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어질 결심 영화+각본
영화가 끝나고 “와 진짜 이상한데 좋다"라며 한참 앉아있었다. 그래 봐야 덧붙인 말이라고는, “청록색 소화할 수 있는 사람 흔치 않은데 역시 탕웨이” 정도. 구체적인 장면이나 대사가 기억에 남는다기보다는 먹먹한 여운이 오래 남아, 집 가는 길에 그제야 영화에 대해 이야기를 했을 만큼.
1. 보물찾기
각본을 읽은 뒤 여러 후기와 평론을 접해보고 나서, 여기저기에 산발적으로 흩뿌려져 있는 의미를 찾는 게 보물 찾기처럼 흥미로웠다. 파면 팔수록 알게 되는 점이 많아서 ‘아 영화를 보는 동안은 이 이야기의 반의 반도 파악을 못했었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특히 녹색과 안개에 관한 분석이 인상적이었다.
보통 서래는 빨간색 또는 푸른 계열의 의상을 입는데, 폭력, 범죄, 살인에 연루되었을 때에는 새빨간 옷을 입고 등장하고, 이포에서 해준과 다시 마주쳤을 때는 청록색 드레스를 입었다. 이러한 색깔의 대비로, 두 주인공의 이야기가 불륜으로 보일 수도, 절절한 로맨스로 보일 수도 있다. 더 나아가, 이런 시선에 따라 서래가 끔찍한 살인의 용의자 또는 사랑에 빠진 여인으로 보일 수도. 그렇지만 아무리 서래를 비판하려 해도 내 눈에는 그저 사랑에 처절하게 목말라 갈증을 느끼는 안타까운 인물로만 보인다.
영화 2부의 배경인 이포는 오전에 안개가 자욱하게 끼는 바닷가이다. 서로의 감정에 확신이 없었던 두 사람의 마음을 형상화한 것 마냥 배경에는 안개가 계속 깔려있다. 이 안개로 하여금 서래가 입었던 청록색 드레스는 청색으로, 또 녹색으로 보이면서 서래라는 인물이 가진 진실의 양면성을 내포한단다. 서래가 두 번째 남편 임호신 살인사건의 용의자로 지목됐을 결정적인 순간에, 서래의 인상착의를 봤던 사람들의 의견이 나뉜다. 흐린 곳에서 본 사람은 청색, 빛이 있는 곳에서 본 사람은 초록색으로 진술이 엇갈린다. 초록이 가지는 진실의 의미는 아팠던 서래와 칠성의 어머니를 고통에서 벗어나 쉬게 해준 펜타닐, 서래의 이야기를 담아 간병하던 할머니들에게 읽어주었던 노트, 또 서래 자신이 모래 아래로 파고들어 갈 때 사용한 양동이로 드러난다. 이 해석을 읽고, 청록색 소화할 수 있는 사람 흔치 않은데 역시 탕웨이 아릅답다! 고 여겼던 내가 너무 단순해서 부끄러워졌다.
2. 서래의 언어
인물 설정 자체가 한국어에 미숙한 사람이라 대화 내용에서 단어의 의미에 더 집중하게 되는 포인트가 있다. 구어체를 문어체로 말한다거나, 의미는 맞지만 어딘가 어색한듯한 단어 선택이 주는 이질감이 그 의미에 대해 다시 곱씹어 보게 한다는 말이다. 영화를 볼 때는 빠르게 지나쳤던 부분을 각본을 읽으며 호흡을 멈추어 다시 생각해 보는 재미가 있었다.
예를 들어,
산에 가서 안 오면 걱정했어요, 마침내 죽을까 봐.
한국에서는 좋아하는 사람이 결혼했다고 좋아하기를 중단합니까?
죽은 남편이, 산 노인을 돌보는 일을 방해할 순 없습니다.
원하던 대로 운명하셨습니다.
서래는 외할아버지가 필사한 중국의 산해경으로 한국말 공부를 시작했다고 했다. 본인도 뒷부분은 맘대로 지어내면서. 서래가 홀로 드라마를 보며 따라한 대사,
“당신 만날 방법이 오로지 이거밖에 없는데 어떡해요”
이 문장이 해준과 서래가 다시 만났을 때 이포에 도대체 왜 왔냐고 공격적으로 묻는 말에
“그게 왜 중요한데요? 당신 만날 방법이 오로지 이거밖에 없는데 어떡해요!”
