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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정님 Dec 15. 2023

배자 댁 산자

내 인생 최고의 산자

설이라고 차례를 지내지는 않으나, 자식이 오니 음식을 장만할까 하여 마트에 갔다.

물품 매대마다 손님을 부르지만 유독 눈길을 끌며 옛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것이 있다.

내가 어렸을 적에 어렵게 만들어 놓은 산자 바구니에 주저앉아 망쳤다는, 우리의 전통 과자인 산자다.

산자는 유과 중의 하나로, 주로 설 차례상 음식으로 만들었다.

많은 쌀과 불이 필요한 음식이니 가을걷이하고 난 겨울이 안성맞춤인 셈이다.

우리 어머니 배자 댁은 산자를 잘 만들기로 동네에서 알아주었다.

며칠에 걸쳐 만드는 많은 공정 중에 조금이라도 소홀한 점이 있으면 산자를 구울 때 잘 부풀지 않아 낭패를 보기도 하지만, 어머니는 그런 일이 없었다.     

찹쌀을 발효시켜 가루를 내고, 가루를 익힌 반죽을 절구에 치댄 뒤, 얇게 밀어 손바닥 크기의 네모로 자른다.

자른 반죽을 방바닥에 널어 2∼3일 동안 사금파리처럼 딱딱해질 때까지 말리고, 기름을 발라둔다.

말릴 때 방바닥은 발을 딛기 어려울 정도로 뜨겁다.

쌀밥을 엿기름으로 삭혀 식혜를 만들고, 이것을 졸여 조청을 만드느라 불을 많이 땠기 때문이다.

화로 위에 무쇠 솥뚜껑을 뒤집어 놓고, 굵은 모래와 큰 콩알 크기의 돌들을 가득 부어 달군다.

이 돌들은 해가 갈수록 반질반질하게 윤기가 더해지며, 검어지고 둥글어진다.

그 반질거림과 검은 상태를 보면 해묵음의 정도를 알 수 있다. 이웃에 빌려 쓰기도 한다.

달궈진 모래에 말린 반죽을 묻으면 몇 배의 크기로 부풀어 오르며 고소한 냄새와 함께 속이 빈, 바삭한 과자로 변신한다. 고무풍선에 바람을 넣으면 일어서듯이 부풀어지는 것이 신기해서 탄성이 절로 난다.

산자가 제멋대로 울퉁불퉁 부풀어 오를 때, 숟가락으로 빠르게 눌러가며 모양을 잡아 줘야 예쁜 산자가 된다. 구워진 산자에 묻은 모래, 먼지 등을 살짝 마른 솔가지로 털어낸 다음, 조청을 바르고 그 위에 쌀 튀밥 고물을 묻혀 내면 완성이다.

쌀 튀밥 고물이 산자에 묻힌 조청의 끈적임을 막아주고 고소함을 더해준다. 이 고물은 쌀을 튀긴 튀밥을 절구에 살살 빻아 체에 내려서 중간 정도의 가루를 사용한다. 이때 체에서 빠진 고운 가루를 입에 잘못 털어 넣다가 목과 코가 막혀 곤욕을 치르기도 한다. 완성된 산자는 바로 먹는 것보다는 하루쯤 지나 조청이 과자에 스며들고, 쌀 튀밥 고물이 착 달라붙어 눅진해져야 제맛이다. 산자를 입에 넣으면 무너지듯 녹아내리며 느껴지는 달지만, 절대 과하지 않은 달콤함과 부드러움과 고소함은 산자에서만 볼 수 있는 맛이다.

산자를 들었을 때 휘어져 천천히 무너져 내리며 조청이 실처럼 늘어지는 한 조각을 베어 물면 입안에 사르르 녹는다. 조청의 달콤함과 찹쌀 과자의 고소함이 어우러진 전통 과자, 산자의 맛이다.     

산자는 맛은 있으나 복잡한 공정으로 만들기가 쉽지 않다.

요즘은 만드는 과정이 개량되고 기름에 튀겨서 만드니, 만들기는 쉬우나 옛 방식으로 만드는 산자의 건강한 맛과 풍미는 따를 수 없는 것 같다.

그래도 우리 전통 과자의 맥을 이어 나가고 있음이 감사한 일이다.     

우리 선조들의 노력과 인내와 지혜로 이어온 전통 방식에 어머니의 손맛을 더해 만들어 주셨던 산자.

산자를 서늘한 광에 보관해 두면, 참새가 방앗간 드나들듯 들락날락 거리며 겨우내 먹었다. 겨울 간식으로.

이 세상 어디에서도 맛볼 수 없을 것 같은 산자의 맛. 어머니, 배자 댁 산자의 맛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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