워갔다.
문돌이였던 나는 당시 똑같은 문돌이끼리 어차피 인생의 종착점은 '치킨집 사장님'이라는 소릴 자주 하곤 했다. 취업이 오질나게 안 되니까 어차피 나중에 할 거 일찍 차려도 되지 않냐며 서로에게 인생퇴장(retire)을 권유했다. 네가 무슨 소설가냐, 네가 무슨 작가냐, 네가 무슨 PD냐, 치킨이나 팔자. 이러면서. 소주는 늘어갔고, "문과 찌랭이들끼리 싸우고 그러면 안 돼요. 사이좋게 지내야지."하면서 공돌이 출신 젊은 사장님이 노가리를 잘라주셨다.
누구나 다들 꿈을 꾼다. 노선을 바꾼다 해도 그게 간절하면 그것이 새로운 꿈인 것이다. 한 때 베스트셀러 작가가 꿈이었어도 어느 날 요식업계의 해적왕 루피가 되겠다고 해서 그게 꿈이 아닌 것이 아니다. 팔할은 다들 죽기 살기로 하는데, 어떤 사람들은 진짜 그냥 '도피처'로 생각했나 보다. 꿈을 바꿨다면, 그 꿈에도 그만한 노력을 해야 하는데 계속 엑셀에 함수 바꿔 끼워 넣듯 "왜 안 되지?"만 연신 반복한다.
'백종원의 골목식당'에서 유명세를 탔던 대전 청년구단이 리뉴얼을 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아....', 보다는 '역시....'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 그런 이유였다. 꼰대같은 발언이겠지만 노하우가 부족하면 노오력이라도 해야 했다. 그런데 문제는 노오력을 해도 안 된다면 정말이지 반대로 '노하우'를 배우고 유지해야 한다. 누구는 노력이 부족해, 아니면 유지하는 근성이 부족해, 이렇게 쉽게 쉽게 말하곤 하는데 사실 총체적으로 흐름이 어긋나있기 때문에 폭망하는 것이지 뭐 하나가 쏙 빠져서 안 되는 경우는 별로 없다. 사실 이것이 청년, 중장년, 노년 등의 세대로 구분지어 어떤 요소가 있네 없네를 따지는 것도 우스운 이야기지만 이런 매체 노출이 선입견이나 이미지를 만들기에는 충분했다. 별 생각 없이 보면 '아, 역시 청년들이 해서 경험이 부족해서 망했구나.'라고 생각이 들테고, 당연히 내 일은 아니니 더 자세한 내막은 신경도 못 쓴다. 아무튼 나조차도 이때부터 청년이 하는 무언가는 '어딘가는 덜 완성된' 부분을 인정하면서도 좋은 점이 부각되는 무언가를 파는 인식이 자리잡게 되었다.
하지만 뭐, 요즘 사람들에게 '청년'에 대한 이미지를 물어보면 신선한 느낌이지만 가격도 비싸고 실속이 없다는 느낌이 강하는 의견이 많다. 한 때는 응원을 한껏 받는 키워드였지만 이제는 다분히 '실험적인' 이미지로 변해가는 이 키워드에 대해서는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이것은 단순히 일부의 편견인가, 아니면 정말로 실속이 없어진 빛좋은 개살구의 대명사가 된 것인가. 새로운 가게를 차리거나 사업을 할 때, 어설프게 덤비는 사람들이야 기성 세대나 젊은 세대나 있기 마련이지만 적어도 이런 오명을 씻으려면 잃어버린 신선함을 찾고 '노련함'까지 갖춰야 할 것이다.
이제는 외국인 친구들도 '감성샷'이라는 콩클리시 단어를 다 안다. 그 느낌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었다. 특정 문법을 가르칠 때 예문으로 종종 써내는 친구들이 있다. 가령 '-기만 하다'라는 표현이나 '-다고 해서 다 -는 것은 아니다'등의 표현들로 문장을 써 보라고 하면 이런 표현들이 툭툭 튀어나온다.
'그 식당은 예쁘기만 해요. 맛이 없어요.'
'음식이 예쁘다고 해서 다 맛있는 것은 아니에요.'
한번은 쓰기 시험 때문에 학생의 휴대폰을 수거하다가 잠금 화면에 멋진 음식 사진이 있길래 조금 물어봤는데 학생이 이 음식이 더럽게 맛이 없었다고 토로했다. 내가 시험삼아 "감성샷이에요."라고 던져보자 금방 이해하는 눈치였다. 이미 우리 반 학생들도 알고 있는 개념인 것을 보면 국가 상관없이 요즘 친구들도 이런 느낌을 인식하고 있는 모양이다.
감성은 항상 인스타그램과 함께 한다. 정사각형 틀에 나의 인생샷 모음을 올려 놓고 남의 부러움을 사는 것이 우리들의 모습인데 여기서 빠질 수 없는 것이 '감성'일 것이다.
