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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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나가 없는 방학은 무료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 저녁까지 아르바이트를 했다. 일주일 후 예정된 아르바이트마저 끝나버렸다. 이나가 한국에 돌아오려면 아직 이주가 남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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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나 읽을 요량으로 학교 도서관에 가던 길에 과동기 절친인 가빈을 만났다. 가빈과 나는 자판기 커피를 한 잔씩 뽑아 들고 공원 벤치에 앉았다. 담배를 한 개비씩 나눠 물고 농담 따먹기에 열중하다 가빈이 뜬금없이 고개를 숙이고 어깨를 들썩였다.
“나 남자 친구랑 헤어졌다.”
그녀의 말에 위태로운 내 연애가 들춰지며 묘한 기류가 흘렀다. 가빈의 글썽이는 눈물이 코를 타고 입술 위에 닿을 것 같았다. 눈물을 닦아주고 싶어 내 입을 가빈의 입술로 가져갔다. 그렇게 한 참을 가빈의 눈물을 내 입술로 닦았다.
그 후 종종 가빈과 만났다.
“난 수염이 까끌하게 닿는 게 좋아. 돌아가신 아버지가 어렸을 때 내 얼굴에 수염을 문대시곤 했어.”
“이렇게 비비면 돼?”
가빈과 노을이 짙게 물들어 가는 운동장 벤치에 앉아 입술을 마주하고 얼굴을 좌우로 돌렸다.
“응. 그렇게.”
어린 시절 아버지가 새벽에 불쑥 집에 들어와 내 앞에 무릎을 꿇고 잘못을 빌었다. 무엇인가 잘못된 것 같은데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는 몰랐다. 바람. 세 번째 바람이라고 어른들은 말했다. ‘바람은 나쁜 거야. 바람은 절대 안 돼.’ 내면이 내게 소리쳤다. 그럼에도 이나가 과연 캐나다에서 다른 남자를 만나 자지 않을 것이라 누가 확신할 수 있을까. 내가 가빈과 입술이 닿은 것이 바람이라 할 수 있을까. 비록 너무 여러 번 입술이 닿았지만. “너 여자친구 있잖아.” 가빈은 종종 이렇게 말하고 먼저 일어섰다. 가빈을 집에 데려다주는 내내 우리는 팔짱을 끼고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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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나가 한국으로 돌아오기 사흘 전 가빈의 생일이었다. 해물파전에 막걸리를 일차로 마시고, 과동기가 처음 가빈을 소개해준 호프집에서 소시지야채볶음을 시켜 이차를 했다. 미리 준비한 선물을 가빈에게 주며 말했다. “립스틱이야. 생일 축하해.” 맥주 3000을 비우고 호프집을 나왔다.
“나 오늘 집에 안 들어갈래.”
가빈이 간절한 눈빛으로 내 눈을 바라보며 말했다. 가빈과 함께 그날 밤을 보냈다. 아니. 그날 밤이란 표현은 맞지 않다. 밤의 일부를 함께했을 뿐이니까. 가빈은 내게 내가 아닌 것을 요구했다. 턱으로 얼굴을 문질러 달라는 것까지는 이해가 됐다. 가빈과 그녀 아버지의 추억을 이해했기에. 그러나 애무의 시작과 과정, 귀에 대고 말해줬으면 하는 세세한 규칙들은 나를 너무나도 부자연스럽게 만들었다. 그러다 문득 이나의 맥주병이 떠올랐다. 그녀가 잠깐 쓰고 쓰레기통에 버린다던 그 맥주병이. 이 밤을 가빈과 보내면 이나를 보내줄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오히려 이나의 맥주병이라니. 잠시도 이곳에 있을 수 없었다. “미안.” 한마디를 남기고 옷을 주워 입고 모텔 밖으로 쫓기듯 나왔다. 밖은 한여름 날씨로 후덥지근했는데, 웬일인지 온몸이 시렸다.
【7부】에 계속
*이 글은 픽션입니다. 사건과 인물 등은 실제와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