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나를 흔드는 두려움은 무엇인가요?
두려움은 본능이다.
진화의 과정에서 살아남기 위해 설계된 정교한 경보 시스템. 위험을 감지하고 싸울지, 도망칠지를 결정하게 하는 이 감정이 없었다면 인류는 이미 멸종했을지도 모른다. 나 역시 살면서 수많은 두려움에 잠식되곤 했다.
관계에서의 말실수, 낯선 곳으로의 이사, 예기치 못한 변화들. 두려움이 커지면 말문은 막히고 사고는 단순해진다. 그저 도망치고 싶어진다. 지금도 선명한 기억 하나가 있다.
초등학교 6학년, 처음 자전거를 배웠을 때다. 엄마 생신상에 올릴 떡을 만들기 위해 쌀을 싣고 4km 떨어진 면소재지 방앗간으로 향했다. 8월의 해는 길었기에 오후 늦게 출발해도 괜찮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방앗간 일은 예상보다 늦어졌고, 설상가상으로 비까지 쏟아졌다.
비가 그친 뒤 서둘러 귀갓길에 올랐다. 집으로 가는 길의 절반은 험한 산길이었다. 사방은 어느새 어둠에 잠겼고, 인가는 끊겼다. 검은손을 흔드는 듯한 아름드리나무들이 길 양옆에서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나무가 흔들릴 때마다 내 마음도 함께 쪼그라들었다.
축축하게 젖은 언덕을 오르면서 자전거를 끌다 탔다가를 반복하며 간신히 나아갔다. 6·25 전쟁 당시 무장공비들이 묻혔다는 공동묘지 근처에 이르자 공포는 극에 달했다. 페달을 밟을수록 땅이 내 몸 위로 솟구쳐 오르는 듯한 기괴한 현기증이 일었다. 아무리 발을 굴러도 자전거는 제자리에서 맴도는 것만 같았다.
그때였다. “연하야!” 어둠을 뚫고 들려온 한 줄기 목소리! 천상에서 들려온듯한 그 목소리!
걱정이 되어 마중 나오신 엄마였다. 그 목소리를 듣는 순간, 거짓말처럼 두려움이 씻겨 내려갔다. 이후 삶의 고비마다 나는 그 시골길을 떠올렸다. 그러면 가슴을 옥죄던 불안이 마법처럼 가라앉곤 했다. 두려움은 마음의 장난일 뿐이라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괜찮다. 다 괜찮다.
그러나 미래의 불확실성에서 오는 두려움은 추억만으로도, 마음을 달래는 것으로도 해결되지 않았다.
상고 졸업 직후 시작된 사회생활의 막막함, 스물여덟 살 한의대 진학까지 이어진 좌절, 둘째 임신 중 겪은 교통사고의 트라우마. 특히 환자들을 마주하며 나의 처방과 노력이 현실의 한계에 부딪힐 때 느꼈던 답답함은 나를 끊임없이 흔들었다. 이 두려움들은 회피한다고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그것은 분명한 신호였다. 더 공부하고, 더 치열하게 준비해야 한다는 절박한 경고였다. 나는 방식을 바꾸었다.
두려움이 엄습할 때마다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몰입했다. 두려움에 이름을 붙여 객관화하고, 발생 가능한 모든 변수를 시뮬레이션했다. 독서와 소통, 배움을 통해 얻은 실행 강령들을 하나씩 실천에 옮겼다.
불안이 파고들 자리에 공부와 행동을 채워 넣는 경험은 낯설고도 신기했다. 마음의 경험을 몸의 경험으로 바꾸는 일은 반신반의하며 한 걸음씩 내딛는 과정이었다. 실천이 쌓이자 마음의 두려움은 어느덧 일몰처럼 조금씩 자취를 감추기 시작했다.
인간이 사회적 동물인 이유는, 어쩌면 이렇게 서로의 지혜를 빌려 각자의 두려움을 함께 건너기 위함일지도 모른다. 이제는 안다. 두려운 감정이 올라올 때, 그것은 내게 이렇게 속삭인다.
“너는 지금, 준비해야 해.”
나는 그 목소리를 통해 과거를 성찰하고 미래의 이정표를 세운다. 슬픔과 분노, 두려움은 외면할 괴물이 아니라 성장을 위해 마주해야 할 숙제다. 숙제를 해낼수록 마음은 평온해진다.
이제 두려움이 나를 흔들어도, 나는 쉽게 흔들리지 않는다. 그 감정은 나를 멈추게 하는 것이 아니라 삶의 주도권을 쥐고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동력이기 때문이다. 나는 두려움과 싸우는 대신, 그것을 성장의 연료로 삼아 살아가고 있다.
[나를 만나는 시간 18]
Q. 나는 무엇을 준비하며 살아가고 있나요?
두려움은 늘 행동의 출발점이었습니다.
혼란이 오면 분석했고, 막막함 앞에서는 계획을 세우고, 불안이 커질수록 공부하고 실천을 했습니다.
그래서 이제 두려움이 올라올 때마다 묻게 됩니다.
“나는 지금, 무엇을 준비하며 살아가고 있나요?”
질문은 나를 성장하게 합니다. 성장은 어제와는 조금 나은 존재가 되는 과정입니다. 나 자신을 알아가는 질문 매주 토요일에 연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