'있어 보여야 하는 강박'
사실 예전에 아르바이트를 하던 곳에서도 어떤 신메뉴를 내놓을 때 맛을 고민 많이 하다가도 결국 마지막 단계에서는 플레이팅에 온 신경을 곤두세운다. 사람들이 사진을 찍어 퍼다 날라야 홍보도 되니까. 어떤 가게들은 인테리어 원툴로 온갖 감성을 쏟아붓곤 한다. 이건 가히 스튜디오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혹은 어떤 엔틱 박물관처럼 꾸며 놓기도 한다.
사실 키워드 남발성만 보면 '청년'보다 더 심하게 남발된 것이 '감성'이 아닐까 싶다. 이는 '허세'와도 쉽게 연결이 되는데, 한번 빠져들면 헤어나올 수 없을 정도로 습관적으로 사진사에 빙의되어 찍게 된다.
그렇게 사람들은 인테리어의 피해자가 되어간다. 나는 이윽고 이 식당은 '데이트용', 이 식당은 '찐맛집'으로 나름대로 분류하기 시작했다.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을 수 없다면 절충해서 적재적소에 쓰자는 마인드이다. 하지만 수 개월 째 '데이트용'은 활용하지 못하는 불상사가 일어나고 마는데...
앞서 말한 우리의 참치맨은 이러한 '감성'에 대한 현명한 대처법으로 '그돈씨'를 항상 되새겨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 돈이면 씨x 이걸 사먹겠다.'마인드. 나는 아직 모르겠다. 이왕이면 둘 다 챙기고 싶은 것이 사람 욕심인데. 그래도 감성보다는 실속이라는 것이 요즘에 드는 생각이다. 사진은 이미 이십 대에 찍을 만큼 찍었다.
나는 배지터와 손오공(카카로트)가 퓨전하는 때를 고대하며 숨막히게 만화책을 읽었던 그때를 기억한다. 드래곤볼 특성상 기공파 하나 쏘는 데에도 10~20분을 소요하는 애니메이션에 비하면 만화책은 전개가 빨랐지만, 오천과 트랭크스가 합쳐진 오천크스가 트롤짓을 하는 꼴을 계속 보고 있자니 고구마를 입속 가득 때려박는 느낌이 들어 숨이 막힐 수밖에 없었다. 아무튼 이 추억의 '퓨전' 키워드는 요즘 들어 '끔찍한 혼종'에 가까운 느낌으로 사용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참 별것을 다 섞고 합친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식업에 일가견 있는 참치맨에게 나는 물었다. 가령,
"이번에 치킨에 민트초코를 찍어 먹는 메뉴가 나왔대. 어떻게 생각해?"
"너는 만약에 '수박탕'이나 '오징어맛 우유'가 출시가 된다면 어떨 거라고 생각해?"
퓨전의 초창기, 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인식했던 초반에는 그나마 말이 되는 음식들이 나왔다. 가장 만만한게 '치즈'인 걸로 기억한다. 치즈 떡볶이, 치즈 닭갈비, 치즈 곱창 등등 다음은 퐁듀 치즈, 치즈 열풍이 휘몰아치고 이와 버금가는 괜찮은 퓨전 음식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후에 가짜 치즈, 가짜 파마산 얘기가 나오기 전까지는 줄기차게 먹고 저항없이 살을 쪄줬던 기억이 있다.
일일이 열거하기에는 기억력이 부족하지만 스멀스멀 말이 안 될 것 같은 퓨전 음식들이 나오기 시작했고, 아침 방송에서는 그것이 요즘 트랜드인 마냥 소개해대기 시작하면서 대환장 파티가 시작되었다고 생각했다. 퓨전은 기본적으로 1+1= '1이상의 무언가'가 되어야 하는데 자꾸 이 마지막 상수가 사라지려고 하는 것은 기분 탓인가 싶었다. 1+1= ??? 시x 이게 뭐지?
인테리어나 가게 콘셉트도 퓨전되기 시작했다. 오랜만에 번화가에 나갔을 때, 조금 과장해서 말하자면, 가게에 들어가서 메뉴를 보기 전에는 무슨 음식을 파는 곳인지 모를 곳도 간혹 있었다. 요즘이야 외식을 하는 양반들의 수준이 많이 높아져서 이런 정체불명의 콘셉트가 많이 줄었지만 분명, 우리의 기억 저편에는 대혼돈의 퓨전 시대가 분명히 존재했었다.
다시 음식으로 돌아가서, 음식에 '퓨전'요소를 넣는다면 정말이지 고객에게 참 잔인한 짓이다. 더군다나 퓨전의 두 가지 요소 중(왜 세 가지 이상일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 거지?) 하나라도 내가 모르는 요소가 있으면 엄마가 보고 싶어진다. 앞서 언급한 '청년', '감성'과 어우러진다면 이건 도전이 아니라 명백히 실험이 되고 만다. 나는 아는 맛을 즐기러 왔지 몰모트 실험쥐가 아니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