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오후, 학교를 한 바퀴 휘 돌아보러 나간다. 교사 뒤편 토끼장의 토끼들과 눈 맞춤을 한다. 얼마 전 가출했다가 눈을 다쳐 치료하고 귀가시킨 녀석이 다시 가출했는데 요즘 보이지 않는다고 걱정들 하던데, 역시 보이지 않는다. 외부가 안전하다면 자유가 좋지. 주차장을 지나 오솔길로 접어들었다. 9월이 가까이 오니 쓰름매미소리가 높은 곳에서 더 애달프게 들린다. 그렇게 작열하던 열기도 식어가는지 바람 속에 선선한 가을이 숨어 있다. 묘지들을 지나고 밭을 지나 학교가 내려다보이는 언덕배기에 섰다. 석양에 반사된 학교 외벽의 빨강, 초록, 노란 색깔들이 빛난다. 새 단장한 학교 건물이 하늘과 맞닿아 파랗다 못해 눈이 시릴 정도로 돋보인다.
올해는 운이 좋아 시급한 환경개선을 하게 되어 감사하다. 화재에 취약하여 항상 걱정이 앞서던 드라이비트 외벽을 걷어내게 되어 마음도 가볍다. 회색빛으로 칙칙하던 학교 모습을 밝고 화려하게 다듬고 나니 아기자기한 모습으로 변했다. 여름방학엔 소방도로를 냈다. 학교 숲이 소방도로로 잘려나간다는 생각 때문에 망설였는데 공사를 하고 나니 학교 앞이 훤한 게 오히려 잘 되었다. 새로운 것, 변화하는 것에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만큼 뭔가 얻어지는 것이 있음을 새삼 느낀다. 학교 놀이터 개선도 시급했으나 지원을 받게 되었다. 특수학교에 IT 기자재 지원이 있어 수업환경도 현대화되어 가고 있다. 우리 학교 가족들이 간절히 원하니 이루어지는 것 같아 더욱 뿌듯하다.
그에 반하여 과연 우리 학생들의 교육은 잘 이루어지고 있는가 하는 고민이 된다. 특수교육에 왕도가 없다고 하듯이, 학생들의 개별적인 교육 요구를 파악하고 그에 맞는 교육 방법을 찾는 것이 평생 품어 온 의문이고 숙제다. 서 있는 지위마다 다른 숙제인 것 같지만 근본은 같다.
얼마 전 항암수술과 치료가 끝나고 경과를 점검하기 위해 심장초음파 검사를 했다. 검사원이 물었다.
“직장 생활하셨어요?”
“네, 직장 생활하다 정년퇴임 했습니다.”
”어쩐지 빠릿빠릿하세요. “
나이에 비하여 지시대로 ‘빠릿빠릿’하게 따라 움직여 주니 편했나 보다.
”무슨 일 하셨어요?”
”특수교육 했습니다.”
“아유, 힘들었겠어요.”
“아뇨, 재미있었습니다.”
서슴없는 대답이 나왔다. 그런데 기분이 찜찜하다. ‘힘들었겠다’는 말의 의미가 무엇일까. ‘힘들겠다’, ‘좋은 일 한다’는 말을 많이 듣는다. 이 말이 수고한다는 따듯한 표현이라는 것은 알지만, 어느 직업인들 그러지 않을까. 직업인이기 전에 봉사자, 희생한 자라는 인식을 갖는 것이 특수교육을 해온 내 자긍심에 생채기를 냈다. 단지, 특수교육인으로 전문성 외에 더 갖추어야 할 덕목이 있다면 인내와 공감하는 마음일 것이다. 항상 끊임없이 노력해야 하는 부분이다.
검사자의 말에 심란하기도 했지만, 정년 후에도 특수교육을 놓지 못하고 계속 특수학교 법인을 운영하고 있는 것에 대해 재조명해 볼 일이었다. 때로는 항상 머릿속을 채우고 있는 학교 일로부터 해방되기를 바라기도 한다. 그러다 학교에 나가 학생들을 만나면, 이 아이들을 어떻게 더 행복하게 해 주나 정신을 가다듬게 된다. 건강하고 활동적인 에너지로 교육활동을 지켜봐 주어야 할 책임이 막중하다. 그리고 조금 느린 우리 아이들을 길러내는 것보다 더 값진 것은 없다는 생각에 힘을 얻는다. 이 세상에 왔다가 무엇을 남기고 갈 것인가라는 자문에, 가치 있는 일로 마무리한다는 자답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