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몸도 안 따라주는 무의미한 각오
약속은 깨라고 있는 것이고, 새해 목표는 실패하기 위해서 세운다.
내가 한 말은 아니다.
하지만 우리는 놀라울 정도로 한 번 정한 것을 쉽사리 깨버리곤 한다. 그리고는 저울질을 한다. 아, 그때는 그럴 수밖에 없었어.
적지 않은 나이를 살면서 새해는 매번 곤란할 때 찾아왔다. 하필 추울 때, 하필 바쁠 때, 하필 더 젋어지고 싶을 때. 평소에 연락도 잘 안 하는 사람들에게 12월 31일 밤 11시쯤부터 문자를 돌린다. 마지막 대화는 정확히 1년 전 오늘임을 알고 이번 해에도 나는 인간관계를 충실히 소홀하게 대했구나 깨닫는다. 그래, 올해는 이 민망함을 어떤 미사여구를 붙여 사죄를 드려볼까.
그렇게 대국민 사과하듯 내가 아는 사람들 선에서의 소규모 사과를 돌리고 나면 새해가 찾아온다. 2024년의 마지막은 망국의 끝을 보는 듯한 엔딩이었기에 사람들은 조용한 분위기에서 새해를 보내려는 것 같았다. 종도 안 친 모양이다. 나도 카운트다운은 생략하고 혼자서 조용히 드라마나 보기로 했다. 12시가 다 되어갈 무렵에는 드라마 마지막 화가 끝나가는 구간이었다. 말도 안 되는 전개 구성에 결말도 어지러운 드라마였다. 2024년 마지막에 보기 참 좋은 드라마라 생각이 들었다.
이러는 와중에 새해 각오라니. 의미가 많이 퇴색되었다. 31일 수업에 학생들에게 한국어로 새해 인사를 알려주고 그 의미를 간단하게 설명하다가 과연 나도 새해에는 '복'이라는 것을 받을 수 있는 가에 대해 2초 정도 고민을 했다. 노력하는 자에게 복이 있나니. 그렇다면 나도 상응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는 것이고, 그렇다면 노력을 할 만한 목표를 세워야 하는 것이었다. 보통 이런 경우에는 직전 해에 실패한 것들을 먼저 떠오르곤 한다.
어느 모임에서 나는 정말 0.1의 고민도 없이 '언어 공부'를 내세웠지만 제일 급한 것도, 간절한 목표도 아니었기에 그 말에 의미를 심어 가며 말하지는 않았다. 그냥 다들 하나씩 새해 목표를 꺼내길래....... 이것은 마치 사교를 위해 가볍게 이야기거리를 꺼내거나 악세서리를 꺼내어 보여주는 일련의 무게감 없는 반응이겠다. 가령 누가 가족 이야기를 했다면 "어, 나도 동생이 하나 있어.", 누가 삼성폰을 쓰고 있다면 "어, 나도 최근에 갤럭시 S00 울트라로 바꿨어."라며 주머니를 후비듯이. 고백하건대, 나는 작년 어느 다른 모임에서도 '언어 공부'를 목표로 말했던 기억이 있다. 그때는 러시아어와 베트남어였는데 11개월이 지나도록 제대로 손대 본 적이 없다.
총기가 넘치던 20대에는 이런 새해 목표에 베팅을 하기도 했다. "내가 이번 해에는 술을 줄이... 아니 끊을 거야!" 그러면 주변에서 10만 원빵, 20만 원빵, 참가자들이 붙는다. 오케이, 콜! 이렇게 성사된 매치는 자연스럽게 석 달 열흘 후면 모두가 잊어버리곤 한다. 심지어는 내기를 한 당사자들 사이가 소원해지는 경우가 많았다. 나의 20대는 누구보다도 인간관계를 원했지만 누구보다도 인간관계가 빛의 속도로 멀어지는 시기였다. 억지로 이어 붙여보려고 노력도 했지만 진행 방향이 같으면 두 별은 영원히 만날 수 없다. 그 친구는 저 멀리 아득한 우주로 영원히 멀어져가고, 나는 그만 포기하고 나만의 궤도를 돌면서 새로 찾아들어오는 혜성들을 노렸다.
유년시절과 학창시절의 새해 목표는 사실 부모님의 목표였다. 국, 영, 수 100점 받기? 좋은 대학교에 가기? 주입된 목표가 이루어질리가 있나. 아니, 실제로 몇 번은 이루어졌다. 학업에 관해서는 쥐잡듯이 잡는 가풍 아래 몇 번의 점수 기적은 있었지만 나는 웃지 못 했고 기쁘지 않았다.
그러기에 근래에 들어서는 오로지 나의 의지에 의해, 치기 어린 투지가 섞이지 않은, 나를 위한 목표를 세우고 싶었다. 하지만 여름에서 가을이 넘어가는 시기에 뭉글뭉글 피어오르는 의지가 겨울이 되면 항상 일에 치여 고민조차 뇌가 피곤해지는 불상사가 생기고 마는 것이다. 그리고 오늘 같은 날이 되어야 곱씹는다. 와, 그래도 또 1년을 살아버렸네.
그렇게 수십 번의 새해를 맞이하다 보니 나는 과한 목표와 과한 기대를 져버리기로 한다. 사실 목표를 생각 안 하는 이유는 '어차피 안 될 거야'라는 마음보다는 '안 될까 봐 두려워'가 맞을 것 같다. 남들은 이를 나이가 든 탓에 생긴 '겁'이라고 표현하던데, 나는 이것을 '각'을 보게 되었다고 표현하고 싶다. 될 각이면 나도 지르겠지. 하지만 수많은 경험을 통해 나는 안 될 것은 애초에 시작하지 않게 되었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겁'이 맞기는 맞구나 싶다.
이렇게 겁이 생기면 목표를 낮추거나 기한을 너그럽게 늘리는 문제가 생긴다. "살을 10kg 뺄 거야.", "언제까지?", "글쎄, 언젠가는?", "그럴 바에는 석 달 안에 5kg로 정해 봐."
'그조차도 못 할 것 같아서 그러는 거야. 제발 조용히 좀 해....... 쉿!'
그래서 나는 메타적인 새해 목표를 세우기로 했다. 사실 이것은 목표 정하기라기 보다는 '기원'에 가깝다. 나는 올해 내가 더 '의욕적'으로 변하기를 바란다. 목표를 정하는 데에 망설임이 줄고, 과감하게 해 보고, 쿨하게 실패를 인정하고, 다시 또 도전해 보고. 나는 20대의 패기와 10대의 꾸준함을 원한다. 그때의 나는 적어도 그런 것쯤은 하나 있었다. 지금의 나에게는 스스로 현명하다고 착각하는 '눈'만 있는 것 같다. 스스로 '안 될 각'을 볼 줄 안다면서 탑 위에 사우론처럼 바라보고, 훔쳐보고, 판단만 하는 그 오만한 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