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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정님 Jun 15. 2024

수학여행, 동참의 의미

평생 추억이 되다.

초등학교 6학년 가을이다. 졸업기념 수학여행을 여수로 간다고 들떠서 야단들이었다. 요즘은 수학여행 시 발생하는 각종 안전사고의 위험과 교육과정의 방해요소라는 비판, 활발한 가족 단위의 여행 등으로 관심도가 높지 않다. 그러나 1960년대 말, 수학여행은 집을 떠나 숙식을 하며 새로운 세상을 볼 수 있는 유일한 기회였다.

나는 가지 못했다. 여름에 가족들끼리 여수 만성리 해수욕장을 다녀왔으니 여수를 또 갈 필요 없다는 이유였다. 어느 친구는 수학여행비가 없어 못 보낸다는 부모님의 말씀을 ‘아버지께서 농사지어 가을에 주신다’고 했다는 기지(?)를 발휘하여 선생님이 내주신 덕에 다녀왔다고 한다. 모두들 수학여행을 가고자 열망했다.  



    

어른이 되어 동창회를 하니 화제는 어릴 적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그중 수학여행 때 똥통에 빠진 이야기는 늘 흥미진진하다. 똥통에 빠졌던 친구는 실감 나게 재연을 한다. 듣는 친구들은 맞다, 아니다, 의견도 분분하다. 누가 씻겨주었고, 옷을 빌려주었고, 냄새난다고 모두들 피하는데 누가 같이 자 주었다는 둥 이야기는 끝없이 이어진다. 이야기에 몰입되어 자신들도 모르게 목소리가 커진다. 나는 수학여행을 가지 못한 탓에, 오가는 대화들만으로는 왜 그런 사건이 일어나게 되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사건의 주인공인 친구를 인터뷰해 보았다.    

 

여수항. 배에서 내려 나오는 중이었다. 길이며 바닥이 온통 까맸다. 석탄을 실어 나르는 배에서 날아온 석탄 분진이 뒤덮은 것이다. 길을 따라 걸어 나오는데, 멀리서 어느 아저씨가 손짓을 했다. 뭐가 잘못되었나 싶어 뒷걸음치는데 순식간에 몸이 무너져 내렸다. 비명을 질렀다. 걸쭉한 물 같은 것이 허리까지 잠기고, 머리 위로도 튀어 올랐다. 익숙하나 고약한 냄새가 났다. 똥통에 빠진 것이다. 그 당시에는 인분을 삭혀 거름으로 쓰던 때였다. 길 옆이 인분을 모아 숙성시키는 곳이었으나 석탄분진이 뒤덮여 새까맣게 되니 똥통인지 길인지 구별이 안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아저씨가 조심하라고 손짓을 한 모양인데 놀라서 오히려 더 빠지게 되었다. 뒤를 이어 남학생 두 명이 더 빠졌다. 다리까지 빠진 것인가, 온몸이 빠진 것인가의 차이였다.      




똥통 이야기는 할 때마다 새롭고 재미있다. 남자들의 군대 이야기 같은 것이다. 먹어도 먹어도 질리지 않는 우리 토속음식 같은 맛깔난 제다. 수학여행의 추억이 없는 나는 공감하며 들어주는 역할을 한다.

수학여행의 목적이 무엇일까? 부모가 자녀의 수학여행을 왜 보내야 하는가 생각해 본다. 수학여행은 학교 밖 학습활동으로 여러 측면의 교육목적으로 실시한다. 친구들과 함께 현장을 견학하고 탐방하며 얻은 경험은 학창 시절의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는다. 그 추억이 성인이 되어서도 정서적으로 더 풍요롭고 행복하게 마음을 채워주기도 한다. 친구들과 평생 공감대를 이루는 이야깃거리를 갖게 되는 것이다. 수학여행은 친구들과 함께하는 시간이라는 사실만으로도 동참할 의미가 있는 것이라 생각된다.

겹치는 수학여행 행선지라고 보내주시지 않은 부모님의 선택은 초등학교 동창회의 똥통대화 때마다 나를 심심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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