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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옹달샘 Oct 17. 2024

한 아이

《옷장 위 배낭을 꺼낼 만큼 키가 크면》송선미 시집

한 아이           


한 아이가 걸어왔다. 

나에게 노래를 부르며 걸어왔다.     


처음 듣는 그 노래를

아이는 먼 데서부터 부르며 온 것도 같고

나는 먼 데서부터 들었던 것도 같은데

이상하게 자꾸 눈물이 났다.   

   

노래를 마치고 아이는

내 품에 안겼다. 

안겨서 나를 꼭 안아 주었다.     


꿈이었다.     


몸을 웅크리고 조금 더 울었다.

아이보다 작아져서 조금 더 울었다.                                                                                 




 

  침대 모퉁이에 웅크리고 앉아 있는 여린 아이가 있다. 그는 ‘아빠가 화가 나고 엄마가 혼자 우는 게 자기 때문’(〈나 때문이 아니다〉)이라고 자책하던 아이였다. “넌 어째 애가 맨날 그러니?”, “넌 니 생각만 하냐?”〈(누굴 보고 있나요〉)처럼 엄마, 아빠가 뱉은 한마디가 마음에 오래 남았던 아이였다. 어쩌면 그는 어른이 될 때까지 너 때문이 아니라고 따뜻하게 말해 주는 누군가를 만나지 못하고 자랄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 아이는 지금도 많은 사람들 속에 웅크리고 있다. 


  그런 이들 중 누군가가 어느 날 시를 읽으며(〈어떤 시를 읽었던 밤〉)-만약 시인이라면 시를 쓰면서 또는 작가가 아니라도 글을 쓰는 (문학) 활동을 통해- 자기표현조차 제대로 하지 못해 켜켜이 쌓아두었던 말들을 풀어 놓는 날을 만난다. 한 번 풀려난 말들은 아픈지도 모르고 지내던 날수만큼 “말들이랑 나랑 말들이랑/ 깜깜한 밤이랑 한참을” 그를 아주 시끄럽게 할 것이다.     

  이 시 〈한 아이〉에서 나(우리)에게 걸어온 ‘한 아이’는 그렇게 줄곧 상처받으며 자란 우리의 내면 아이일 것이다. 그 아이는 그래서 나만 알고 있는 오래된 노래를 나에게 불러주었을(줄) 것이다. 그런 아이를 만나는 날엔 내 오래된 상처에 앉은 딱지가 조금씩 떨어져 나가는 경험을 하게 되겠지. 딱지가 떨어지려고 자꾸 눈물이 나겠지. 나는 내가 안쓰러워 내 품에 안긴 나를 꼭 안아 주었을(줄) 것이다. 그런 치유의 날들을 만난 나(우리)는 조금씩 단단하게 자란다. 자신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사랑하게 된다. “조금씩 천천히 내가 좋아져/ 속꺼풀도 쪽니도 나름 귀여워.”(〈맘 대로 거울〉)라고 말할 수 있게 된다. 이제 나(우리)는 자신이 꿈꾸는 일이라면 어떤 일이라도 두려워하지 않고 실행에 옮길 만큼 훌쩍 자라난다. “여행을 떠날 거야/ 옷장 위 배낭을 꺼낼 만큼 키가 크면”(〈옷장 위 배낭을 꺼낼 만큼 키가 크면〉)이라고 자신의 꿈을 당차게 말하는 아이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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