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의:미 시리즈 Season 2애 - 민승기의 모든 날
무의는 2022년 4월 20일, 새롭게 <무의:미> 인터뷰를 시작합니다.
무의미 시리즈는 장애를 가진 평범한 분들이 삶에서 겪는 기쁨과 슬픔을 나누고자 합니다.
인터뷰를 통해 우리 장애 이웃들에 대하여 좀더 잘 이해하고
나아가 다양성에 대한 이해를 높였으면 합니다.
2022년의 첫 무의:미 인터뷰 주인공은 재활공학을 전공하는 민승기 님입니다.
1.
영유아기 때 저는 9개월이 되어도 뒤집기는커녕 고개를 가누지도 못했다고 해요. 발달이 한참 늦어져서 부모님이 데리고 간 대학병원에서 뇌병변 진단을 받게 되었어요. 그 후로는 대학병원과 재활병원, 치료실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며 살아왔죠. 열심히 재활을 받으면서 8살 때 처음 일어서고 첫 발을 떼었어요. 지금은 자세 변형도 일어나기도 해서 기능 향상 쪽에는 어려움이 있지만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재활을 하고 있어요.
2.
재활만큼은 누구보다 진심이에요. 재활 시간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지만 저는 꽤 즐거웠어요. 학교 생활을 제외하고는 치료실이 제일 행복했어요. 재활은 긴 시간이 필요하거든요. 긴 시간을 보내는 치료실에서 또래 장애친구들과 부모님들을 만나고 커가면서 좋은 추억들을 많이 쌓게 되었어요. 그리고 치료사 선생님들이 치료해주셨던 기억이 너무 좋았어요. 제가 생각해도 조금 특이한 케이스라고는 생각해요. 얼마나 좋았으면 전공까지 택했겠어요.
3.
좋아하는 마음을 비교할 수는 없지만 재활만큼이나 좋아하는 건 야구예요. 재활이 좋아서 대학 전공을 택한 것처럼 야구가 좋아서 고등학교도 맞춰서 진학을 했어요. 집에서 가까운 곳에 야구명문고교로 유명한 덕수상고(現 덕수고)가 있어요. 야구를 너무 좋아해서 초등학교 시절부터 진학하고 싶은 고등학교는 점 찍어둔 상황이었어요. 제가 직접 야구를 할 수는 없어도 야구를 잘하는 친구들을 가까이에서 보면서 같은 소속감을 가지고 싶었어요.
4.
야구를 좋아해서 선택한 고등학교 진학이었지만 정작 따져봐야 할 건 따로 있었어요. 손잡이를 잡고 조금은 걸을 수 있어도 많은 계단을 오르내리지는 못하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반드시 고등학교에 엘리베이터가 있어야만 했어요. 덕수고는 엘리베이터가 없어서 걱정이었는데 저보다 먼저 입학한 장애 학생이 있어서 제가 입학할 때는 엘리베이터가 생겼더라고요. 참 감사하기도 하고 먼저 입학해 준 선배가 학교 측에 요구하고 고민했을 시간을 생각하면 안타깝기도 했어요. 장애인들은 최초의 길을 개척할 때 마주하는 외로움이 있거든요.
5.
우여곡절 끝에 입학한 학교는 기대했던 것처럼 너무 좋았어요. 야구명문 고등학교의 특징은 연중 개최되는 봉황기, 청룡기, 대통령배 같은 전국 단위 고교야구대회에 출전하는 친구들을 응원해주러 갈 수 있거든요. 같은 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프로구단에 가게 된 친구도 있어요. 삼성 라이온즈에 양창섭 선수가 학교 동기예요. 2017년 황금사자기 대회에서는 최우수선수로도 뽑혔고 신인 때는 7승을 거둬서 신인왕 후보까지 언급 되었어요. 다른 친구들도 5, 6명 정도 더 있는데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더라고요.
6.
제 개인 SNS에는 이름 옆에 괄호를 붙여놔요. 지금은 (재활)이라고 있지만 얼마 전까지는 (야구사랑)이었어요. 야구를 그만큼 사랑한다는 뜻입니다. 야구를 좋아하는 이유와 재활이 또 연결되어요. 아무리 잘하는 선수들도 의도치 않게 부상을 마주하는 순간이 와요. 본인의 인생은 야구가 전부인데 부상으로 인해서 재활에 몰두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을 어떻게든 마주하게 되는 거죠.
7.
