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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동시 뜰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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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옹달샘 Oct 15. 2024

개구리 소리 듣는 밤

유정 《겨레아동문학선집 10, 귀뚜라미와 나와》 (보리, 1999)

 

                

개구리 소리 듣는 밤

                                              유정     

         

멍석을 깔고 

밖에서 자도 좋은 시절이 되었습니다.      

할아버지 아버지 순례 막둥이 모두 

머리를 나란히 하고 먼 개구리 소리를 듣습니다.      

개굴 개굴 개굴

개개개 개개!

개―굴 개―굴     

지난 해엔 형님도 같이 누워 듣던 

개구리……     

손을 들면

별하늘이 닿을 듯한 따뜻한 밤입니다.          



          


바람의 온도가 달라졌다며 9월을 반겨 맞았더니 어제, 오늘 아직도 물러가지 않은 이놈의 더위에 머리를 절래절래 흔든다. 집 밖으로 나갈 엄두도 못 내고 꽁꽁 문 닫은 채 에어컨 앞에서 보내던 한철이 이렇게 더디게 가고 있다. 에어컨은커녕 변변찮은 선풍기도 없던 70~80년 전 삶을 생각해 보면 첨단의 시대를 사는 것에 감사하다고 자신할 수 있을까. 문명의 편리에 자취를 감춘 불편한 옛 시절이 가끔 몹시 그리운 것은 무슨 이유일까. 이 한 편의 동시가 (우리도 경험해보지 못한) 불편한 시절의 여름밤으로 우리를 데려간다.     

 

동시의 시작은 이렇다. 멍석을 깔고/ 밖에서 자도 좋은 시절이 되었습니다. 


말하는 이의 가족은 더위에 지쳐 마당에 멍석을 깐 것 같지 않다. 멍석을 깔고 밖에서 자도 좋은 시절이라니 오히려 더운 날을 반갑게 기다린 듯한 어조로 읽힌다. 마당에는 쑥 향내 올라오는 모깃불이 피어오르고 있겠지. 엄마는 수박을 세모로 큼직하게 썰어 동그란 쟁반에 담고 있겠지. 할아버지, 아버지, 막둥이는 나란히 머리를 맞대고 누워 멀리 무논에서 들려오는 개구리 소리를 들으며 밤새 무슨 이야기를 나눴을까. 지난해엔 함께 누워 개구리 소리를 들었다는 형님은 어디로 갔을까. 시의 내용으로는 알 길이 없다. 이 시의 정겨운 흐름으로 보아 형님의 부재에 힘들고 슬픈 사연이 있는 건 아닌 듯하다. 


손을 들면/별하늘이 닿을 듯한 따뜻한 밤입니다. 시의 마지막 연에서 들리는 화자의 목소리는 에어컨에 기댄 우리의 여름밤을 불편한 시절에 대한 그리움으로 가득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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