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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의선 Apr 25. 2023

#3. 지긋지긋한 그 집 epi. 2

[분기간 이의선]



     나는 그곳이 마음에 들었다. 생활은 조금 불편해졌어도 뛰어놀 공간은 충분했기 때문이다. 서툰 솜씨로 미장 된 마당은 울퉁불퉁했으나 시멘트가 메꾸지 못한 틈 사이로 포도나무 덩굴이 자라 오르곤 했다. 우리 집에 툭하면 놀러 오던 고모는 포도나무에 사는 애벌레가 얼마나 징그러운지, 밟으면 파란색 피가 터진다든지 하는 이야기를 들려주곤 했다. 덕분에 포도나무 곁을 지날 땐 그 징그러운 애벌레가 내 몸에 떨어지진 않을까 노심초사했다.


     벽장 속에 들어가 ‘엄마! 여기가 앞으로 내 방이야!’라고 할 만큼 그 집이 좋았다. 여느 집처럼 배꼽을 누르면 잠기는 문 손잡이가 아니라 아주 가느다랗고 허술한 걸쇠가 달려 있는 방문이 프라이버시를 지켜주었다. 오빠와 나는 그 가벼운 걸쇠로 방문을 잠그고 구몬 선생님이 오기 전에 학습지를 찢어 방 구석구석에 숨겨 놓길 주저하지 않았고 아빠가 퇴근하는 기척이 들리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드러누워 자는 척을 했다. 비가 오는 밤에는 근처 비디오 가게에서 그 당시 가장 무서운 영화였던 ‘엑소시스트’를 빌려 떴는지 감았는지 모르는 눈으로 꺅꺅 거리며 기절하듯 영화를 봤다. 가을이면 집을 둘러싼 나무가 몸을 털며 마른 잎을 떨어뜨렸다. 그러면 아빠가 초록색 플라스틱 술이 달린 빗자루로 한데 모아 매캐한 냄새가 나도록 태웠다. 우리 집에서 낙엽을 태우면 집 앞 골목엔 뿌연 회색 연기가 가득했다. 가끔은 집에 불이 났는 줄 알고 달려오는 이웃도 있었다.


     가을이 가기 전에 할머니는 수레를 끌고 시장에 나가 크고 실한 배추를 골라왔다. 잘 마른 고추로 빻아 만든 질 좋은 고춧가루도 비밀의 루트로 공수해 김장 준비를 했다. 찹쌀을 끓여 풀을 쑤고 쪽파와 갓을 손질해 소쿠리에 가지런히 준비한다. 알이 꽉 찬 배추 끄트머리에 칼집을 살짝 내 두 손으로 갈라주고 뿌리 쪽에 굵은소금을 쳐 한나절 푹 절여 둔다. 그러면 얼추 김장 준비가 끝난다. 다음날은 아침부터 바쁘게 움직여야 하기에 이른 저녁을 먹고 잠자리에 들었다.


     김장하는 날이면 빨간 대야와 은색 스테인리스 대야, 소쿠리, 들통 등 그동안 어디에 숨겨져 있었는지 모르겠는 거대한 김장용품들이 마당을 가득 채웠다. 할머니와 이모들, 왠지 모르겠지만 우리 고모까지 둘러앉아 채칼로 무를 썰고 벌건 재료들을 넣어가며 김치 속의 간을 맞춘다. 그러면 어디선가 총각무 다발이 들어오기 시작한다. 배추김치가 알맞게 익기 전 총각무를 먼저 먹어야 한다는 할머니의 노련함으로 김장의 흐름은 이어졌다. 나는 김치 속의 간을 맞추는 시간이 제일 좋았다. 할머니가 절인 배추의 노란 여린 잎을 몇 장 뜯어 김칫소 양념을 둘둘 말아 입에 넣어주는 그 시간. 일 년에 딱 그때뿐이 볼 수 없는 맛이다. 그렇게 김장을 하면 다시 추운 겨울이 돌아온다.


     그 시절 오빠와 나는 치킨과 피자 같은 음식을 시켜 먹어본 적이 없다. 롯데리아에서 상시 할인하는 데리버거나 새우버거를 외식으로 먹었고 간식으로는 할머니가 삶아놓은 사카린 가득 들어간 감자를 먹었다. 학교 마치고 집에 오면 항상 간식으로 찐 감자를 먹다 하루는 할머니에게 물었다, '할머니, 할머니는 왜 맨날 감자만 쪄줘요?'라고. 다음날에 할머니는 계란과 고구마를 쪄주셨다. 감자가 싫다는 말이 아니었는데 괜스레 할머니에게 미안해졌다. 아직도 할머니가 쪄주셨던 감자만큼 맛있는 찐 감자는 먹어본 적이 없다. 그 맛이 너무 그리워 집 앞 슈퍼에서 '뉴 슈거'를 사다가 삶아 보았으나 매번 밍밍하고 느글느글한 맛이 났다.