가까워지고 싶지만 가까워질 수 없는 것도 있어요. 강아지나 고양이와 같은 반려동물이에요. 저는 뇌병변 장애 유형 중에서도 반려동물을 보면 경직이 일어나는 타입이에요. 다른 동물들도 많지만 가장 흔한 강아지나 고양이가 유독 심해요. 비둘기는 괜찮아요. 사실 어디를 다녀도 강아지나 고양이가 많잖아요. 눈으로 확인하는 것뿐만 아니라 소리만 들려도 다리가 당겨지는 느낌이 강하게 나타나요. 꽤나 심한 문제예요. 일상생활에서 외출에 가장 큰 영향을 주는 존재입니다. 워낙 그 경련이 심하다 보니 엘리베이터에서 강아지를 마주쳐도 경련이 오죠. 그런 저를 보고 견주는 기분 나빠 하고요. 건건이 설명하기도 어렵고... 그래서 장애인콜택시로만 이동하고, 이동시엔 지하주차장에 서고 내려요. 개 산책하는 사람들과 안 마주치는 게 불가능하거든요.
8.
장애인 콜택시 이용수칙이 있는데요. 항목 중에 반려동물을 전혀 태울 수 없게 되어 있어요. 저와 비슷한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항목에 넣지 않았을까 생각해요. 재활병원에서 치료를 같이 했던 친구들 중에서도 보행이 그다지 불편하지 않은데도 반려동물에 대한 경련 때문에 혼자 외출을 못하는 친구들도 있었거든요. 특정한 장애 유형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저와 비슷한 장애를 가진 친구들 중에는 이런 상황을 공감하는 친구들이 꽤나 많이 있어요.
9.
제가 다니는 나사렛대학교에서는 장애 학생 지원을 전담으로 해주시는 선생님이 계셔요. 제가 입학 한 뒤로 선생님과 상담을 거쳐서 교내에 반려동물이 들어오지 못하게 교칙을 만들어주셨어요. 제가 자유롭게 캠퍼스 생활을 할 수 있게 된 거죠. 장애가 무의미하게 느껴진 순간이었어요. 다른 학생들과 다를 바 없었거든요. 하지만 학교 밖으로 나가게 되면 언제든 마주할 위험이 생겨요. 학교를 다니면서 제가 미안한 장애 유형이 있었는데요. 바로 안내견을 동반하는 시각장애 친구였어요. 그런 친구들은 사전에 시간표를 공유해서 서로 간에 동선을 나눠서 움직였어요. 둘 다 장애라는 공통점 때문에 강아지와 함께해야 하고 또 떨어져야 하는 차이점이 있었던 상황이었죠. 그 학생도 조금 황당은 했겠지만 서로가 다른 부분이니 이해해줬어요.
10.
정말 심한 뇌병변 친구들은 SNS에 올라간 동물 동영상이나 사진에도 심하게 고통을 느끼기도 해요. 이 주제로 청와대 청원까지 올라갔던 적이 있어요. 보기 좋게 묵살 당했죠. 그래도 많은 분들이 이런 불편함도 있다는 건 알아줬으면 좋겠어요. 보건복지부 장애인 실태조사에 일상생활 체크항목에 "반려동물을 보거나 상동행동이 일어난다는 것"을 추가했으면 좋겠어요. ‘장애인 실태조사’에 맞는 조사 내용일 것 같지만 보건복지부에 건의를 하자 조사항목이 정해져 있다는 이유로 거절 당했어요.
11.
제가 장애를 갖고 있지만 사회적으로 장애가 포용되는 게 목표예요. 누군가의 불편함이 아무렇지 않게 드러날 수 있으면 좋겠어요. 제 장애가 그저 고유한 저만의 특성이면 좋겠어요. 잘 살고 마음껏 지역사회에서 생활을 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재활을 주제로 일기를 쓰고 있는데요. 재작년부터 쓰고 있어요. 가장 많이 하는 이야기는 ‘치료’와 관한 이야기이지만 대부분 장애에 대한 이야기로 가득 차 있어요.
12.
앞으로는 서울재활병원 사회복지팀에서 일하고 싶어요. 어떤 분야나 직업이 아니라 너무 직장명을 콕 짚은 느낌이 들지만 정말 간절히 바라고 노력하고 있어요. 제가 재활을 해왔던 병원이기도 하고 최근에 공공재활병원으로 지정되었기 때문에 직업적인 안정감도 있을 것 같아요. 병원 내에서 소아청소년 쪽에서 일하면서 재활이 활성화 되는 일에 기여하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