로 반복되기도 한다. 드라마 대사를 본인의 말로 내뱉는 게 왜인지 안타깝게 느껴졌다.
해준은 서래와 대화하기 위해 중국어를 배우고, 서래는 서래 나름의 방식으로 대화하는 게 약간 애달프면서 귀여웠다. 마음에 여유가 없을 때는 번역 어플의 차갑고 딱딱한 목소리를 통해 대화를 하는 것이 위트 있고 신선하다. 때로는 서래의 사랑스러움이, 냉정함이 배가 되어 느껴지기도 한다.
3. 서래와 해준은 무엇일까
흐린 눈을 하고 보면 둘의 관계는 꽤 자연스럽고 아름다워 보이기까지 한다. 시마 초밥을 먹고 비워진 통을 착착 정리하고 이어서 칫솔에 치약을 짜주는 장면은 서로 처음 보는 사이임에도 불구하고 오래 시간을 공유했던 관계처럼 익숙해 보이기도 한다. 해준이 서래에게 ‘나랑 같은 종족이란 거 진작 알았다’고 표현하기도 했듯이. 보는 내 마음이 편안해질 정도로 어색함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구체적으로 어떤 시간 또는 어떤 장면에서 둘의 마음이 시작되었다고 콕 집어서 이야기하기는 어렵지만, 잠이 부족했던 해준을 눕혀두고 호흡의 템포를 맞추며 ‘당신은 해파리예요, 눈도 코도 없어요, 생각도 없어요’라며 서래가 입면을 돕는 장면에서 둘이 확실히 가까워졌음을 느낄 수 있었다. 누군가와 함께 있을 때 조용히 잠에 들 수 있게 된다는 건 그만큼 믿고 의지한다는 말인데, 해준은 잠을 잘 못 자서 수면 클리닉을 찾을 정도였으니.
서래에게는 애정을 주는 남편 대신 소유욕을 과시하는 기도수가 있었다. 이름만 남편이지 서래의 사람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관계. 반면 해준이 본인의 공간에 초대하며 애매한 볶음밥을 해주면서 보여준 애정, 그리고 잠복근무라는 탈을 쓰고 시간을 들여 계속 서래를 이해하고 관심을 보이며 관찰을 한 것이 서래에게는 사랑의 표현으로 받아들여졌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구소산에서는 기도수의 등을 밀어 죽였지만, 호미산에서는 유골을 뿌리는 해준의 뒷모습을 안아주었다. 이렇듯, 서래는 마음을 행동으로 보이는 사람이다. 서래의 어머니가 한국에 가면 물려받을 산이 있다는 유언을 남겨 이 때문에 한국으로 온 것처럼, 서래는 해준을 보기 위해 이포로 왔다. 현실적으로 아무도 인정해 주지 않지만, 본인 스스로 굳게 자신의 것이라 믿었기에.
해준이 가장 중요한 가치로 여겼던 정직함을 무너뜨리면서까지 서래를 보호하려는 태도를 보이며, 고로 본인 스스로 ‘붕괴’했다고 울부짖은 것 자체가 온 마음 다해 애정 한다는 고백이다. 결국 미결 사건에 집착하는 해준에게 영원한 미결 사건으로 남기 위해 구덩이를 파서 파도에 잡아먹히는 선택을 하게 된 것이 서래의 선택이었다.
지인들에게 사랑의 의미를 물었을 때, 힘들 때 의지하며 서로 발전하는 것, 하루 종일 맨얼굴이었다가 립스틱 바르고 나가고 싶어지는 것, 호기심으로 시작해서 연민과 애정이 더해지는 것, 같이 있고 싶은 것, 희생 등 여러 대답이 있었다. 물론 어느 관계에서 정의하는 사랑이냐에 따라 다르긴 하겠지만, 어떤 사이이든 간에 내 노력을 들이는 게 아깝지 않고 오히려 기쁜 것이 사랑 아닐까. 특히 끝내 마음 아픈 사랑은, 멍하니 머리를 비우고 앉아있을 때 계속 그 속을 헤집고 다니는 것. 둘은 서로에게 어떤 감정으로 남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