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서 Feb 28. 2022

흉내쟁이

진짜도 가짜도 뭣도 아닌




누구네 집 둘째 딸은 무슨 대학에 들어갔다더라, 아무개집 장남은 부모님께 입이 떡 벌어지는 선물을 드렸다더라...로 시작하는 이런저런 얘기들을 듣고 자라서인지 왠지 나도 그래야 할 것만 같았다. 세상엔 자랑거리가 넘치고 성공한 사람들은 왜 이리 많은 건지, 그들의 축에 들려면 지금 이 순간에도 뭔가에 몰입하지 않으면 안 될 텐데, 방금 전까지 누워있던 내가 할 말은 아닌 듯하다. 



TV 속 드라마에 나오는 주인공들은 모두 자신만의 원대한 꿈을 가지고, 끊임없는 도전 끝에 성공을 일궈내며 수많은 SNS 속 사람들은 형형색색으로 빛나기만 한다. 마치 모든 사람들에게 그림자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제 입맛 따라 선택적으로 정보를 공유하고 게시할 수 있는 공간이지만 어둠에 물든 내가 새벽에 그 게시글들을 하나하나 넘겨볼 땐 괴로움과 자책이 벅차오른다.


노력을 당연함으로 여기고 그에 대한 성공과 보상을 전시하는 이들을 볼 때 동경과 우러러보는 눈빛을 장착하지만, 한편으로는 그게 내겐 여간 쉽지가 않다. 책상 앞에 앉아 책을 막 펴는 순간부터 하기 싫다는 생각이 먼저 들어버린다. 조금이라도 막히면 이해하려고 애쓰는 그 순간들이 내 목을 조여 오는 기분이다. 창문은 꽉 닫혀있고 공기청정기만 열심히 작동 중인 스터디 카페에서 난 답답함을 느낀다. 그래서 돌아오는 행동은 겨우 수박 겉핧기식 읽기다. 머릿속엔 들어가지 않을 단어들을 눈으로 슬-쩍 흘기고는 바로 다음 페이지로 넘어간다. 읽는 수준이 아니라 봤다는 게 더 맞겠다.



그러면서 미디어에 나오는 누구누구 씨의 일상을, 일화를 보며 대리 만족하는 듯하다. 코로나로부터 느슨했던 사람들에게 스스로 긴장감을 심어준 '미라클 모닝'과 '갓생'이 부상하게 되면서, 나 또한 그에 동참하고자 했다. 내가 저것들에 동참한다면 내가 보았던 그들과 비슷한 삶을 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헛된 꿈을 꾸며. 아침 6시에 기상은 성공했다. 오후 2시부터 낮잠에 들어서 점점 취침 시간이 밀린다는 것이 문제였지. 나는 왜 이리 체력이 안 좋아서 중간에 졸려오기 시작하고, 밤과 새벽엔 재미난 것들이 넘쳐서 왜 날 잠 못 들게 하는지, 여러 핑계들을 일삼으며 스스로에 대한 변명을 되풀이했다. 결과적으로 내가 나아진 점? 하나도 없다. 매번 헛된 다짐만을 일삼으며 나만의 것은 없고 누군가가 ~~ 하면 성공한다더라, 이래저래 하면 다 합격한다더라의 미신만 믿고 쫄래쫄래 뒤꽁무니만 좇았다. 


이 흉내 내 보고, 저 흉내 내 보고 내가 보기에 좋아 보인다 싶으면 다 따라 해 봤던 것 같다. 알맹이는 하나도 없는 속 빈 강정. 딱 내 꼴이었다. 많은 시도와 도전 속에 만나는 사람들은 다 빛이 나 보였다. 제 생각에 확신이 있어 보였고, 계획이 또는 열정이 엿보였다. 만나는 사람마다 멋진 사람들뿐이었다. 세상엔 장점으로 가득 차눈이 부시는 사람들이 너무 많았다. 그들과 마주할 때마다 문구점 앞 뽑기에서 뽑은 듯한 싸구려 큐빅 같은 나 자신이 초라했다. 결국 사람이란 속에 무언가가 있느냐에 따라 태가 나는 법이었다. 



무언가를 열정적으로 좋아해 본 적도, 싫어해 본 적도 없었다. 누군가를 보며 심장이 뛰는 듯한 울림을 느껴보지도 못했고, 맞닥뜨린 벽을 넘을 때의 희열감도 경험해보지 못했다. 그저 이미 선취한 이들의 발자국을 고대로 밞아 인생을 날로 먹으려는 그런 못된 심보만 가졌었다. 오늘의 이 글은 그런 나의 인생에 대한 반성이자 참회고, 자기혐오이다. 

작가의 이전글 오랜만에 울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