     주말이면 엄마는 모닝빵을 반으로 갈라 마요네즈와 케첩을 섞은 엄마표 특제 소스에 채 썬 양배추를 버무려 넣은 야채빵을 해주었다. 가끔은 다진 고기를 요리조리 굴려 동그랑땡 같은 햄버거 패티를 만들어 모닝빵 사이에 넣어 주었다. 엄마는 그것을 '미니 버거'라 불렀다. 2000년대 초반, 집에서 식빵을 구울 수 있는 기계가 획기적으로 등장했는데 엄마는 작은 통돌이 세탁기처럼 생긴 그 기계를 큰맘 먹고 샀다. 그 후 일요일만 되면 밀가루 반죽을 열심히 치대 기계에 넣고 굽기 시작했다. 거의 빵 공장 급의 생산력이었다. 통통하게 잘 구워진 식빵을 건져올리니 빵 굽는 냄새보다 더 향긋한 행복의 기운이 그 집에 퍼졌다.


     장맛비가 내리는 여름날, 큰 길에서 나를 내려주던 유치원 차가 대문 앞까지 왔던 적이 있다. 나를 하원 시켜주던 유치원 원장님이 우리 집을 얼핏 보고는 애들이 놀기 딱이라고 생각했나 보다. 그날 오후 원장님이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의선이네 집이 너무 좋던데 마당에서 우리 반 아이들이 현장체험을 해도 되냐고 물어봤다고 한다. 엄마는 질색을 하며 완곡하나 완강히 거절했다. 그 초라한 집을 보이는 게 너무나 부끄러웠다고 한다. 그녀는 꼿꼿한 사람이었다. 아쉬운 소리 하는 법이 없고 남들의 측은지심 사길 거부했다. 그런 그녀에게 그 집은 자랑이 아니었다.


     하루는 점심으로 엄마가 라면을 끓여 먹자고 했다. 행주로 깨끗이 닦은 상 위에 김치를 꺼내 놓고 수저를 반듯하게 올려놓았다. 엄마는 김이 나는 라면 냄비를 가져와 내려놓으며 이제 먹자고 했다. 맛있겠다며 라면을 건져 올리려다 뭔가 이상한 게 보였다. 자세히 보니 검은깨 같은, 아니 깨보다 작은 점들이 라면 위에 둥둥 떠올라 있었다. 이게 뭐지 하며 자세히 보니 뜨거운 라면에 푹 익은 개미였다. '엄마, 이거 개미 아니야?' 하고 말하니 엄마는 그제야 라면 봉지에 개미가 들어갔다는 걸 알았는지 멋쩍게 웃으며 개미는 단백질이니 먹어도 된다고 했다. 우리는 나란히 앉아 푹 익은 개미를 숟가락으로 밀어내며 라면을 먹었다. 몇 십 년이 지난 지금 엄마에게 가끔 그 시절에 대해 묻곤 한다. 엄마, 그때 우리 개미 들어간 라면 먹은 거 기억해? 팔뚝만 한 쥐가 빠져있던 변기는? 내 방만 보일러 안들어서 방문 열면 밖에 나가는 것 같다고 했잖아. 웃자고 한 말에 그녀의 눈은 한순간 빛을 잃고 허공에 맴돈다. 벌레를 무서워하는 그녀가 어떻게 각종 생명체가 튀어나오는 그 집에서 버텼는지, 수시로 정전이 되고 물이 얼어버리는 곳에서 토끼 같은 자식들을 길러냈는지 말하지 않아도 알 것 같다.


     쥐가 바글바글하고 모든 저장식품에 벌레가 꼬이는, 춥고 더운 오래된 집. 할머니가 사랑으로 내어준 집이었지만 엄마가 감당하기엔 조금 버거웠던 집이다. 그 집에서 나는 초등교육을 마무리했고 오빠는 중학교에 입학했다. 우리 가족의 첫 컴퓨터가 설치되었던 집이며 내가 간절히 꿈꾸던 피아노가 들여진 장소이다. 마당에서 크고 검고 잘생긴 '블랙'이라는 개를 키웠고 '뽀삐'라는 작고 하얀 강아지와 살았다. 반려 토끼가 나오는 만화책을 재미있게 읽은 오빠와 나를 위해 엄마는 작고 귀여운 토끼 두 마리를 사다 줬고 우리는 밤마다 사사로운 토끼 얘기를 지어내며 잠에 들었다. 학교 앞에서 파는 곯은 병아리에 이름을 지어주고 간밤에 동네 길고양이들이 삐약이를 잡아먹었다며 대성통곡하기도 했다.


     이렇게 추억이 많은 집이다. 나에게도, 오빠에게도, 엄마와 아빠, 돌아가신 할머니에게도 말이다. 머릿속에서 그 집을 되살리고 기억에 살을 붙여 이야기를 써나가는 지금도 기분이 좋다. 지금은 정말로 허물어져 없어진 그 오래된 집. 아빠에게는 고향이 되어주고 엄마에게는 상처가 되었던 그 낡은 집. 지금의 오빠와 내게 퍽퍽한 현실을 살아갈 양분이 되어준 지긋지긋한 집. 나는 아직도 그 집을 추억하며 산다.





분기간 이의선

分期間 李宜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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