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더 트스거오 다이어리>를 봤다.
영화의 제목은 '오거스트(august)'의 스펠링을 역순으로 기재한 것으로 유래했다.
2.
영화 <더 트스거오 다이어리>는 '무척이나' 흥미롭다. (제목이 아직도 어려워서, 외우기 위해서 이름을 계속 나열할 생각이다.) 영화가 흥미로운데, 그 앞에 '무척이나'라고 형용사를 쓴 이유는 강조하기 위해서다
이 영화 <더 트스거오 다이어리>의 제목에서 알 수 있듯, '트스거오'는 거꾸로 쓰고, 다이어리(diary)는 제대로 썼다. 하나로 통일되지 않는 이 현상, 이 흐름은 작품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이 작품은 영화 제작을 위한 과정을 시간 역순으로 보여준다. 그래서 관객은 오프닝에서 일반적인 영화 속 드라마를 볼 수 있고, 엔딩에 이르러 영화 제작을 하기 전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거꾸로 흘러가는 시간은 '하루의 기록'이 거슬러 올라감을 뜻하는데, 쪼개진 하루의 시간은 순방향으로 흘러간다. 하루의 기록이 저녁에서 낮/아침으로 흘러가는 구성이었다면 더 독특했겠지만, 그건 관객이 알아차리기 쉽다. 미묘하게 알아차리지 않길 바랐던 것일까.
"아마도" 이 영화의 감독 미겔 고미쉬, 모린파젠데이로는 관객이 영화를 인지하는 능력에 대해 호기심을 가졌을지도 모르겠다.
좌우지간-
<더 트스거오 다이어리>는 하루하루는 역순으로 흘러가지만, 하루의 시간은 정방향으로 흘러간다. 마치 제목 설정과 마찬가지로 말이다. 두 가지 방향이 보인다고 해야 할까, 모순적이라고 해야 할까. 양가적이라고 해야 할까. 영화를 본다는 건 1초에 24프레임을 소비함은 기본 전제다. 이 시간들의 축적은 늘 선방향으로 흘러간다.
의구심이 든다. <더 트스거오 다이어리> 안에서는 프레임을 보기 위해 소비한 1초 동안 관객은 선방향의 시간을 본 것일까 역방향의 시간을 본 것일까.
관객이 영화를 봤다고 생각하는 개념을 흔드는 이러한 설정은 꽤나 재밌다.
앞서 말했듯 영화는 두 가지의 모습을 갖는다. 시간의 흐름, 제목 설정뿐 아니라, 영화 속 내러티브와 그 제작 현장을 보여준다. 이는 주인공에 대한 이중적인 시선을 갖게 한다. 영화이면서도 영화가 아닌 것 같은 이 작품 속 등장인물들은 실존 인물일까, 허구의 인물일까. 나는 허구의 인물이라고 생각된다. 철저하게 계산됐을지도 모르겠다.
대화를 하는 거실을 가로지르는 청소부의 모습과 행운을 빈다며 크게 외치고 길을 걸어, 창문을 들여다보는 남성이 결코 마주 보지 않는 시선이 그걸 방증한다. 물론 여자 주인공으로 추정되는 인물이 카메라를 응시하는 쇼트가 나오지만, 배우라는 역할로 등장하는 인물이기에 그조차도 철저하게 계산됐으리라.
<더 트스거오 다이어리>는 영화에 대한 영화이면서도, 그 안에서 영화적인 요소들이 누락된다. <더 트스거오 다이어리>는 "영화"라는 매체를 어떻게 인식하고 있길래, 다큐멘터리와 같은 기록영화가 아닌 영화를 만들었을까.
표면적으로 기록영화의 성격을 가진 영화 <더 트스거오 다이어리>는 조명, 편집 방식 등을 통해 철저하게 영화적이기도 하다.(정말 그렇게 촬영하지 않았다더라도) 시간의 순서를 편집할 수 있는 것, 수미상관과 유사한 마무리, 뚜렷한 조명의 색감 등 을 보면 이 작품은 관객이 영화에 대한 인지를 하는 방식에 대한 뒤흔듦이 아닌, 내러티브, 플롯 등의 기본 요소를 제외한 영화의 기본 속성에 대해 이야기하려는 건가라는 호기심마저도 생긴다. 영화를 만든 이들은 촬영 순서는 어떻게 정했을까. 철저하게 영화적인 영화란 생각이 든다.
이 영화의 백미는 누구나가 알듯이, 모과의 변형되는 모습이다.
영화 속에서 시간이 역순으로 배열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유일한 단서 "모과"는 3일째 되던 날, 모과나무를 발견한 배우들이 발견했다. 모과가 변형되는 모습이 신선하고 기억에 남는 이유는, 관객이 따라갈 수 있는 유일한 흐름의 단서이면서, 흥미로운 요소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모과의 변형을 통해, 관객임을 인지할 수 있고, 상영되는 물질이 영화라는 것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