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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굶찮니 Jun 01. 2024

너무 많이 먹어도 기분이 좋아지진 않는다

완전군장은 쉽게 소화할 만한 것이 못된다

수업이 빡세면 빡셀수록 보상심리라는 것은 아주 씨이게 들어와서 그날 저녁이나 그주 주말이면 정말 '아주 많이' 먹게 된다. 항상 다이어트를 추구하지만 도돌이표가 되는 이유가 바로 이거다. 하지만 이 죽일 놈의 보상심리에 대해서는 다음에 다루기로 한다. 


먹기 전에는 배고프니까 많이 시키지만 정작 다 먹지도 못하고, 평소보다 많이 먹으면 기분이 오히려 좋지가 않다. 가끔은 탈도 난다. 그러면서 두어 시간 전의 나를 질책한다. 아이구 등신아 어쩌려고 이렇게 많이 먹었니....... 뱃살을 부여 잡고 끙끙 앓다가 잠이 들고 불어버린 몸으로 일요일 아침을 맞이한다. 


소화할 수 있는 양만 먹는 것이 가장 좋다. 언어 공부도 그렇다. 너무 조금 먹어도 안 되고, 적당히 먹어도 안 되고, 아주 살짝, 조금만 더 먹는 것이다. 이론서에는 i+1이 좋다고 한다. i가 학습자가 습득할 수 있는 구조 또는 양이라면 여기에 아주 살짝 더 어려운 단계를 부여해서 자연스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가설이다. 


어학당에서, 아니 당장 우리가 외국어를 배운다고 어떤 학원에 등록할 때 레벨테스트부터 하는 이유도 적절한 수준에 배치한 다음 매 수업마다 '기본+조금 더'를 반복하면서 언어 능력을 향상시키려는 것 때문일 것이다. 간혹 레벨테스트 때는 2급 수준 밖에 안 되는데 본인은 3급, 또는 4급가고 싶다고 땡깡을 부리는 학생이 있는데, 간혹 이렇게 학생 요구 들어줘서 보냈다가 '+1'이 아니라 '+2, 3'의 압박을 이기지 못하고 2급으로 빤스런을 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결국 수준에 맞는 교육이 중요하겠다. 공부에서는 자존심을 내려 놓아야 한다.


반대로 교육자의 입장에서는 어떤가. 아주 기민하게 이 학습자의 수준에 대해 정밀한 진단이 필요하다. 객관적인 지표(레벨테스트, 시험 점수, 토픽자격증 등)에 그치지 않고 주관적인 촉도 보조적으로 작용해야 한다. 외워서 대답한 티가 난다는 등, 유창하기는 하지만 말의 핵심이 없다는 등, 여기에서는 교사의 짬에서 나오는 바이브로 허술함을 잡아내고 측정해야 한다. 

 



수류탄 훈련 중 순직한 훈련병 사고 소식이 아직 뜨거운 상태에서 또 훈련병 사고 소식이 들려 왔다. 이젠 전역한 지도 꽤 되어서 기억이 아득하지만, 당시 훈련 받을 때 생활할 때 뭣같았던 기억은 끄집어내면 그런대로 쓸만하게 뭣같아서 고생하는 국군 장병들의 기분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는 있다. 더군다나 사람이 죽었다니 안타까울 따름이다.


인제 모 사단에서 일어난 얼차려 사건은 밤에 잠을 자지 않고 떠들었다는 이유로 완전 군장으로 구보 얼차려를 가해 1명이 사망한 사건이라고 한다. 행군 이외에 완전 군장을 멘 적이 있던가....... 있구나. 우리 분대의 분대장이 생일을 맞이하여 전부대원이 생일빵을 때렸는데 그만 팔이 부러지고 말았고, 팔 부러지는 그 병장 제외 전 부대원이 완전군장 메고 연병장을 돌았던 적이 있었다. 중대장이 바뀌자마자 생긴 일이라 상병장들은 오자마자 기선 잡는 거라며 툴툴댔지만 지내고 보니 역대 중대장 중에서 제일 인심 좋고 잘 챙겨주는 지휘관이서 다들 좋아했던 기억이 있다. 


그땐 뛰지 않았다. 아니, 뛸 수가 없다. 군장에 아무것도 안 넣어도 정말 무겁고, 빵빵하게 채우면 40kg 가까이 되며 처음 메보는 사람이면 메는 것조차 일이다. 어깨가 찌르는 듯이 아프고, 행군을 하다 보면 온 지구 대기가 나를 짓누르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걷는 것조차 힘든데, 지면에서 두 발이 동시에 떨어진다고? 안 된다. 한 때 인기가 많았던 TV 프로그램 '강철부대'나 '더 솔져스'에서 군장이나 그에 버금가는 무게를 짊어지고 뛰는 모습을 볼 때 나는 기겁했다. 저건 사람이 아니구나. 


완전군장은 현역들도 기겁하고 긴장한다. 그냥 '걷기'만 했는데도 무릎이나 허리 또는 발목이 나갈 수도 있고, 날 더운 날이면 퍼지기 일쑤다. 그걸 이제 군대를 맛보기 시작한 몇 주 안 된 훈련병에게 그것도 완전군장에 뛰는 것을 시켰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군인이 등장하는 영화나 드라마에서 완전군장이 무슨 클리셰마냥 벌 줄 때 등장하는 것도 가끔 보이는데 완전군장으로 행군을 하거나 벌을 받는 것은 생각하는 것만큼 그냥 막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조교, 교관, 지휘관도 교육자라고 생각해 본다면 이번 사건의 당사자는 학습자를 제대로 파악을 못했거나 그냥 '괴롭히고 싶어서' 그랬다고 밖에 설명할 수 없을 것이다. 내가 겪었던 군생활을 돌이켜보면 그땐 정말 뭣같은 훈련들이었고, 정말 버티기 힘든 얼차려였지만 당시 지휘관, 교관, 조교들은 적어도 '할 수 있는 만큼'만 부여하고 이끌었다. 


혹자는 그런다. 요즘에는 군입대 벽이 낮아져서 정신적으로 이상한 애들도 들어간다더라. 오죽 말을 안 들었으면 저랬을까. 그러면 규정이라는 것은 왜 있을까. 한 명의 군인으로 되지 못할 자원이었다면 집으로 돌려 보냈어야 했다. 아프면 병원에 보냈어야 했다. 건방지다면 규정 내에서 노련하게 조지고 어떻게든 쓸 만한 군인으로 만들어야 했다. 그냥 지휘 능력 아쉽다는 결론으로만 도달될 뿐이다. 대부분의 군 사건 사고는 조용히 묻히는 것이 국룰처럼 되어버렸지만, 이번 사건만큼은 면밀히 밝히고 재발이 안 되었으면 좋겠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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