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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이즈 Mar 31. 2023

나는 돈 버는, 행복한 경단녀입니다.

엄마라는 이름으로 경단녀가 된 모든 이들에게

1.

커다란 이민가방을 메고 성큼성큼 내 곁에서 멀어져 간다. “두 밤 자고 올거야. 슈퍼에 천 원 맡겨놓았으니까, 먹고 싶은거 사먹어.” 엄마는 말을 마치고 냉정하게 돌아섰다. 그리고 성킁성큼 언덕길을 걸어올라갔다.


나는 멀어져가는 엄마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영원한 작별을 두려워하며 선채로 엉엉 울었다. 하지만 세상이 끝날 것만 같았던 마음과 다르게 눈물은 금방 그쳤다. 곧 배가 꼬로록 거렸다. 슈퍼로 달려가 내 얼굴만한 산도 한 개를 집어들고 말했다. “엄마가 천 원 맡겨 뒀다고 했어요.”


슈퍼할아버지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래. 산도 한 개 오십원”하며 볼펜으로 메모했다.


2.

엄마는 둘 째인 나를 낳고 얼마지나지 않아 일을 시작했다. 나를 감싸안고 미군부대에서 물건을 떼다 방문 판매를 했다. 처음에는 물건 한 개도 못파는 날이 많았다고 한다. 그러다 수완이 생기기 시작했다고. 그렇게 한 개 두 개 물건을 파는 성취감에 힘든줄도 몰랐다고 했다.


내가 등뒤에 혹은 가슴 앞에 잘 붙어 있는지없는지도 몰랐다고. 어찌나 얌전하게 잘 있는지 배고플때만 울었다고 했다.


내가 걸을 수 있게 될 무렵 엄마는 가게 자리를 알아봤다. 오늘은 엄마가 서울로 물건을 하러가는 첫 출장이었다. 산도를 손에 드니 내 얼굴을 절반쯤 가릴 수 있었다. 앞 쪽을 분리해서 딸기맛 흰 쨈을 혀로 핧았다. 새콤달콤한 맛이 온몸에 퍼져나가는 것 같았다. 엄마가 떠난 그자리에 서서 산도를 천천히 핧아 먹었다.


한 밤을 자고 일어나 아침 일찍 슈퍼에 달려갔다. 산도를 집고 슈퍼 할아버지에게 말했다. “엄마가 천원 맡겨뒀어요.”


3.

두 밤이 지나 엄마가 돌아왔다. 엄마는 종종 서울로 물건을 하러 다녀왔다. 나는 더이상 엄마가 떠난 길위에 서서 울지 않았다.


결국 엄마는 시장에서 수입품 가게를 차린 사장님이 되었다. 가게 앞에는 닭집이 있었고, 옆에는 떡집이 있었다. 엄마의 가게에는 온갖 진귀한 물건이 가득했다. 사람들은 시골에 유일무이한 수입품 가게에 와서 구경하고 행복한 표정으로 물건을 사갔다.


어느날 네 식구가 고기집에서 외식을 하던 날 아버지가 집게로 고기를 집어 가위로 자르면서 말했다. “니네 엄마가 공부만 좀더 했으면 큰일을 했을거다.”


4.

아버지는 세 번의 바람을 폈고, 세 번째 상대의 빚을 갚아주기위해 군에서 퇴직을 했다. 그래도 모자라 남은 빚을 갚기위해 시장에서 엄마 가게를 담보로 돈을 빌렸다고 했다. 그 빚은 고스란히 엄마 몫이 되었다. 결국 엄마는 그 빚을 전부 갚았다. 그 일을 아는 누군가 엄마에게 핀잔섞인 이야기를 할때마다 엄마는 원망하는 말대신 이렇게 답했다. “그래도 애들 아빠였잖아.”


5.

엄마.


내가 세상에서 가장 처음 만나게 되는 첫사랑 연인이자 유일무이한 존재.


엄마라는 말을 입밖으로 낼 땐 참 많은 것들을 담아 내게 된다. 사랑. 흠모. 미움. 고마움. 미안함. 존경. 그래서 또 눈물을.


엄마라는 이름으로 경단녀가 된 모든 이에게 온마음으로 존경을 표하고 싶다. 우리 엄마에게 그렇게 하고 싶은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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