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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정님 Feb 21. 2024

어른들이 본 청춘 멜로 영화

청춘의 사랑 영화를 보고 치매를 떠올리다

2개월 주기로 만나는 모임이 있다.

며칠 전 8명이 삼성역부근에서 만나 점심식사를 하고, 코엑스에서 영화감상을 했다.

추운 날씨로 내 활동을 하자 하여, 우리의 일정에 맞게 상영하는 영화를 선택했다.

‘오늘 밤, 세계에서 이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라는 일본 영화였다. 일본 영화는 많이 접해보지 못해서 어떤 느낌일지 궁금했다.




교통사고로 ‘선행성 기억상실증’에 걸려, 자고 나면 기억을 잊어버리는 여고생 '마오리'와 배려심이 많으나 심장병으로 갑자기 죽게 되는 남고생 '토루'의 청춘 멜로 영화다.

마오리는 매일 그날의 을 잊지 않기 위해 일기를 쓰고, 다음 날 아침, 전날 쓴 일기를 읽고 기억을 이어가며 사랑의 감정을 쌓아 간다. 토루와 만날 때면, 그를 모델로 그림을 그린다. 그가 사망하고 기억은 사라진다. 마오리의 기억에 토루는 없으나 '절차적 기억'으로,  몸이 토루를 그리며 기억을 찾아간다는 안타까운 10대들의 절절한 사랑 이야기다. 이 영화에 대한 사전 정보가 없었던 탓에, 영화 초반에 일진들이 등장하는 것을 보고 학교폭력이 주제인가 했는데, 기억상실, 죽음으로 인한 이별, 기억 회생 등의 서사로 판타지 같은 로맨스다. 드라마나 영화에 자주 등장하는 소재로 좀 진부하긴 하다. 달콤한 대사들이 애달프고 간지럽다. 배경 영상이 아름답다. 영화가 막바지로 가면서 관객들의 훌쩍이는 소리가 들린다. 보이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그들의 말랑말랑한 감성이 부럽다. 마음에 갑옷이라도 두른 듯, 억지스러운 설정이라는 비평부터 앞세우며 그들의 감성에 같이 젖어들기 어려움을 느낀다. 감성이 둔해지고 현실적인 잣대로 재며 메마르게 살아온 것인가. 감정이입이 안되어 지루함마저 든다. 음향조차 너무 커서 머리와 귀도 아프다. 영화가 끝나고, 얼른 나오고 싶었으나 엔딩 크레디트가 다 올라갈 때까지 기다리다 일어섰다. 훌쩍이는 젊은이들의 감성에 방해가 될까봐 조심스러웠다. 나도 영화를 재미있게 보고 나면 그 여운을 즐기고 싶어 엔딩 크레디트까지 감상하니까.     

 



영화가 끝나고, 카페에서 갖는 차 한잔의 담소시간이다.

오랜 세월 동안 같은 일을 하고 퇴임한 사람들의 모임이다 보니 공통된 화제들에 공감력도 크다. 그동안의 안부와 살아가는 이야기들이 주를 이룬다. 방금 전 본 영화에 대한 감상평도 나왔다. 영화의 줄거리에 동화되어 마음이 에워졌다, 남은 시간에 대한 준비를 해야겠다, 현재에 감사하다는 등의 이야기다. 듣다 보니 영화에 집중을 못 한 것인지 줄거리에 빈 부분이 있는 듯, 내용이 잘 이어지지 않는 느낌도 든다. 어느 분이 “치매에 걸렸을 때, 영화처럼 '절차적 기억'이라는 게 작동하여 사랑하는 사람을 기억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라고 한다. 영화를 보고 우리 나이의 당면문제와 연결 지어 생각하게 되다니, 서로 이야기를 나눠보는 힘이고 재미다. 회원들의 평균 나이가 60대 후반이니, 우리 자신이나 주변 사람의 치매 걱정도 할 터이다. 살아온 시간보다 남은 시간이 더 짧다는 현실에, 건강과 앞으로의 삶에 대한 관심이 많을 수밖에 없다. 치매로 인해 기억이 사라져 가도, 사랑하는 사람은 마음 어딘가에 새겨져 무의식이나 습관적으로 기억이 작동되어 떠 올릴 거라고, 간절한 사랑이 그렇게 잊지 않게 만들 거라고, 기원하는 마음들이다. 기억이 사라진다 하여 사랑하지 않는 건 아닐진대, 안타까운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모두가 사는 동안 기억을 잃는 일이 없기를 바랜다. 이런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이 사람들의 기억도 잊지 않도록 더 깊이 사랑해야

겠다. 청춘의 아름다운 사랑 영화를 보고 동요가 일지 않는 감성이나, 치매를 떠올리게 되는 현실이 좀 씁쓸하기는 하다. 마음 어느 한켠에 남아 있을 영화 주인공의 나이로 돌아가 공감해 보는 여유가 있으면 좋겠다. 그만한 추억 하나쯤은 떠올릴 수 있는 건조하지 않은 삶이기를, 들고나는 감정들이 풍요롭게 기를 이 영화가 일깨워 준다.



* 대문사진:  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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