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사랑한다고 생각했다.
성탄절이 다가온다. 손녀가 다니는 어린이집에 캐럴이 울려 퍼지고 실내 장식과 크리스마스트리가 예쁘게 꾸며졌다. 성탄절에 산타할아버지가 손녀에게 줄 선물을 크리스마스트리 밑에 갖다 놓았다. 오래전, 성탄절 선물로 빨간 점퍼와 초콜릿을 포장하며 자식에게 줄 선물인 양 정성을 들였던 생각이 났다. 누가 왜 주는지도 모르고 그저 받는 것이 좋기만 한 아이에게 줄 선물이었다.
토요일 수업이 있을 때다. 토요일은 가까이에 있는 저수지로 단체 산책을 간다. 가로수가 잘 자란 2차선 도로는 저수지 주변의 별장으로 가는 승용차만 가끔 지나갈 뿐 한적하고 편안한 길이다. 우리 반은 초등학교 2학년으로 10명이다. 모두 발달장애 학생들로 장애 정도가 제각각이고 특성도 다양하다. 뛰어가는 아이가 있는가 하면, 걷기 어려워 휠체어가 필요한 아이도 있다. 외부에서는 교사 혼자 이동하기 어려워서 과정별로 모여 함께 간다. 지금처럼 지원 인력이 없을 때여서 무슨 일이 있으면 서로서로 도움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서로 보조를 맞추어 걷자니 “천천히 가요.” “빨리 와요.”라고 저절로 외쳐진다. 아이들에게 줄 간식과 물, 휴지 등을 넣은 배낭을 메고, 양손은 비워서 혼자 걷기 힘든 아이의 손을 잡고 걷는다. 한참 걷다 보니 영남이가 보이지 않는다. 뒤에 떨어져 몸을 좌우로 흔들고 잉잉거리며 따라오고 있다. 내가 돌아보는 것을 보고는 그 자리에 주저앉는다. 와서 데려가라는 시위다.
"영남아, 빨리 와~"
하고는 잘 따라오나 싶어 슬쩍 뒤를 보니 느린 걸음으로 따라오고 있다. 뒤돌아보면 또 주저앉으니 안 보는척하며 간다. 빨리 오라고 재촉하길 여러 번. 그러나 다시 주저앉기를 반복하는 영남이를 보며 마음이 복잡해진다. 가서 데려올까? 습관이 될까? 자립심이 없어질까?
그래도 혼자 걸을 수 있으니 잘 따라오기를 바라며 계속 걷는다. 아무래도 거리가 너무 떨어지는 것 같아, 우리 반을 다른 반 선생님에게 맡겨 기다리게 하고 되돌아간다. 내가 돌아오는 것을 본 영남이가 다시 주저앉는다. 선생님이라는 말도 발음이 안 된다. 훌쩍거리며 옹알이처럼 “으음마~” 한다. 영남이를 업고 와서 전체 인원이 다시 출발한다.
영남이는 무연고자로 장애인 사회복지시설에서 생활하는 아이다. 코도 잘 흘리고 상고머리에 얼굴은 핼쑥하다. 몸이 약하니 교감 선생님이 매일 달걀을 삶아와 교무실에서 먹였다. 선생님들의 관심을 받으며 우쭐해하는 녀석의 모습에 모두가 사랑스러운 웃음을 지었다. 추석, 성탄절 등 명절에는 영남이에게 입힐 옷을 사러 시장에 갔다. 평소에도 시장에 갔을 때 예쁜 옷 먹을 것을 보면 영남이 생각이 나서 샀다. 항상 생각하게 되는 영남이 때문에 엄마가 된 듯 했다. 결혼하여 내 아이를 기르고 보니 어찌 감히 엄마의 마음이라 할 수 있겠나 싶지만, 그때는 정말 자식처럼 생각되어 잘 자라게 해야 한다는 마음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