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전부터 꿈꾸기 시작했던 남미여행이다. ‘배를 타고 아바나를 떠날 때’(라틴아메리카 문화기행, 이성형, 2001) 이 책을 접한 것은 2002년도다. 책 제목이 고등학교 때 배운 노래 ‘라 팔로마’의 애잔한 노랫말인 것이 이목을 끌었다. 중남미 문화, 역사, 정치 등을 망라한 중남미 4개국의 기행이었다. 호기심으로 읽던 책은 남미여행을 꿈꾸게 하였다. 여행을 좋아했지만, 사는 것만도 벅찰 때였다. 언젠가 이 책에 나오는 곳들을 찾아보리라, 그렇게 열망하며 20년이 흘렀다. 퇴직하고 수고한 나에게 선물한다는 미명하에 곳곳의 해외여행을 했지만, 그동안 남미는 미뤄졌다. 체력이 요구된다는 남미여행을 더 이상 미루면 안 될 것 같아 결단을 내렸다. 외국어 실력이 일천하니, 패키지여행과 배낭여행을 결합시켰다는 여행 상품을 선택했다.
‘외국어 못하신다고 쫄지 마세요! 남미 사람들도 손가락은 10개입니다.’ 이 문구가 가슴에 방점을 찍었다. 같이 갈 동행이 없어, 여행사에서 연을 이어준 룸메이트를 여행 전에 만났다. 그녀도 여행 경험은 많으나 외국어에 자신 없단다. 뭐, 바디랭귀지로 통하겠지. 나름 유튜브로 영어회화 공부도 했으니까. 그런데 막상 현지에서 급한 일을 당하니 입도 떼지 못했다. 완벽한 준비라는 것은 없는지 출발 전날까지도 종종거렸다.
1. 페루 - 리마 도착
2022년 2월 드디어 27박 28일간의 페루-볼리비아-칠레&파타고니아-아르헨티나-브라질 5개국 남미여행이 시작되었다. 인천공항에서 여행기념 출발 동영상을 찍었다. 여느 여행자처럼 흉내 내보려니 쑥스러워 대기실 구석진 자리를 찾아 찍었지만 지금까지 재생해 보지 않았다.
드디어 꿈의 트랩을 밟았다. LA까지 11시간, 페루 리마까지는 8시간 비행이었다. 옆자리에는 라틴계의 30대 후반쯤 되어 보이는 남자가 앉았다. 오랜 시간을 투명인간처럼 모른 척하고 있기 멋쩍어 눈인사를 했다. 그는 옷자락 귀퉁이를 잡아 안경을 닦았다. 얼른 일회용 렌즈 클리닝 티슈를 내밀었다. 그는 반갑게 받아 안경을 닦으며 물었다. 어디에서 왔느냐고. 대한민국에서 왔다며, 앞 좌석 모니터에 있는 비행선 지도에서 우리나라를 찾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고개를 끄덕이며 본인은 Portland에서 왔다고 했다. 아는 척했지만, 스코틀랜드? 내가 잘 듣긴 한 건가 의심이 갔다. 북유럽 쪽 어느 나라인가 했는데... 미국이다. 이후 대화 없이 리마공항에 도착할 무렵, 그 남자가 나에게 몸을 기울이며 핸드폰을 보인다. 세상에나, 한글로, ‘즐거운 여행 하세요’라고 적혀 있다. 사진을 찍어둘걸, 반가운 나머지 감사 인사만 하느라 생각도 못했다.
꼬박 하루 걸려 페루의 수도 리마 공항에 도착했다. 지구 반바퀴를 돌아 우리나라 반대편에 온 것이다. 첫 숙소에 여장을 풀었다. 일행들과 인사를 나눠 보니, 여행 고수들인 데다, 세계여행을 하다 마지막 여행지로 남미를 택한 게 아닌가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