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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서 Feb 18. 2022

오랜만에 울었다.

난 이제 어른이니까


이제서야 생각해보니 지금껏 왜 울지 않고서 계속 꾹꾹 참아만 왔는지 의문이다. 너무 속상하고 우울하고, 억울해서 지새운 밤들이 한가득인데 정녕 나를 좀먹어 가는 것을 알면서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는 것이. 오랜만에 울었다. 일부러 눈물을 쏟아내자! 하고 운 건 아니었고, 눈물이 찔끔 나려던 순간에도 양 어금니를 꽉 깨물며 참고 버텨봤지만, 울컥 터져버렸다. 한 30분 정도 그치려고 하면 다시 벅차  올라서 히끅댔다. 어린 시절처럼 돌아가 이불을 뒤집어썼다. 정말 정말 오랜만에 죽을까란 생각도 다시 해봤다. 손목을 그어볼까, 어디 높은 곳에 올라가서 뛰어내려볼까. 그런데 생각만 해도 무서웠고 이후는 괜찮을 것 같은데 그 과정이 겁이 났다. 그 후로 조금 더 쏟아냈다. 그러니까 신기하게도 괜찮아졌다. 이상하게 개운했다. 상황은 그대로인데도 한결 편해졌다. 그리고 커뮤티니 앱에서 봤던 캡처본의 이미지가 떠올랐다. 오은영 박사님의 사진과 함께 적혀 있던 글이었는데,


다 울었니? 이제 할 일을 하자.



그래, 그래야만 했다. 왠지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 자꾸만 들었다. 코는 막혀서 숨 쉬기는 힘들지, 휴지로 벅벅 문대서 눈은 따갑고 아프지. 그 와중에 이 울음의 주범은 한 공간에 자리하고 있지. 뭐 하나 상황이 나이지지 않았음에도 가뿐해졌다. 참 웃기지도 않은 상황에 내가 괜찮아졌다는 사실이 퍽이나 웃음이 났다. 울고 나니 머리가 지끈하게 아파왔다. 그럭저럭 참으면 괜찮은 수준이라 큰 신경을 쓰지 않고 내버려 두었다. 그동안 우울하거나 부정적인 감정이 들면 일기를 썼다. 뭐, 일기가 아니더라도 글을 쓰긴 썼다. 사실을 적어 내려 갈 때도 있었고, 내 생각을 마구잡이로 끄집어냈던 적도 있었다. 나는 그동안 내 분노와 우울을 글을 적음으로써 승화시킨다고 착각을 했었던 것 같다. 물론, 적으면서 해소되는 게 분명 있었지만, 그 양은 굉장히 미미했다. 나도 모르게 쌓여서 더욱 나를 잡아먹는지는 전혀 눈치채지도 못했다. 아무리 내가 둔하다지만 야 이렇게까지, 이런 것까지 이럴 필요 있나 싶지만 야 하긴 어쩔 수 없지.


난 우주의 먼지이기도 하지만, 내가 사라져도 아무도 신경 쓰지 않고, 변화도 없겠지만, 내가 세상에 끼치는 영향은 없을 정도로 굉장히 작지만, 그래도 나는 내 할 일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어쩌다 본 한 문장이 이렇게 나를 일으켜 세워줄 줄은 정말 몰랐는데, 앞으로 긍정적인 글과 말에 더 신경을 쏟고 집중하도록 노력해야겠다. 가볍게 넘겼던 한 문장이 나를 우울에서 꺼내 주었으니. 오늘은 이제 책을 읽거나 괜찮은 영화 한 편을 보고 잠들어야겠다.




혹시 괜찮은 작품 있으시면 추천 바란다. 혹시 내일, 또는 가까운 시일 내에 찾아올 우울을 상대해야 할지도 모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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