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가 탈출 기원
2021년 7월 내 나이 27살. 여전히 엄마가 해주는 집 밥을 먹으며 간간이 청소기를 돌리고서는 대청소를 했다고 큰소리치는 건 중학생 때와 다름이 없다. 그 시절 집에서 학교를 다닐 때만 해도 최소 마을버스 15분에 지하철 세 정거장은 이동했고, 통학했던 대학생 시절에는 무려 경기도로 넘어가는 빨간 광역 버스를 타고 매일 꼬박 1시간 이상 이동했다. 이동시간이 길면 극심한 피로감에 시달렸기에, 커서 일을 하게 되면 반드시 집에서 걸어 다니리라 다짐했었다.
운이 좋게도, 요즘의 나는 걸어서 일터에 다닌다.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 '걸어서', '본가에서', '출퇴근을 한다'는 말을 들으면 대개 토끼 눈으로 되묻는다. 그러고 나서는 5살 배기에게 '횡단보도 건널 때는 꼭 끝까지 손을 들고 걸어야 해'라고 이야기하는 표정으로 한 마디씩 거든다. 천운이라 여기고 지금 다니는 회사를 평생직장으로 삼으라고.
편하고도 불편한 나의 집. 이 집 때문에 내가 진정한 어른으로 성장하지 못한다고 여겨 최근에는 독립만이 살 길이라며 외치고 다녔다. 마인드맵으로 부모님과 동생을 설득해가며 독립을 해야 하는 현실적, 실질적, 이론적, 합리적 근거를 쥐어짜 냈다.
이를테면, 더 넓은 시야를 가지려면 혼자 공과금도 내봐야 하고 반찬거리를 고민해 보기도 해야 하지 않겠느냐. 내가 내 밥그릇 좀 더 필사적으로 챙기면서 주도적으로 독립심을 가지고 살 테다. 성장 시기별 성취 과업을 이루어야 한다. 내로라하는 학자들이 성장 이론을 괜히 만들었겠느냐. 부모님이 퇴직한 이후 자녀가 집에 있으면 관계가 불편해진단다. 경제적 독립과 실질적 독립이 합치해야 한다. 가족은 멀리 살아야 애틋해진다. 엄마 아빠가 약해졌을 때 내가 손가락만 빨고 누가 해결해 주기를 기다리면 되겠느냐. 직장 여성에게 집은 휴식의 공간이어야 하는데 그 공간과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등등. 얼핏 보면 멋진 어른처럼 보이기를 소원하며 말들을 보부상처럼 늘어놓았었다. 이런 모습조차 지금 돌이켜보면 철들지 않은 대학생 같아 보인다. 몸과 나이만 어른이지, 아직 세상 풍파를 맞이할 준비가 되지 않은 나는, 준어른이다.
정말이다. 막상 전세를 알아보니 서울의 집값이 정말 금값인 것이다. 같이 살 수 있을 때까지 부모님 곁에서 일 다니며 돈 모으라던 말이 잔소리처럼 들린 게 엊그제였는데 말이다. 아주 살짝만 무리하면 되겠지 하는 가볍디가벼운 마음으로 집들을 핥짝 들여다본 이후로는 잔소리가 아닌 피 같은 충고로 여겨진다. 모르는 척 그냥 더 눌러살아버릴까.
아아- 아직 멀었다. 온전한 어른이 되기에 나는 아직 한참 멀었다. 그렇다고 청소년이라기에는 너무 아는 게 많아져 버렸다. 지금 컨디션을 말로 표현하자면, 준 청소년보다는 준 어른이 더 그럴싸해 보이지 않는가.
고로, 나를 껍데기만 어른인 준 어른이라 불러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