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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언니차 Nov 30. 2021

운전하고 있습니까?

여성 운전자, 다 자란 초보운전자 이야기.


 내가 운전을 시작하고 나서 몇 개월이 지났을 때의 일이다. 어느 주말, 나는 가족 외출을 하러 부모님과 함께 주차장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무언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우리는 아빠 차 쪽으로 걸어가고 있었는데, 늘 걷는 아파트 통로를 지나 주차장을 걷다가 차를 발견하고 그쪽으로 가까워지는 동안 묘하게 아빠와 점점 부대끼는 것이었다. 어색하게 가까워지다가 어느 거리 이하가 될 쯤에 서로 ‘왜 이러지?’ 하는 의미로 고개를 돌렸다가 눈이 마주쳤다. 둘다 운전석 쪽으로 걸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 이유를 깨닫고 우리는 폭소를 터뜨렸다. 내가 운전을 하기 전에는 차에 탄다고 하면 자연스럽게 조수석 뒷자리로 향했기 때문에 부대낄 일이 없던 것이다.


 그동안 나에게 자동차는 ‘타는’ 것이었지 ‘모는’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직접 운전을 한 그 몇 개월의 시간이, 삼십 년을 뒷좌석으로 향하던 내 습관을 바꿔버렸다. 그것을 깨달았을 때 참 유쾌했다. 어떤 뇌과학 기사에 따르면, 인간의 뇌는 도구를 들었을 때 그 도구의 길이 혹은 능력까지를 자신의 신체처럼 인지한다고 한다. 도구가 우리의 신체를 보충하는 것은 물론 인식까지 확장시킨 셈이다. 그렇다면, 하루에도 몇백 km를 갈 수 있는 자동차를 몰 수 있게 된 우리는, 어떻게 달라질까?

 

 처음 혼자 내 차를 몰았던 날을 생각해 본다. 연습을 위해 옆에 누군가 앉아서 나 대신 신호를 봐 주거나 어떻게 하라고 말하지 않는, 너무 멀리 가지 않고 한 시간 여 이내로 돌아오지 않아도 되는, 누구의 조언 혹은 간섭 없이 나 혼자 차 문을 열고 운전석에 앉은 기분은 조용하고 근사했다. 핸들을 잡고 잠시 가만히 있었다. 하나하나 버튼들을 읽어보고, 대시보드를 쓸어 보며 매번 보았던 계기판도 다시 읽고, 먼지도 털고, 콘솔도 열어 보고, 괜히 시트 위치도 꿈찔꿈찔 옮겨 보면서 주차장에서 출발하기 전 한참동안 아직 너무 좋은, 믿을 수 없는 내것, 내 차의 공간을 하나하나 돌아보았다. 거울들의 위치를 나에게 가장 잘 보이도록 세심히 조절하며 안전벨트를 매고 시트 위치를 바로잡으며 마음의 준비를 하고 시동을 켤 때의 가벼운 긴장과 즐거움은, 이제 어디라도 끝까지 떠날 수 있다는 두근거림과 함께였다. 나는 바다에 가고 싶었다.




 운전을 하고 나서야 알았다. 막차 시각이 얼마나 나를 구속했는지를 구속을 벗은 후에야 알 수 있었다. 그렇게 촘촘하게 뻗어 있는 것처럼 보이던 대중교통이 운신의 폭을 얼마나 좁혔는지도 알게 되었다. 시간도, 공간도. 완전히 내 마음대로 갈 수 있는 힘이 있었다. 이 자유 앞에서 까닭 모를 배신감마저 느꼈다. ‘이렇게 좋다고 왜 안 해줬어.’ 

 자유에 대해 알고, 추구할 수 있다는 것은 굉장한 기회이자 축복이다. 왜냐하면 어떤 자유는 그것이 있다는 것조차 몰라서, 그것을 추구할 방향조차 모르며, 그렇기 때문에 우연이나 호의 없이는 영영 모르고 말기 때문이다. 존재조차 모르는 것을 추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운전이 여성들에게 그런 것이 아니었을지 생각하곤 한다.


 이동 독립권, 원하는 때에 스스로 원하는 곳으로 떠나고 돌아올 수 있는 힘이라는 뜻으로 만든 말이다. 독립이라니, 그렇다면 독립이 아닌 경우가 있단 말일까? 사실 그렇다. 아무리 스마트폰과 함께 인터넷 시대가 다가왔다고 해도, 결국 나의 몸이 어디에서 누구를 마주치며 무엇을 보는지, 내가 어느 순간 어디에 있는지가 중요하다. 그것을 내가 원할 때 바꿀 수 없거나 비용이 많이 들어 부담이 드는 일은, 온통 벗어나고 싶은 자리에서도 문자 그대로 우리를 주저앉히거나 첫차가 다닐 때까지 버티게 하기도 한다.


 정해진 노선이나 시간의 한계 속에서가 아닌, 새벽이나 한밤, 그 어떤 시간에든 어디로든 떠날 수 있다는 자신감은 더 이상 마음에 들지 않는 것들을 참지 않게 해 주었다. 누군가의 허락을 받아야만 움직일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더욱 나 자신에게 충실하며 대범할 수 있었다. 내가 가고 싶은 곳으로 움직이며 그 길에서 새로운 장소를 발견하고, 버스가 가는지부터 찾는 것이 아니라 목적지를 정하기부터 하면 되는 그 모든 순간들이, 가고 싶으면 가고, 오고 싶으면 온다는, 키를 쥐고 일어서면 되는 간단한 일들이. 그것을 하지 못해서 누군가와 상의하거나 부탁을 해야 하는 것이 당연한 동안 깨닫지 못했던, 내가 가졌던 권리이자 힘이었다. 나는 내 차를 운전한 첫 주말, 친구와 동해로 떠났다. 고속도로를 달려 바다가 보일 때까지, 글자 그대로 달렸다. 가고 싶던 곳들을 마음대로 다녔다. 지나가다 마음에 들어 보이면 새 길로 들어서고 처음 보는 카페와 식당을 찾았다. 바닷바람과 함께, 자유롭고 행복했다.




 이름도 없는 자유를 추구하기는 어렵다. 어릴 때부터 ‘꿈이 뭐니?’라며 희망과 꿈을 북돋아주는 것 같지만 마음대로 쏘다니는 일은 걱정하며 주저앉혀진 여성들, 많은 어린이들의 마음 속 자유를 위해 글을 쓴다. 있는지도 몰라서 조르지도 못했던 권리에 대해서, 가져 보지 않았던 자유, 이동 독립권에 대해 말하고 싶다. 차를 가지기보다 차를 태워 주는 누군가를 찾으라는 말 대신, 여성들이 누구의 허락도 승인도 필요 없이 가고 싶던 곳으로 떠나며 다시 돌아올 수 있기를 바란다. 시기가 언제건 상관없다. 내일이건, 몇 년 후이건 운전대를 잡기로 마음먹는다면, 그때부터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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