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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문정 Dec 31. 2021

영화 <파워오브도그> 감상평

<파워오브도그>는 "내 유일한 것을 개의 세력에게서 구하소서" 라고 문장에서 등장에서 추출한 제목으로, 영화 말미에 문장을 통해 등장한다. 관람 후에 얼핏 문장을 말하는 대상과 그 대상이 지칭하는 문장의 주체는 피터이고, 유일한 것은 엄마, 개의 세력은 필이라 생각하게 된다. 이렇게 설정을 하고 보니 재미가 없어진다. 하지만 이 설정이 맞는건지 의문이 생긴다.

이런 단면적인 질문은 답이 생긴 순간, 모든 질문의 시작점들을 안고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그리고 이내 영화가 주는 감정을 그대로 누리면 되는구나라고 안일하게 여기게 된다. 이 영화는 질문을 파생시키지 못할 만큼 단단하다는 인상과 함께 말이다.

이 단단하다는 인상의 시작에는 관객에게 극의 모든 것을 보여주지 않고, 보는 이에게 보여주고자 하는 것 만을 보여주는 감독의 선택에 있을 것이다. 다만 궁금한 것은 마지막에 이르러 자신의 모든 것을 보여주는 이 영화의 분위기는 어디서부터 바뀌는 것인지다. 서부극이지만 그 안에 스릴러, 멜로의 분위기를 갖는 이 작품은 언제부터 묘한 기류는 풍기는 것일까. 실제 필이 탄저균이 묻은 생가죽을 물에서 손질하는 손이 클로즈업되는 장면이 나오기 전까지 앞의 시퀀스의 의미를 알 수 없었음을 상기하면 무엇을 놓친건지 궁금해진다.

'보여줄 것만을 보여주고 불필요한 것은 보여주지 않는다'는 전제는 인물 관계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대표적인 예로는 로즈의 남편이자, 필의 동생인 조지는 로즈와 결혼후 철저하게 로즈와 필을 이어주는 기술적인 역할만을 위해 등장하는것을 꼽을 수 있다. 이후 극 속에 남은 것은 필, 로즈, 피터뿐이다. 이 세 사람은 ‘가해자와 피해자’라 이분화 시킬수 있다. 하지만 이 역할은 누구에게 속한 배역은 아니기에 영화는 좀더 풍성해진다.

피터가 대학교에 들어간다며 잠시 사라진 사이, 로즈는 피해자가 되고 필은 가해자가 된다. 하지만 먼저 피해자가 된 것은 필이었으며, 집에서 필을 괴롭힌 것은 로즈였다. 필은 로즈의 입장 전에 동생 조지와 같은 방에서 나란히 침대에 누워서 잠을 청했고, 집에서는 먹거나 씻지 않았다. 하지만 로즈는 의도치 않게 방끼리 연결된 욕실에서 샤워를 하며, 주방을 점령하며 자신의 자리를 넓힌다. 반면 필은 자신의 것이라 믿었던 것을 로즈가 등장하며 잃기 시작한다. 형은 극의 초반 내내 동생에게 25주년을 기념한다며 끊임없이 대화를 시도한다. 그러나 동생은 속이 역겨운듯 입을 꾹다물고, 식당에서는 '아무르'를 묻는 형의 질문에 시답지 않게 대답하며 형을 우스꽝스럽게 만든다. 하지만 타인에게 강하게 굴던 목장의 주인인 형은 절대 동생에게 화를 내지 않는다. 이를 참았던 이유는 남동생 조지는 25년 동안 자신의 것이라 필이 믿었기 때문이다. 반면 조지가 필에게 먼저 말을 거는 경우는 극중 자신이 필요한 경우와 병원에 가자고 했을때 밖에 없다.

영화 중반까지 영화는 조지 없는 집에서 조지를 두고 신경전을 벌이는 이야기 같다. 마치 질투가 섞인 과격하고 무거운 멜로장르 같다. 그러나 잘 생각해보라. 자주 등장하지 않는 남편을 제외하면 남겨진 관계는 동생이 결혼 후 홀로 남겨진 형과 그의 아내인 로즈 뿐이다. 이 두사람이 서로를 싫어해야하는 이유가 없다. 필이 로즈를 싫어하는 이유는 애딸린 가난한 과부가 남동생을 꿰차서가 아니라 자신의 것이라 믿었던 남동생이 그녀의 소유가 됐기 때문이다. 필과 로즈는 모두 악기를 연주한다. 화합을 할 수 있었으나, 로즈의 피아노 소리에 연주를 하는 필의 기타소리를 듣고 로즈는 피아노를 치지 못한다. 마치 섞이면 안되는 것을 아는 사람 처럼 말이다.

