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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굶찮니 Jun 09. 2024

내 MBTI는 IN... C발이야

할 말 없으면 MBTI라도 물어 보세요

T vs F, P vs J


동생이랑 오랜만에 만나서 이야기를 하다가 문득 "아버지는 MBTI가 뭘까?"라는 질문을 들어 한참 동안 토론을 한 적이 있었다. 원래는 F였던 내가 요즘 T적으로 일을 처리할 때마다 조금씩 T밍아웃을 하는 게 아닌가 화두를 던지자 동생도 요즘 자신도 그렇다고 대답하면서 이야기가 시작되었기 때문에 우리는 T와 F형 인간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게, 학창시절 때 나를 개패듯이 잡을 때를 생각하면 터미네이터의 T같긴 한데....... 요즘 나이가 드셔서 그런가 어떨 때는 F같기도 하고.


사실 사람들이 가장 밈(meme)화 했던 것은 T와 F의 분류이긴 했지만 이밖에도 참 많다. 어떤 유튜브 채널에서 여행갈 때 P와 J의 차이점과 관련된 영상을 재미있게 본 기억이 있다. J를 보유한 파티원은 축복받은 거라고. 그리고 그 J는 여행이 끝날 때까지 고통받는다고 하더라. 


나는 INFP여서 그런지는 몰라도 여행지에 가면 현지에 조용히 녹아 들듯 스며들어 여유있게 지내다 오는 것을 좋아한다. 물론 친구들과 가면 왁자지껄하게 지내는 것도 좋아하지만 계획없이 지나가다가 어느 가게에 문득 들어가 '오, 개꿀!'하면서 현지 느낌을 담뿍 즐기는 것을 좋아한다. 


사람들이 오해하는 것이 P라고 해서 전부 다 여행할 때 계획이 없고 즉흥적인 것을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나같은 경우는 최소한의 기차 시간, 전철 시간, 비행기 시간은 체크하고 마지노선을 계산한다. 가고 싶은 곳까지 거리와 시간을 계산하고 안 되면 과감하게 플랜 B로 넘어간다. (하지만 가는 도중에 전설의 포켓몬을 만나는 변수는 허용한다.) 여행은 계획이 어느 정도 어긋나야 제맛이다. 




어차피 사그라들 거, 실컷 즐기련다


지금은 사그러든 MBTI. 막차가 아닐까 싶지만 나는 아직도 나름 즐기고 있다. 대외적으로는 '일반화하고 유형화하는 것을 맹신하는 것은 안 좋습니다.'라고 상당히 시니컬하고 PC적인 말을 하고 다니지만, 친한 사람끼리는 MBTI만큼 드립의 시동 단계로 좋은 것이 없다. 요즘은 막무가내로 드립을 친 다음 친구가 대응하기도 전에 큰 소리로 "T냐?!"라고 엇박자로 들어가는 것을 참 좋아한다. 


어차피 보조지표이기 때문에 즐기기도 좋다. 어차피 MBTI는 예전 혈액형 성격설의 대체재일뿐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라는 것이 내 의견이다. MBTI 자체를 깎아내릴 의도는 없고, 그럴 수도 없다. MBTI는 아직 혈액형 성격설이 대한민국을 잠식하고 있었을 1990대 초반에서부터 시작되어 꾸준히 연구가 계속되어 오고 있다. 


혈액형 성격설은 독일의 어떤 학자가 우생학적인 사고로 특정 혈액형을 가진 사람이 우수하다고 주장하면서 생긴 것이라 한다. 이걸 일본에서 혈액형에 따른 성격이 다르다는 주장을 하며 책을 쓴 사람이 생겼고, 이 유행이 한국으로 들어왔다. 싸우기 좋아하고, 남들과 비교하기 좋아하는 우리는 그걸 덥썩 물어 맹신하기 시작했고. MBTI는 그에 비하면 이론적인 배경은 탄탄한 편이다. 


그래도 여러 성격의 스팩트럼을 어느 정도 16가지 정도로 가시화했을 뿐 이것으로 모든 성격을 규명할 수는 없으니까 그냥 인정하고 즐기는 것뿐이다. 내 스스로 임상실험(?)을 한 결과, 상황에 따라서 나는 T도 될 수 있고, F도 될 수 있었다. 여행에서 즐길 때는 P지만 막차 시간이 간당간당한 것은 또 싫어서 J적인 계획감을 바닥에 깔고 있다. 


이공계쪽 학문에서는 숫자 하나가 틀리면 처음부터 끝까지 잘못된 것이지만 인문학, 사회과학쪽 학문에서는 공식화되는 것은 거의 없고 가설로써 올려 놓고 뒷받침할 모델을 제시한다. 적용하다가 문제점이 생기면 또 어떤 불쌍한 대학원생이 학위 논문으로 '이... 이건 문제가 있지 않을까!'하고 머리를 들이밀거나, 학회에서 어떤 잔다르크 같은 교수님이 '이건 틀렸습니다! 새퀴들아!'하고 새로운 깃발을 꽂는다. 흐름이 바뀌기 전까지는 즐기는 것도 나쁘지 않다. 그리고 MBTI를 신봉한다고 해서 연애에 성공하거나 인생이 드라마틱하게 바뀌지 않는다는 것이 제일 중요한 점이겠다.  




외국인 학생들도 MBTI를 알까?


관련 수업 내용이 있어 학생들 잠도 깨울 겸 물어봤는데, 뭔소리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보여 진짜로 '잠만 깨운 효과'까지만 유효했던 것 같다. 한국 생활을 오래 해서 그나마 한국 친구와 접점이 있는 친구들은 100% MBTI에 대해서 알고 있었다. 예를 들어 학부생들과 하는 멘토링 활동에 참가한 학생이거나 사적으로 교류회 등에서 한국 친구들을 만난 학생들은 첫만남에서부터 MBTI를 물어보거나 인터넷으로 검사를 했다는 것이다. 


꽤나 흥미로운 관심사라 생각했던 나는 시무룩해졌다. 놀라울 정도로 나의 MBTI에 대해서 궁금해하지 않았다. 반절 이상의 학생이 '그게 뭔데 X덕아.'라는 표정이었다. 아니 그치만....


그래서 나는 관점을 바꿔보기로 했다. MBTI를 최초로 만들었다고 알려진 브릭스 모녀는 미국인이지만 MBTI를 지금 제일 향유하고 열광하고 있는 사람은 한국 사람들이니까 국소적인 차원에서 한국 젊은 사람들의 문화가 아닐까. 마치 스타크래프트를 블리자드 사라는 외국 기업이 만들었지만 한국의 민속놀이가 된 것처럼 말이다. 한국의 고유의 것은 아니지만 한국 사람들과 친해지려면 알아야 하는 것들 중에 하나가 되어버린 흐름.


아무튼 아무도 공감해주지 않은 MBTI 내용을 뒤로 하고 나는 속으로 외쳤다. 너네 T냐? 나는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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