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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마도당근 Jul 04. 2021

진우 오빠

 아무것도 안 하고 그저 바라보기만 해도 마음이 따뜻해지는 것들이 있어. 나한테는 그게 노부부, 아기, 꽃, 따뜻한 국이 있는 저녁 식탁.


 내가 말했었나? 나한테 오빠가 있었다고. 만난 적은 없는데, 이름이랑 그 아기의 역사는 알아.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엄마 아빠가 오빠 사진은 다 찢어서 태워버렸대. 취하지 않으면 얘기도 잘 꺼내지 않아서, 사실 알고 싶어도 알 수 있는 방법이 거의 없어.


 한 번은 엄마랑 맥주를 마시다가 엄마가 뜬금없이 이런 말을 하더라. 앞으로 점은 보지 말라고. 엄마가 오빠를 임신했을 때, 친구 점 본다는 걸 따라서 갔다더라. 근데 엄마한테 한마디를 탁 던지더래. 지금 배에 있는 아이가 건강하게 나오면 남편이 건강하지 못할 거고, 아이가 건강하지 않게 나와야 남편이 건강할 수 있다고.


 그 뒤로 매일 엄마가 만삭일 때도 아빠가 잠에 들면 숨을 쉬나 안 쉬나 가만히 쳐다보고. 푹 잠을 못 잤대. 오빠가 아기일 때 엄마 아빠 곁을 떠난 이후로 매일 스스로를 자책했다는 거야. 그 점 보는 거 따라가지만 않았어도 아기가 죽지 않았을 텐데. 결국 내가 죽였네. 하고.


 신생아 중환자실 실습을 할 때 우리 오빠랑 똑같은 병을 앓는 아기가 있었어. 엄마가 얘기했던 것처럼 장이 안 좋아서 뭘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먹더라도 결국 소화를 못하니까 빼빼 말라있더라고. 그 아기를 며칠 봤어. 나는 처음 그 아기를 봤을 때부터 우리 오빠가 생각나서 저 아이만큼은 꼭 살아서 이 병원을 나가길 기도했어. 종교도 없는 내가 정말 간절하게 그 아기를 보면서 기도를 하고 있더라고.

 

 마지막 날은 점점 심박수가 느려지더니 아기가 숨을 헐떡이더라. 마스크 안으로 눈물이고 콧물이고 다 흘러나와서 저 구석으로 옮겨가서 멀찍이서 아기가 죽어가는 모습을 지켜봤어. 그 땅콩 같은 손가락 발가락이 파랗게 된 채로 점점 차가워지더라.


 아기가 죽고 나서 아기 부모가 한두 시간 동안 아기를 끌어안고 이름을 하염없이 불렀어. 여자 아이였는데, 토끼 그림이 그려진 솜 잠옷으로 갈아입히고 파란 땅콩도 하나하나 정성스레 쓰다듬고. 그걸 바라보다가 문득 우리 엄마 아빠도 “진우야, 진우야” 부르고 마음속 저 구석 어디로 꽁꽁 숨겨놨겠구나.


 여하튼 그날 실습 끝나고 엄마한테 전화해서 괜히 반찬 잔뜩 해서 보내달라고 어리광 부렸어. 멸치볶음도 바삭하게 해달라고 얘기하는데 그냥 목젖을    맞은 것처럼 눈물이 나오려고 해서 아몬드도 많이 넣어달라 그러고 끊어버렸지 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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