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을 보고 걷는가 땅을 보고 걷는가
한국의 하늘도 꽤나 예쁘다.
나는 이 사실을 알고 있지만 좀처럼 되새기거나, 떠올려도 긍정하는 데까지는 수 초가 걸린다. '아, 그랬었지.'하고. 마치 예전에는 친했지만 한동안 만나지 않아서 이름조차 잊어버린 동창의 이름을 듣고, 그의 성격을 들으면서 새삼 그런 애가 있었구나 곱씹듯.
최근까지는 한국 하늘에 대한 회의감마저 들었다. 그것은 현생을 살아가는 내 지긋지긋한 루틴이 투영되었다고 봐도 된다. 알람에 깨고, 몽롱한 상태에서 이를 닦고, 오늘 스케줄을 생각하며 양말을 신고, 지하철에서 자리 쟁탈전을 펼칠 최선의 위치를 생각하며 빠른 걸음으로 걷다가, 그렇게 우연히 본 하늘은 무미건조한 회색이다. 뭐 아름다울 것도 없다. 회색을 특별히 좋아하는 회색변태가 아닌 이상 그것을 보면서 하늘 자체를 음미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1분 1초가 바쁜 출근시간대에는 말이다.
요즘은 또 덥디 더운 날씨가 고개를 저절로 숙이게 만든다. 나는 벼가 아닌데 말이다. 마치 고개를 뻗어 하늘을 노려 볼라치면 정수리를 잡고 땅에 내리꽂듯 햇볕은 쏟아진다. 시선이 떨궈진 그 자리에는 비가 온다. 장마는 끝났는데 송골송골 땀이 모여 지상에 떨어진다. 나는 구름이다.
바쁜 한 학기가 거의 끝날 때가 되어야 비로소 이번 휴가는 며칠을 쓰고, 얼마나 알차게 야무지게 놀아재껴야 할까를 고민한다. 지난번에도 이렇게 뒤늦게 깨닫고 비행기와 숙소를 알아보다가 비싸게 갈 뻔했다. 사실 서울만 벗어나면야 하늘만 예쁘겠나. 과학적으로 하늘은 정말 특이한 곳이 아닌 이상 거기가 거기일지도 모른다. 내가 한국 하늘에 대해 회의적이었던 이유 중 하나는 빌딩 탓도 있었다. 답답하게 가려져 전체를 가린 일부분의 하늘을 봐 봤자 감동은 1도 전해질리가 없다. 저녁 햇빛을 절묘하게 산란시키는 특별한 노을이 아닌 이상 눈길도 안 준다.
사실 여행뽕을 겁나게 맞았던 것이다. 나는 치앙마이에서 스쿠터로 도로를 달리면서 봐 왔던 넓고 광활한 하늘에 취해 살았다. 일본의 옛 저택과 맞물려 고요하게 배경이 되어 주는 진한 파란색 하늘에 세뇌당했다. 속초, 부산에서 봤던 바다와 간신히 구분되는 옅은 하늘색에 매료되었던 것이다. 같은 하늘이어도 장소가 달라야 한다고 고집했다. 마치 맥주는 맥주 전용잔에 먹어야 맛이 나듯.
여느 날처럼 잘 안 써지는 글 때문에 머리가 복잡해져 일찍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하늘에 노을이 졌다. 여전히 답답한 건물 틈사이로 구름들이 오묘하게 펼쳐져 있었다. 여러 빛으로 나뉘는 특별한 노을이었지만 예전에도 몇 번 괜찮은 노을을 마주했기에 특별히 감동을 받거나 휴대폰을 들어 사진을 찍을 정도는 아니었다.
그렇게 나는 멍하게 길을 가다 말고 서서 하늘을 바라봤다.
그리고 사진 기능을 켜서 사진을 두어 번 찍었다. 마치 여행객처럼. 이제는 로컬보다 외국인이 더 많아진 이 동네에서 나도 그들인 척하고 사진기를 꺼내들었다. 묘한 쾌감이 들었다. 아, 나도 내 동네를 여행할 수 있게 되었구나. 휴가가 부족해 미쳐버린 직장인의 기행은 놀랍게도 아무도 관심주지 않았지만 나는 일상의 개척자가 된 것처럼 한껏 더 예뻐진 하늘을 바라보며 비여행을 여행으로 바꾸는 방법을 터득해 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