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들의 생명이야기

생명은 아름답다고

by 한정님

지난여름 아파트 베란다 창틀이 유달리 지저분해 보였다. 창틀에 떨어진 지 오래되어 보이는 벌의 사체들과 까만 점들이 여기저기 묻어 있다. 벽을 따라 위를 보니 처마 밑에 참외만 한 벌집이 붙어 있다. 벌들이 분주하게 들락거렸다. 어릴 적 보았던 장수말벌과 같은 생김새이나 크기는 작았다. 인터넷을 찾아보니 쌍살벌인 것 같다. 방충망을 뚫고 집 안으로 들어오기라도 하면 큰일 아닌가, 손녀도 가끔 오는데. 벌이 집 안으로 들어올까 두려워 처리하자 했더니 남편은 주저한다. 내 집에 와서 집 짓고 사는데 살생하는 게 망설여진다고 한다. 더구나 태중에 손자가 있으니, 태어난 후에 생각해 보자고 했다. 그렇기도 하다. 미신일지 모르지만 왠지 지켜야 할 것 같은 마음에 겨울까지 살피며 놔두기로 했다.


벌과 마주한 일이 또 있다. 현직에 있을 때, 학생들과 함께 저수지 제방으로 산책을 나가 풀밭에 앉았다. 갑자기 학생 한 명이 비명을 지르며 튀어 올랐다. 주위를 보니 벌 몇 마리가 날아다닌다. 숫자는 적으나 윙윙거리는 벌들의 비행이 예사롭지 않다. 벌들의 숫자가 점점 많아진다. 뛰어가는 학생이 있는 반면, 무념무상인 듯 그냥 앉아 있는 학생도 있다. 스스로 피하기 어려운 학생들을 피신시키느라 제정신이 아닌 초능력자가 되었다. 나 자신은 돌볼 겨를도 없이 벌들을 맞이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전에 양봉에 많이 쏘여 내성이 생겼었는지 큰 고통 없이 지나갔다. 그나마 독성이 약한 땅벌이어서 다행이었다.


오래전 시골집에서 양봉을 했다. 꿀벌은 작은 곤충이지만 가축으로 기른다. 아버지는 직장에 다니면서도 다양한 가축을 길렀다. 돼지, 소, 닭, 염소, 앙고라토끼(양처럼 털을 깎는 토끼) 등은 기본이고, 꿩 알도 부화시켜 길렀다. 개, 고양이, 새(잉꼬, 카나리아, 십자매 등)도 길렀지만, 애완동물이니 별도다. 낚시용으로 안성맞춤이라는 지렁이도 얻어다 두엄자리에 묻으셨다. 지렁이 씨앗을 얻어다 심으신 것이다. 그 후, 여름철 비 온 뒤의 두엄자리 부근에는 빨갛고 윤기 나는 지렁이들이 꾸물꾸물 많이도 기어 나왔다. 아버지의 유별난 '가축 기르기' 덕분에 동물들에 대한 경험은 많아졌으나, 가족들은 항상 바쁘고 일이 많았다.


여름방학이면 마당에 일렬로 놓인 벌통 앞을 지켰다. 우리 지방에서 대추벌이라고 부르는 '장수말벌'을 쫓거나 잡으려는 것이다. 장수말벌은 몸길이 3~4cm 정도로 벌 중에 가장 크고 힘도 세다. 검은색 몸통에 황색 줄무늬 꼬리와 황색 머리에 도드라진 검은 눈이 강렬하다. 잠자리 입 같은 큰 입을 들썩이면 가슴마저 서늘해졌다. 장수말벌이 벌통 앞을 얼씬거리면 꿀벌 보초병들은 초비상이다.

그들은 벌통 입구에서 전투 진영을 갖춘다. 몸을 추스르듯 부르르 떨며 날개를 쫙 편다. 몸은 수평으로 돌격 자세를 취한다. 그 여린 날갯짓 진동들이 모여 우웅~ 소리가 난다. 벌통 안의 온도나 수분을 맞추기 위한 날갯짓하고는 사뭇 다르다. 긴장감이 팽팽하다. 침입자를 위협한다. ‘내 집에 들어오면 응징하겠다’고. 보초병들은 사력을 다해 싸우지만 침범을 막기에는 역부족이다. 장수말벌은 벌통 안으로 들어가 꿀을 잔뜩 먹고 유유히 날아간다. 그 사이 벌어진 치열한 공방전으로 꿀벌들이 다치거나 죽는다. 장수말벌은 여러 번 쏘아도 죽지 않지만, 꿀벌은 한번 쏘면 침에 창자까지 따라 나오기도 하여 많이 죽는다. 자기의 생명을 바쳐 공동체를 지키는 것이다. 떠났던 장수말벌은 자기들만의 신호로 동료들을 데리고 다시 돌아온다. 이때, 막아주지 않으면 그야말로 양봉 벌통은 초토화된다.



아버지를 도와 장수말벌을 잡으면서도 기분은 영 내키지 않았다. 이 벌을 잡아서 밟으면 찌르륵 전신으로 퍼지는 느낌에 진저리가 났던 것이다. 주로 쫓아내거나 어찌하여 잡을 때는 놓칠세라 다급하게 외친다.

“아버지, 빨리!"

아버지가 출근하신 날은 벌통을 지키는 것이 나 혼자만의 일이 되었다. 언제 들어갔는지 장수말벌 한 마리가 벌통에서 나와 재빠르게 날아올랐다. 잡혀가는 꿀벌이 가녀린 다리로 발버둥을 쳤다. 장수말벌은 푸른 하늘로 날아올라 하나의 점이 되더니 순식간에 시야에서 사라졌다. 그 장면을 본 나는 이미 다른 사람이 되어 버렸다. 이 사나운 벌의 소탕 작전에 쓸 도구들을 부리나케 챙긴다. 매미채, 대 싸리비, 파리채 등을 들고 비장하게 휘두른다. 아버지가 귀가하시자 전리품을 자랑하는 나를 본다.

장수말벌은 잡아간 꿀벌의 머리와 날개 등을 뜯어내고 몸통만 남겨 자기네 유충의 먹이로 준다고 한다. 공들여 기른 작은 꿀벌의 생명에 대한 안타까움을 아버지에게 토로했다.


최재천 교수님의 ‘생명이 있는 것은 다 아름답다’라는 책을 제목만 보고 샀다. 동물을 좋아하기에 흥미가 당겼다. 동물들의 경이로운 모습에 감탄하며, 생명 사랑에 진심인 교수님도 좋아하게 되었다. 역시 생명은 아름답다. 그 아름다운 생명을 양봉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잡고 보니 마음 한구석이 짠하다. 장수말벌들도 자신들의 생명을 지키려는 삶의 방편이니 그들만의 잘못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사람에게 위해를 가하니 공생이 어려운 난제라 안타까운 마음이다.



겨울이 된 지금, 우리 처마 밑의 벌집은 텅 비었다. 벌의 생이 끝난 걸까. 일벌의 수명은 짧다고 하나 수명이 길다는 여왕벌마저도 없어진 건가, 여왕벌은 몇 년 산다는데… 이사를 간 것인지도 모르겠다. 사람 사는 집이나 벌이 사는 집이나 빈 둥지가 되면 을씨년스럽고 쓸쓸하기는 마찬가지인가 보다. 겨울바람마저 불어대니 부스러기까지 제멋대로 날린다. 이제 손자도 건강하게 탄생했는데, 주인이 없는 집을 어찌할까 다시 의논해 볼 일이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과연 엄마같은 사랑이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