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황하지 마세요.
PC카톡을 어쩌다 실수로 밑으로 쭉 내린 적이 있었다.
가장 아래에는 프렌차이즈 업체 카톡목록이 주욱 있었다. 어떤 것은 물건 주문하다가, 어떤 것은 공공기관에 신청하다가 추가된 것 같고, 또 어떤 것은 무엇인지도 모를 이상한 상표가 있었다.
조금 더 올려보니 시간이 적게는 몇 개월, 많게는 3년 전에 시간이 멈춰버린 단톡방이 보였다. 그중에는 기기를 여기저기 옮기면서 예전 대화 목록이 다 날아간 방도 있었고, 방 자체에 누가 있었는지 모를 '대화상대 없음'방과 '알 수 없음'방도 몇 개 있었다. 아마도 술 먹고 정산하려고 모인 방이거나 학회, 지도제자 모임 때 썼던 방, 한때는 깔깔거리면서 놀다가 어느 순간 뜸해져버린 톡방들일 것이다.
사람 사이 소원해지는 거 요즘이야 아쉬울 겨를 없이 망각해 버리고 나서 '아, 맞다'할 테지만 한 명, 한 명에게 상처 받고 아쉬워하던 시절도 있었다. 인맥을 넓히는 것이 마치 하나의 숙명이거나 아니면 포켓몬 수집하듯 좀 더 스스로 강해지는 느낌을 받던 시절에는 어떻게든 친해지려고 노력하고, 연말연초에는 이악물고 메시지를 보내면서 같잖은 인맥관리를 했더랬다.
대부분의 남자가 그렇듯 군대라는 것을 다녀오고 나면 이런 환상이 조금은 깨진다. '조금은'이라고 말했다. 사실 나는 스물 후반까지만 해도 끊어질 사람, 이어질 사람이 자연스레 정리되는 마법의 기간이라고 착각하며 살았다. 그런데 가만 생각해 보면 그 지옥같은 곳에서도 계속 보고 싶은 사람은 계속 머리에 떠오르게 되고, 내쪽에서 먼저 연락을 하게 되고 만다. 이러한 작용을 계산에 넣지 않으니까 그저 자연스럽게 '정리되었다'고 착각하는 것이었다.
군대 다녀온 기간보다 조금은 더 오래 외국에서 살다 오게 됐는데, 이제 나이는 더 들고 간절함도 줄어드니까 당연히 인맥은 우후죽순 뚝뚝 끊기게 되었다. 그럼에도 연락을 해 주는 사람들이 있는데 요즘은 그 사람들을 하나씩 기억해 두려고 노력을 한다.
어떤 상황에 따른 끊김 말고도, 사건에 의한 끊김도 몇 번 경험해 본 적이 있다. 대표적인 예로 연인 관계겠지만 오늘의 주제는 연애는 아니거니와 이건 생각하면 할수록 깊은 빡침과 아려오는 통증 때문에 피하고 싶다. 나같은 경우는 누군가 싸워서 연락이 끊기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다만 나의 무례함이나 상대방의 특이한 성향으로 인해 끊겨 본 적은 종종 있었다. 사실 이런 경우는 다른 경우보다도 제일 마음이 아프다. 남에게 폐끼치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는 내가 그와중에 뭔가 무례함을 저질렀다는 것인데, 나중에 그 이유를 듣고 보면 정말이지 나의 무지함에 탄식을 하고 만다.
이유도 모른 채 손절을 당한 경우는 반대로 원인을 찾기 위해 며칠을 골머리 썩기도 했다. 상대는 이유조차 명확하게 알려주지 않는다. 그냥 내가 싫댄다. 그와중에 나는 이유를 찾다 찾다 지쳐버린다. 예전에 어떤 여친에게 차일 때도 내가 어디가 마음에 안 드냐고 바득바득 물어보던 나인데.
일, 연애만큼이나 어려운 것이 인간관계인 것 같다. 요즘은 그 누구보다도 노련한 척을 하면서 지내지만, 실상 인간관계가 확 줄었기 때문에, 그래서 더욱 관리한다고 할 것도 없을 것이기 때문에 별 문제 없어보이는 것뿐이다. 상대도 없이 입으로 '쉭, 쉭' 섀도우 복싱을 하면서 나는 '세계 챔피언이야.'라고 으스대는 것만 같다.
그래도 요즘은 끊겨도 당황하지 않는다. 뭐 다 이유가 있겠거니 싶고, 이제는 그런 생각조차도 할 시간이 없다. 그거 하나하나 생각하고 있자면 골치 아프다. 상대방은 나를 떨어지는 나뭇잎 줄기 끝자락만큼도 생각을 안 할 수도 있으니까. 나만 관계에 대해서 생각하면 참으로 억울하다. 사실 사람 관계 끊기는 것보다도 요즘은 인터넷 끊기는 게 훨씬 치명적이고 빡이 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