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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이즈 Oct 14. 2023

불혹

4부

*

담배를 피우는 것은 쉽게 성공했다. 그러나 여자를 잘 아는 남자가 되는 방법을 알 수는 없었다. 난 미래를 만난 그다음 날 아침 일찍 도서관을 찾았다. 장서실을 한참 동안 뒤졌다.


텔레비전 뉴스에서 화제가 된 서갑숙의 <나도 때론 포르노그라피의 주인공이고 싶다>라는 책이 눈에 들어왔다. 멀티오르가슴. 케겔운동. 책을 통해 난생처음 접하는 낯선 단어들은 내게 마치 코끼리 다리를 만지는 장님의 심정을 느끼게 했다.


다시 장서실을 뒤졌다. 어느 일본 작가의 책은 구체적이고 더 적나라했다. 중학생 시절이 떠올랐다. 이미 대학생이었던 형과 형 친구들이 방에 모여 검은색 봉지에 담긴 비디오테이프를 꺼내 볼 때 문틈으로 화면이 언뜻언뜻 밖으로 새어 나왔다. 사람인지 야수인지 알 수 없는 서양인들의 행위들. 간혹 일본어로 괴성을 지르는 여자의 목소리. 중학생 내게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역겨움을 일으켰다.


‘난 절대 저런 짓은 하지 않을 거야’라며 결심했던 까까머리 중학생은 이제 없었다. 난 동물보다 더 동물적인, 남자보다 더 남자다운 여자를 잘 아는 사람이 되어야 했다.


며칠을 아니 한 달 넘게 책을 탐독했다. 이론적으로는 어느 정도 이해가 되었지만 실습이 문제였다.


*

“나우야. 500 한 잔씩 더 마실까?”라는 미래의 말에 “그래. 여기요. 500 두 잔 주세요.”라고 말한다.


곧 두 잔이 테이블 위에 올려진다. 미래는 잔을 들어 나에게 함께 마시자는 손짓을 보낸다. 시원한 맥주가 목을 타고 위장으로 흘러내려가는 것을 느낀다.


“경우. 기억나? 걔 이혼했다더라. 걔네 아버지가 유별났잖아. 머리 감으면 헤어드라이기 들고 다니면서 공주님 공주님 하면서 어릴 적부터 매일 머리 말려주고, 애지중지하셨지. 그런데 남편이 눈에 들어오겠어. 아버지가 하던 모습이 모든 남자의 표준이 된 거지 뭐야. 매일 불만투성이였지. 처음엔 참고 참던 남편이 어느 날은 그럼 너네 아빠랑 살아하면서 집을 나갔대.”


“그랬구나. 경우 기억나지. 같이 얼음땡 놀이도 하고 그랬잖아.”


*

경우는 댄서가 꿈이었다. 못 추는 춤이 없었다. 대학 축제 때 무대의상을 입고 춤을 추는 모습에 반하지 않는 남자애들이 없을 정도였다. 특히 웃을 때 초승달로 변하며 사라지는 눈과 볼에 아주 살짝 들어가는 보조개가 매력적이었다. 경우를 처음 만난 건 군제대 후 미래가 아르바이트하는 호프집에서였다.


미래 얼굴이나 보려 들렀는데, 자신은 아르바이트해야 한다며 경우를 소개해줬다. 경우는 나를 보며 “네가 미래 쫓아다닌다는 애구나.”라는 첫마디로 인사했다. 맥주를 몇 잔 마셨는지 알 수 없어질 무렵 경우가 내 눈을 빤히 쳐다보며 말했다. “넌 눈이 참 예쁘다. 너 오늘 이 누나랑 자자.”


또다시 경우를 만난 건 그해 겨울이었다. 새벽 무렵 고등학교 동창 진우와 한 잔 마시고 집으로 가는 길에 알바가 끝난 미래와 함께 길동무하고 있던 경우를 우연히 만났다. 자연스럽게 남녀 넷은 편의점에서 소주 두 병과 오징어포를 사서 대학교 광장으로 달려갔다. 다들 오리털 파카에 털모자, 털목도리로 무장하고 있었지만 매서운 겨울바람에 몸을 오들오들 떨었다.


그때 경우가 “우리 얼음땡 하자.”하며 큰 목소리로 외쳤다. 가위. 바위. 보. 진우가 술래가 됐다. 얼음. 땡. 얼음. 땡. 한 동안 깔깔거리며 다 큰 아이들은 즐거워했다. 경우가 얼음땡 도중 내게 귓속말로 말했다.


“방 잡을 테니까 이따 그리로 와.”


*

“암튼 경우 걔 워낙 남자를 밝히는데 이혼해서 걱정이야. 마치 목이 마른 물고기가 바다로 돌아간 느낌이랄까.”라는 미래의 말에 난 아무 대답도 하지 않는다.


경우가 좀 저돌적인 구석이 있지라는 말은 그저 내 목구멍에 걸려있다. 물론 세상에 저돌적인 여자가 경우뿐인 것은 아니다.


【5부】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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