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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정님 Jun 15. 2024

엄마 마음, 선생님 마음

역할에 따라 달라지는 마음

유치원생들이 올망졸망 선생님 손잡고 소풍 가는 모습을 보면 그림이 그려지듯 옛 생각이 난다. 유치원을 3년이나 다녔다고 푸념하는 아들의 유치원 소풍 때 일이다.



지금처럼 육아에 필요한 시간을 내는데 너그럽지 못했던 시기여서 아들의  유치원 행사에 참석하기가 어려웠다. 행사 때, 엄마의 자리에 옆집 아주머니, 할머니가 앉은 사진을 볼 때면, 사진 속의 아들 표정부터 살펴졌다. 선입견인지 즐거워 보이지 않는 아들 표정에 마음이 아팠다. 마침, 아들이 봄소풍을 근무지와 가까운 곳으로 오게 되었다. 점심시간을 이용하여 외출 허락을 받았다. 엄마 역할을 하게 되나 싶어 아들보다 내가 더 흥분된 것 같았다. 아침에 챙겨 온 도시락을 들고 소풍장소로 갔다.           

원생들은 넓은 잔디밭에 일렬로 앉아 장기자랑을 하고 있었다. 아이들이 앉은 곳은 잔디밭이나 장기자랑을 하는 곳은 흙바닥이다. 장기자랑을 하는 아이들이 움직일 때마다 흙먼지가 날렸다. 관객이 되는 아이들에게 선생님은 “앉아요” 하며 계속 질서를 지키도록 지시했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아이들의 집중력은 떨어지고, 하나 둘 일어서서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들은 선생님의 말씀을 따르느라 먼지가 날려도, 친구들이 돌아다녀도 자기 자리를 지키고  있다. 아들도 일어섰으면 좋겠다. 저 먼지를 다 맞이해야 하다니... 나의 속이 탔다.

‘친구들처럼 일어나도 돼.’

‘어서 일어나.’

그래도 선생님의 말씀을 따르는 아들에게 직접 말하지는 못했다.  



   

장기자랑과 점심식사가 끝나고 대망의 보물찾기 시간이 되었다. 다른 아이들은 찾았다고 환호를 하는데 아들은 못 찾아서 울상이다. 그 모습을 보니 가슴이 뛰었다. 아이들만 찾다가 하나둘 학부모들 이  합세하기 시작했다. 나도 질세라 끼어들어 아들 손을 잡고 보물을 찾았다. 허둥대고 못 찾기는 엄마 인 나도 마찬가지였다. 어쩌다 나뭇가지에 끼어있는 것을 하나 발견했다. 아들에게 찾게 하고는 몰래 안도의 숨을 쉬었다. 좋아하는 아들의 모습에 내가 더 기분 좋았다. 하나를 찾고 마음의 여유가 생기니 여기저기 많이 보였다. 풀잎사이에, 나무 위에, 바위 위 등 눈여겨보면 그냥 보이는 곳에 숨긴 것이 아닌 숨김을 해 놓았다. 모두에게 보물을 주기 위한 선생님들의 재치였다.  담임선생님과 눈이 마주쳤다. 그동안의 내 모습을 보고 있었을 것 같았다. 민망함이 밀려왔다. 이게 무슨 큰일이라고 목숨 걸듯 주변 살필 겨를도 없이 몰두했나 싶었다. 상품이 그저 학용품일 터인데, 그것을 받기 위해 이리 열심이었을까. 나도 교사이면서, 여기에서는 그저 자식 일 앞에 물불 안 가리는 엄마인 모습을 선생님이 알아차리셨을까.           



교육현장에서 엄마 입장에서 보는 마음과 선생님 입장에서 보는 마음의 차이를 느끼게 되었다. 우리 학교 소풍 때, 행사 순서 중 하나로서 단순하게 여겼던 보물 찾기에 그렇게 열성이던 학부모, 보물을 못 찾았다고 아예 하나 달라던 학부모 마음이 헤아려지는 것이다. 상품이 문제가 아닌 자식이 실망하는 모습에 마음이 아픈 것이었다. 먼지 나는 자리에서 일어서지 않고 질서를 지키는 아이가 엄마로서는 안타깝고, 선생님으로서는 착하고 바른 아이일 것이다. 역지사지해 볼일이었다. 아들을 기르며 엄마로, 교사로 더 성장해 가는 중이었던 게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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