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사진, 서울 산책
올해 2월, 한창 추워서 손이 덜덜 떨릴 때 카메라를 들고 동호대교를 건넜다.
오후 다섯시 쯤에 압구정 역에서 미팅이 끝났는데,
오랜만에 개운하게 갠 날씨 때문인지
춥더라도 사진 한장 건지고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겨울엔 해가 일찍 저무니까,
걷다보면 매직타임이 걸치지 않을까.
차가운 날씨, 매서운 바람과 비교되게
성냥 불을 당길때와 같은 색으로 타오르는 노을이 인상적이었다.
한강 한 복판에서 맞는 강바람이란...
손가락이 마비되고 눈이 잘 떠지지 않는다.
동호대교를 건너다 보면 3호선 열차를 가까이서 볼 수 있다.
이 때가 딱 저녁 6시 반쯤.
지친 몸을 열차에 기대고 한강을 건너는 사람들이 보인다.
내 몸 밖에서 나를 보는 느낌이랄까?
노을에 반짝이는 열차 안은 익숙하고, 찬 바람이 부는 한강 다리는 아주 낯설었다.
3호선의 시그니처 색상과 어울리는 교각 구조물.
노을 물이 살짝 든 어스름한 하늘과 너무 잘 어울려서
멀찌감치 담아보고 싶었다.
가드레일에 올라 서거나 안전 펜스에 매달려서 찍어야 되겠더라.
괜히 오해 받고 싶지는 않아서 이정도까지만...
멀찍이 한남대교가 보인다.
동호대교를 거의 다 건너서 옥수역에 가까워 졌다.
강변북로에서 천천히 집으로 향하는 차들
차에서 표정이 느껴지는 것 같다.
그 있잖아, 화나지는 않았지만 아무 대꾸도 하고 싶지 않을 만큼 적당히 지쳐서 멍한 상태.
3호선 열차 안의 사람들도 저런 표정이었겠지.
초점이 나간 사진인데
어스름한 그 때의 무드와 어울려보여서 따로 골라냈다.
이 날 압구정역 - 옥수역 - 서울숲까지 걸었다.
추운 날씨 때문에 핸드폰 배터리가 금방 다 나가버린데다가
빠져나가는 길도 없어서 한참을 하염없이 걸었다.
그래도 그 덕분에,
맑은 밤하늘과 성수대교, 내 눈 앞에 있는 듯 가까운 롯데월드타워를 담을 수 있었다.
서울숲 주차장까지 겨우겨우 걸어 나와서
택시를 타고 집으로 돌아갔다. 집에 들어가니 밤 11시정도.
춥고 힘들어도 바로 사진 메모리부터 확인하게 되더라.
아마도 이때 부터였다.
이리저리 보고 찍고 자르는 재미로,
무겁고 복잡하던 지난 해도 다른 시선으로 볼 수 있게 되었다.
사진 찍은 날 2021. 02. 08.
글쓴 날 2021. 06. 01.
사용 기종 : SONY A6400 / SONY SELP18105G
copyright 2021. phaelo graphi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