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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굶찮니 Aug 26. 2024

감정이 넘칠 때는 톱니바퀴가 되어 보자

내 아임다. 어찌 내한테만 이럽니까?

감정 조절이 안 될 때가 있다. 마치 모오뗀 잡귀가 하나 붙어서 화를 부추기는 것처럼 말이다. 


귀신이라는 비과학적인 비유를 한 이유가 있다. 가령 화가 났다고 했을 때, 정말 말도 안 되는 울분이 가슴에 응어리가 지고, 이것이 좀처럼 컨트롤이 안 되는 것이다. 나도 모르게 조정이 안 되고 거침없이 심한 말을 내뱉고 행동을 하려고 들 때, 아주 나중에 생각하면 '내가 미쳤나, 왜 그랬지.'싶은 것이다.


실상은 감정에 홀린 것이다. 어떤 사람이 말했다. '감정은 오롯이 내 것이 아니다.' 내 것이 아니기 때문에, 하물며 지금 내가 느끼는 감정이 정확하게 무슨 감정인지조차 파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나는 위에서 '화가 났을 때'로 예를 들었지만 온전히 100% 화가 들어찼다고 말할 수 있을까. 상황에 따라서 억울함이 몇 %, 서운함이 몇 %, 어이없음이 또 몇 % 섞여 있을 것이다. 그렇게 무슨 감정인지 잘 파악을 못할 때 고장이나면, 사람은 보통, 운다. 

 



다른 사람들도 그러겠지만 나는 '비난'받는 것에 예민하고 못 견딘다. 이 나이가 되도록 '착한 아이 콤플렉스'를 못 벗어났나 싶다. 하지만 이제는 그 결이 좀 바뀐 느낌이 든다. 착한 아이이고 싶은 것은, 더 정확하게 말하면 내 잘못이 아니기를 비는 마음이다. 마음만 있고 행동이 따라주지 않으면 단순한 떼쟁이가 되겠지만, 요즘 몇 년간은 일하면서 내가 책임지는 상황을 안 만드려고 노력하는 것 같다. 


실수를 줄이는 것이 최대한이지만 내 실수가 아닌 경우에도 비난 받는 경우는 허다하다. '어라, 이것은 내 잘못이 아니라 다른 문제인데.' 하지만 내 앞에 화가 난 사람은 전후 사정도 모르고, 내막도 모르는 경우가 있다. 여기에서 같이 맞받아친다면, 당신은 요즘 그 유명한 MZ세대가 될 수 있다. 미안하다, 개소리였다. 요즘 자기 주장이 강한 젊은 사람들의 행동들이 MZ세대의 특징인 것처럼 나오는 것 같은데, 나같은 소심찌질 '늙MZ'도 있다는 사실을 알아 줬으면 좋겠다. 




그래도 감정이 충돌하는 일을 겪으면, 그리고 그 대상이 다름아닌 내가 된다면 정말 견딜 수 없이 힘든 것은 사실이다. 20대에도 힘들었고, 30대가 되어도 아픔의 지속시간이 짧아졌을 뿐 첫 강타하는 순간만큼은 여전히 짜릿하고 아프다. 그러니까, 쌍욕충분조건에 부합되기 때문에 여기서부터는 컨트롤의 문제다. 


마음을 넓게 가지세요. 역지사지의 마음을 가지세요. 용서하고 이해하려는 마음을 가지세요. 수많은 어른들과 자기계발서에서 들었던 내용을 다 써 봤지만 화가 나고 억울한 것은 어쩔 수가 없다. 


그래서 톱니바퀴가 되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기 비하가 아니다. 톱니바퀴는 시스템이 돌아가기 위해 꼭 필요한 존재이다. 혹자는 그런다. 그딴 톱니바퀴야 언제든지 바꿔낄 수 있는 거 아니에요? 그럼 지금 당장 바꾸던가. 다른 톱니바퀴 찾을 때까지, 내가 돌아가는 동안에는 나는 필수인력이니까. 톱니바퀴는 결코 자기 비하가 아니다. 요즘 같은 저출산 시대에는 쓸 만한 톱니바퀴 찾는 것이 겁나 힘들다. 




나는 톱니바퀴, 트랜지스터 내지 우편함, 와이파이 공유기일 것이다. 그냥 뭔가 연결해 주고 전달해주면 끝이다. 직장에서 수많은 힘든 일이 있겠지만, A라는 사람에게서 받은 비난이 결국 C를 향한 것이라면 B인 나는 그다지 고통받지 않고 섬세하게 넘겨주면 그만이다. 


말이 쉽지. 사실 그렇다. 중간자 역할은 정말 감정 받이, 욕받이로서 기능을 한다. 예전에 나는 극 F적인 마인드로 양쪽의 감정을 최대한 누그러뜨려 보려고 애를 썼다. 그러다 보면 내 감정도 다치고, 양쪽이 웃으면 나는 집에 와서 울었다. 그날 감정은 고장난 것이다.


고장이 나지 않으려면 톱니바퀴가 되어 밸런스 맞게 전달하고 빠지는 연습이 필요하겠다. A가 원하는 것은 내가 줄 수 없다. A가 화를 듣고 있는 것은 나지만 실제로 화가 난 것은 C이거나 이 회사 시스템이지 내가 아니다. 나는 하나의 전도체가 되어 받은 만큼 전달하면 덜 손상이 간다. 완충시키냐 마냐는 개인의 도량차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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