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정님 Dec 15. 2023

소풍 가는 돼지

돼지 예찬

워, 워, 쭛쭛~

돼지첫 소풍 길.

마을 삼거리에서 아버지와 내가 우리 집 종돈과 한바탕 실랑이를 벌인다.

돼지는 직진하려 하고, 우리는 오른쪽 길로 몰려고 한다. 덩치 큰 돼지가 직진하려고 밀어붙이면 다칠 위험이 있어 내가 삼거리까지만 동행을 다.

이웃 동네에 있는 수컷에게 교미시키러 가는 길이다. 어른들은 이 일을 돼지가 소풍 간다고 했다.  두 번째 소풍 길부터는 아버지 혼자 몰고 가신다. 돼지가 신바람 나서 소풍길을 찾아가기 때문에 수월하게 다녀오신다.

돼지도 어디로, 왜 가는지를 아는 것이다.

소풍을 다녀온 후 110여 일 지나  새끼를 낳는다.

날씨가 추울 때 낳게 되면 보온 때문에 새끼를 방으로 데려온다. 새끼들을 바구니에 담아 젖 먹이러 가면 어미는 젖먹이기 편한 자세로 눕는다.

새끼들은 수유에 좋은 젖꼭지를 차지하기 위한 다툼이 벌어지고, 처음 입에 문 것으로 자리가 고정된다.  어미 머리 쪽에 가까운 젖꼭지일수록 젖이 많이 나온다. 새끼들은 본능적으로 아는지 강한 녀석이 좋은 젖을 차지한다.

사람이 약한 녀석과 자리를 바꾸어 먹여보기도 하지만 결국 약한 녀석은 밀려나고 만다.

새끼들이 젖꼭지 물기가 힘들어 낑낑거리면 어미는 배가 잘 드러나도록 몸을 뒤척여 수유 자세를 고쳐 잡는다. 젖을 먹일 때, 어미는 새끼들의 젖 빠는 소리에 호응하듯 꿀꿀거리지만, 신경이 극도로 예민해진다. 새끼들이 소란스럽게 싸우면 참다가 일어서 버린다. 싸우는 것을 응징하는 것이다.

새끼들도 그걸 아는지 젖꼭지가 정해지면 조용히 먹는 일에만 집중한다. 약해서 밀려난 새끼는 할 수 없이 방으로 데려와 분유를 더 먹인다.

본의 아니게 애완 돼지가 생기는 것이다. 품을 파고드는 것이 애교쟁이다.

새끼가 어느 정도 크면 어미는 젖을 먹이지 않는다.

새끼들이 꿀꿀 보채며 따라다녀도 배를 바닥에 깔고  젖을 물지 못하게 한다.

사람의 젖떼기보다 더 단호하다. 참 매정스럽게 느껴지기도 한다.




집이 비었다가 대문을 여는 소리가 나면 우리 철책에 올라타고 꽥~꽥거린다.

손을 가까이 대면 응답이라도 하듯 입을 갖다 댄다. 일종의 신체접촉이다. 그 까맣고 작은 눈으로 지긋이 바라보며 킁킁거린다. 주인이 온 것을 알아보고 보채니 대견해서라도 밥부터 주게 된다.

주방에서 나온 음식물들에 현미 겨를 섞어서 준다. 그 외 채소 과일 등 농사에서 나오는 것들은 거의

다 먹는다. 소화력이 좋다. 먹이를 많이 줘도 먹을 만큼만 먹는다.

햇살 좋은 날, 마당에 내놓으면 집안을 한 바퀴 뛰어 돈다. 따라가서 등에 올라타려 하면 꽤액~하며 잽싸게 빠져나간다. 뒤란이나 촉촉하여 파기 좋은 곳에 가서 주둥이로 흙을 파고 무언가를 먹는다. 철분 섭취를 위한 것이라고 한다. 집안을 돌다가 물웅덩이나 축축한 곳이 있으면 누어서 엎치락뒤치락하며 논다. 땀샘이 없어 열을 식히기 위해 목욕을 하는 것이란다. 놀고 난 후 호스로 물을 뿌려주면 시원하다는 듯  그대로 맞이한다. 샤워가 끝나면 몸을 흔들어 물기를 털어 내는 데 가까이 있다가는 물세례를 맞는다.

돼지가 마당에서 유유자적 놀고 있는 사이, 우리의 부산물들을 쳐내고 물청소를 한다.

우리에 몰아넣고 짚단을 넣어주면 좋아서 팔짝팔짝 뛴다. 주둥이로 지푸라기를 한쪽으로 모아 두툼하게 잠자리를 만든다. 그러고는 용변 자리, 자는 자리, 노는 자리를 정해서 사용한다.

먹을 자리는 사람이 정해놓으니 제 마음대로 못 해서 안타까울 것이다.      

어느 날 외출했다 돌아오니 새끼가 없다. 새끼가 어느 정도 크면 팔게 되니, 없는 이유야 물어보나 마나다. 섭섭한 마음은 가족들도 마찬가지 일터이니 내색하지 않는다.

어미돼지도 기운이 없다.

‘나보다야 엄마인 네가 더 힘들겠지?’

돼지우리 안으로 들어가 누워있는 돼지를 살핀다.

때가 굵은 생선 비늘처럼 앉은 목덜미를 긁어준다. 그르렁 소리를 내며 귀를 쫑긋 세운다.

마땅해서 귀 뒤도 긁어달라는 것이다.

배를 긁어주면 다리를 슬쩍 들어 손이 들어갈 틈을 만들어 준다. 다리도 긁어달라는 것이다.

새끼를 낳고 젖을 먹이느라 배가 축 늘어지고 말랑말랑한 것이 할머니 젖 같아 가슴이 먹먹해진다.

마음이 편안한지 꼬리를 쭉 빼고 있다. 둥글게 말린 꼬리를 보면 뭐가 불안한가 살펴보게 되는데, 다행이다.

     



'아기돼지'라는 동요가 있다.

'토실토실 아기돼지 젖 달라고 꿀꿀~  엄마돼지 오냐오냐 알았다고 꿀꿀~'

이 동요를 지은 작사자(박홍근), 작곡자(김규환)님께 감사한다.

어쩜, 그리 맛깔스럽고 정답게 잘 지었는지. 그 동요를 들으면 돼지의 젖먹이던 광경이 연상되어 기분이 좋다. 돼지는 깨끗한 것을 좋아한다.

영리하다. 감정도 풍부하고 표현하는 데도 적극적이다. 더러, 돼지를 욕심 많고, 무디고, 미련하며, 게으름의 상징으로 비유한다. 이는 사람이 만들어낸 잘못된 인식이라고 생각한다.

동화책에서도 그러하니 어릴 적부터 돼지에 대한 부정적인 선입견을 갖게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사람이 돼지의 능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지 못한 것은 아닐까 먼저 살펴볼 일이다.  요즘은 사회적으로 동물복지에 관심이 많으니 다행이다. 돼지가 자연스럽게 소풍으로 엄마가 됐으면 좋겠다. 원래의 습성에 맞추어진 환경에서 스트레스받지 않고 행복한 돼지로 살면 좋겠다. 그러면 사람도 함께, 더 행복해질 것 같다.



작가의 이전글 가을 손님의 방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