그리고 극은 이때부터 관객에게 필의 동성애 모습이 보여준다.

필은 그 이후부터 로즈를 괴롭힌다. 이때 특이한 지점은 필은 언제나 로즈를 바라본다는 것이다. 피아노를 치는 로즈를 몰래 보고 그에 맞춰 기타를 친다. 로즈는 방문을 닫지만, 기타소리로 치환된 그의 시선을 피할 재간은 없다. 로즈는 결국 기타소리가 들리지 않아도 피아노 연주를 하지 못하게 된다. 필 역시 로즈의 것을 로즈가 가질수 없게 만들며 그녀가 알콜중독자가 되는 것을 바라본다. 승자가 정해지려 할때, 아들 피터가 나타난다. 아버지가 물려준 의학서적과 함께 말이다. 피터가 등장하며 영화는 죽음을 향해 방향을 선회한다.

다섯번째 파트가 시작되며 피터가 재 등장하지만 필은 여전히 그를 괴롭힌다. 그러나 피터가 필의 비밀스런 장소를 발견하면서 부터 이야기가 달라진다. 필은 피터에게 자신의 모습을 보여준 셈이 된다. 이후 연결된 시퀀스에서 누구도 보여준적 없는 알몸을 피터에게 의도치 않게 보여준 것도 있을 것이다. 이때 피터는 게이처럼 보이게끔 청바지를 입고 농장인부들과 필이 있는 장소에 나타난다. 필이 자신을 보도록 피터는 스스로 먹잇감이 된것이다. 그때 시작된 대화의 카메라 앵글은 처음으로 필이 피터보다 아래에 위치시켜서 그를 올려다 보게 촬영한다. 영화의 가해자와 피해자가 바뀌며, 그에 맞에 플레이어도 바뀌는 장면이다.

이후 피터가 산의 형태를 보고 '짖어대는 개'를 발견한 이후, 필에게 피터는 또 다른 브롱코 헨리가 된다. 같은 게이라는 동질감을 심어주고, 우상인 브롱코헨리가 알려준 정보도 맞추며 필은 아마도 피터를 조지의 대체제로 여겼을 것이다. 그래서 "내가 있는 한 아무걱정 하지마"라는 이야기를 했을 것이다. 아마도 추측하건대 필은 브롱코 헨리가 알려주기 전까지 '짖어대는 개'의 형상을 알아차리지 못했을 것이다. 개의 형상을 알려준 이후 필은 브롱코 헨리의 소유가 됐을 것이다.

동성애자로서 고통을 인내하며 살아가는 것이 인생이라 브롱코헨리에게 배운 필과 장애물은 치워가며 사는게 인생이라 배운 피터는 서로 다른 생각을 한다. 아마도 피터 또한 필과 같이 동성애를 꿈꾸는 인물일 것이다. 종이 꽃을 보며 필이 오히려 강하게 피터가 보는 앞에서 꽃을 불태운 행위도, 그 불태운 꽃을 통해 피터가 상처를 받아서 훌라후프를 돌리며 화를 삭히고, 그런 모습을 로즈가 보고 상처받아 울고, 그 모습을 동생인 조지가 보고 난 이후 그녀와 결혼하며 그 가족을 받아들이게 된 필은 인과응보일 수 있다. 여기에 가해자와 피해자는 누구인가. 필의 죽음의 시작에는 필이 있었던 것이라 할수있을까. 다만 이 모든 것의 시작에는 피터의 동성애가 숨겨져 있다. 그리하여 피터는 필의 동성애를 알아보고 그에게 접근할수있었던 것일테다.

영화 <파워오브도그>는 앞서 말했듯, 관객에게 보여줄 것만 보여주며, 불필요한 것은 보여주지 않는다. 이 영화는 굉장히 시각적으로 스토리를 끌어간다. 자신의 것을 지키기 위해 소리없는 전쟁을 시작한 세 남녀(필, 로즈, 피터)

를 관객은 그저 지켜볼수밖에 없다. 그들이 그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타인을 쳐다보며 꾀어낸 것 처럼말이다. 최후의 승자는 피터와 로즈가 됐지만, 진짜 승자는 관객이다. 2시간 8분 동안 잠수를 하는 기분으로 깊게 빠졌다가 나왔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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