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장
舍利子(사리자)는 빨리어 샤리푸타(Sāriputta)를 음역 한 것입니다. 부처의 10대 제자 중 지혜가 가장 뛰어난 사람으로 전해집니다. 한자어로 사리자를 살펴보겠습니다. 舍(사)는 ‘집, 버리다’등의 뜻이고, 利(리)는 ‘이익, 이롭다’ 등의 뜻입니다. 子(자)는 보통 ‘아들 자’로 보지만, 공자나 맹자처럼 선생님, 즉 ‘스승’을 뜻합니다. 그래서 한자적 의미로 사리자는 ‘(에고적) 이익을 버린 스승’으로 볼 수 있으니 의역도 함께한 절묘한 번역으로 볼 수 있습니다.
色(색)은 앞서 빨리어 ‘루빠’의 의역이라는 것을 밝혔습니다. 다시 정리하면, ‘몸과 그 물질적 구조’를 포함하는 뜻입니다. 그래서 몸과 그 물질적 구조는 空(공)과 다르지 않습니다. 공은 앞서 빨리어 ‘순냐’의 의역이라 했고, 그 뜻은 ‘있다, 없다’를 반복하며 생멸하고 있는 것. 단순이 ‘없는 것’이 아닌 ‘구멍과 구멍을 만드는 벽을 포함한 것’, 다시 설명하면 ‘나타난 것과 나타난 것의 배경이 되는 나타나지 않은 것’을 포함하는 것으로 이해하면 됩니다. 경험적 차원에서는 몸느낌이 ‘깜박깜박 거리며 생멸하고 있는 실상’ 자체를 의미합니다. 순간에서 순간으로 물질(몸)의 흐름이 강물처럼 흐르는 것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실상은 변화하는 흐름 속에 있습니다.(무상), 또한 ‘나’라고 주장할 무엇은 없습니다.(무아) 이것을 바로 알지 못하는 것(무명)에 의해 갈망과 혐오로 반응하게 됩니다.(고) 그러나 실상에 대해 관찰하여 바르게 알게 되면 몸과 정신작용(오온)이 본래 그러함을 깨닫게 됩니다.(공)
그렇기에 ‘몸은 공과 다르지 않습니다.’ 또한 ‘공은 몸과 다르지 않습니다.’
이 내용을 단순히 지적으로 이해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그러나 수행을 통해 경험적 차원에서 몸 자체의 실상인 ‘감각(웨다나)’을 관찰합니다. 거친 감각에서 시작해 점차 미세한 감각을 느끼는 훈련을 통해 그 감각이 순식간에 일어나고 사라지고를 반복하고 있는 것을 경험합니다. 매 순간 그 감각은 아주 미세한 ‘진동, 파동’처럼 느껴질 것입니다. 그때 ‘몸이 공과 다르지 않고, 공은 몸과 다르지 않다’는 말의 의미를 경험적으로 이해하게 됩니다.
‘몸과 그 물질적 구조’는 실상의 차원에서 변화하고 있는 흐름과 같습니다. 변화하고 있는 흐름이 바로 ‘몸과 그 물질적 구조의 실상’입니다. 경험적 차원에서 이것은 마치 진동, 파동과도 같습니다.
웨다나(감각)은 변화하고 있는 흐름입니다. 변화하고 있는 흐름이 바로 ‘웨다나(감각)’입니다. 산냐(지각)는 변화하고 있는 흐름입니다. 변화하고 있는 흐름이 바로 ‘산냐(지각)’입니다. 상카라(반응)는 변화하고 있는 흐름입니다. 변화하고 있는 흐름이 바로 ‘상카라(반응)’입니다. 윈냐나(인식)는 변화하고 있는 흐름입니다. 변화하고 있는 흐름이 바로 ‘윈냐나(인식)’입니다.
그래서 ‘웨다나, 산냐, 상카라, 윈냐나’로 일컬어지는 정신작용 네 가지 역시 다시 또 이와 같습니다. (受想行識 亦復如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