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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chojae Jul 18. 2021

‘규화보전’만 가지고 동방불패는
절대고수가 될 수 없다

지식에 대한 두 가지 관점 : 인지주의 VS 구성주의

‘익히기만 한다면 신의 경지에 오른 무공을 익힐 수 있다는 비급의 전서, 규화보전’ 어릴 적 무협영화에 일가견이 있었던 사람이라면 어렵지 않게 추억을 되살릴 수 있을 것이다. 90년대 초 국내에 개봉하여 큰 반향을 일으켰던 

홍콩 무협영화 ‘동방불패’에 등장하는 비법서이다. 제대로 익히기만 하면 중원 최강의 무공을 가지게 된다는 전설의 책인데, 중요한 것은 ‘익히기만 한다면’이다. 모든 무협영화가 그렇듯 비법서를 얻는다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처절한 수행과정을 거쳐야 온전히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지식’이 점점 강조되는 세상에 살고 있다. 예전에는 책과 같은 제한된 인쇄물이나 나보다 사회적 지위가 높은 사람(학교 선생님, 웃어른 등)의 조언을 통해 지식을 쌓을 수 있었다. 다양한 매체가 발달한 지금은 TV, 

컴퓨터, 핸드폰 등 우리 주변의 모든 것으로부터 지식을 얻을 기회가 있다. 그렇다면 과거에 비해 이 사회에는 

더 많은 지식인이 존재하는가? 문맹률이나 학력 수준 등의 통계적 수치를 보면 그런 것 같다. 하지만 그 결과를

다양한 정보와 지식들에 대한 노출 빈도의 증가만으로 설명하기는 어렵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고가의 사설 교육

기관, 스터디 모임, 전문지식을 다루는 세미나 등이 존재할 필요가 없다. 

 표준국어대사전에 표기된 지식의 첫 번째 뜻은 ‘어떤 대상에 대하여 배우거나 실천을 통하여 알게 된 명확한 인식이나 이해’이다. 명확한 인식과 이해가 가능하려면 외부의 어떠한 현상이나 정보에 대해 사고하여 습득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기계적인 암기나 단순 반복학습으로도 지식의 형성이 가능하다고 주장할 수 있다. 그러나 구구단 같은 단순한 지식의 습득에나 해당될 뿐, 고차원적인 지식을 얻기 위해서는 능동적인 사고를 거쳐야만 한다. (사실 구구단도 논리적 사고를 거듭하여 외우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지식의 진정한 의미를 생각한다면 인지주 의자보다는 구성주의자의 의견에 한 표를 던질 수밖에 없다.  

 어떠한 현상이나 정보가 없는 상태에서는 지식을 쌓을 수 없다는 점에서 인지주의자의 견해는 부분적으로 

맞다. 중요한 것은 그것이 지식 습득의 전부가 아니라 시작점에 불과하다는 사실이다. 현재를 사는 우리들은 무수한 정보와 지식들의 홍수에 살고 있지만 그것들을 이해하는 수준은 각기 다르다. 수학 시간에 ‘피타고라스의 정리’라는 똑같은 공식을 배워도 이를 응용하여 어려운 문제를 푸는 우등생과 제대로 외우지도 못하는 

열등생이 갈리는 것처럼 말이다. 외부의 현상이나 정보, 이론 등을 어떠한 사고와 체험과정을 거치느냐에 

따라 지식의 습득 유무 또는 습득 수준이 결정되는 것이다. 온전한 지식의 습득은 인지주의적 관점(지식의 

개체)에서 출발하여 구성주의적(지식의 생성과정) 결론에 도달해야 한다.

 담론의 범위를 개인에서 조직 차원으로 확장하면 구성주의자들의 관점은 더욱 설득력이 강해진다. 조직은 다양한 환경과 구성원의 역학관계를 통해 이루어진다. 그 안에서 발현되는 조직 지식 또한 역동적으로 전환·혼합·통합될 수밖에 없다. 구성원들과 조직이 가지고 있는 다양한 정보와 지식들이 그들의 사고 과정과 경험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하고 발전하는 것이다. 인지주의적 관점만으로는 이 역동성을 도저히 따라갈 수 없다.

 무엇인가를 인식하고 이해한다는 것은 능동적인 사고 과정과 경험이라는 수고스러운 노력을 거쳐서 내 것으로 만든다는 뜻이다. 이것을 진정한 지식이라고 할 수 있다. 기억하는가? 동방불패는 규화보전을 익히기 위해 자신의 성(性)까지 포기해야만 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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