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사진, 서울 산책
약속 없는 주말, 미세먼지가 심각했던 날이다.
친구가 소개해준 괜찮은 카페에 갔다가, 공덕역 주변에서 일찍 저녁을 먹고
산책겸 다시 한강으로 향했다.
이 때도 아마 노을 시간에 맞추어서 강을 건너가려고
다섯시 반 여섯시 쯤 마포대교에 올랐던 걸로 기억한다.
자욱한 미세먼지 때문에
노을이고 뭐고 따뜻한 색은 구경도 못 할 것이라는걸 그 때는 몰랐다.
마포대교에 서면, 63빌딩이 보인다.
어릴때 '63빌딩' 하면 초고층 빌딩의 대명사였다.
나같은 90년대생의 머릿속에는
'원숭이 엉덩이는 빨개'로 시작하는 노래의 영향으로 비행기보다 백두산의 높이가 높다.
그 때문에 [땅 위에 서있는 나 - 63빌딩(아무튼 높음) - 비행기(기차보다 빠르고 백두산보다 낮음) - 백두산]의 순서로
높이를 표현했다.
높이와 더불어 추상적인 무언가의 양을 측정하고 비교하고 우겨대는데에 사용했다.
다른 공식으로 '하늘 만큼 땅 만큼'도 있다.
...
90년대생도 63빌딩도 30년의 시간이 흘러 2020년대에 살고 있다.
63빌딩 같이 높았던 아빠의 어깨는 롯데타워니 부르즈칼리파니 하는 빌딩들보다 낮아졌고,
비루한 사회초년생을 지난 나는, 연봉을 하늘 만큼 땅 만큼 받을 수 없었다.
어릴때 '우리 아빠'는 가장 강한 사람의 대명사였었다.
미세먼지,
이렇게 울분을 토해도 들어줄 사람도, 책임질 사람도 없다.
해는 노을을 남기지 않고, 인사 없이 지나갔다.
이 날 미세먼지를 마시며 건넌 마포대교.
완전히 밤이 찾아오고 나니,
다행히도 여의도 건물 틈 사이로 갓 얼굴을 드러낸 달을 만날 수 있었다.
사진 찍은 날 2021. 02. 14.
글쓴 날 2021. 06. 02.
사용 기종 : SONY A6400 / SONY SELP18105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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