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잊었을까.
어려서부터 하고 싶었던 것이 있었더라도
그것을 유지하는 것이 여러 이유로 쉽지만은 않다.
나의 인생에서, 그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내가 주변의 상황을 쉽게 받아들인다는 점, 고집불통이 아니라는 점, 호기심이 꽤나 있다는 점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것이 장점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나만 알고 알고 있는 나만의 길을 가는 데에 걸림돌이 되었기도 하다.
자신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은 자기 자신인데, 다른 이들이 정말 진심 어린 조언을 해 주더라도 그건 그들 자신의 기준에서 해 주는 조언인데, 그걸 꽤나 잘 수용해 왔더랬다. 그래서 이래저래 시간을 보내고 몸 상하고 그래서 마음까지도 다쳤던 것이다.
도대체 남들은 왜 저러는 걸까 이해하고 싶어 했고, 이해가 안 가서 내 시간과 수고를 들여 '체험'하고 몸으로 이해하고자 했던 시간들.
또 하나의 이유는,
신기하게도 어느 기간 동안에는 내가 가려던 길을 잊었던 기간들이다.
그건, 어떠한 큰 선택을 해야 할 때들이었다.
-
그중 하나가
학교 졸업 후 바로 일을 할 수 있었던 때이다.
졸업학기 동안에 알바를 하던 한국퓨전레스토랑 사장님이 매니저를 제안하셔서
어디 취업 이력서 한 번 안 써 보고 일자리를 갖게 되었다.
나는 식문화를 써포트하는 디자이너/아티스트가 되고 싶었기에 그 일자리는 정말 나에게 너무나 적격인 일자리였다.
그래서 받아들이고 시작한 일. 심지어 사장님 다음의 직권을 가진 자리를 갖고 그 레스토랑 운영의 거의 전권을 쥐게 되었던 것이다. 게다가 그곳은 베를린 중심가 관광명소였고, 발전가능성이 무궁무진한 장소이자 나에게도 세상 어디서 얻기 힘든 인연과 가능성이었다.
그런데 내가 그 제안을 고민하던 때부터, 일을 하는 그 몇 달간 동안
독일에서 알게 된 한국 주변의 몇 안 되는 어른들은 다들 그 사장님이 급여를 너무 적게 준다고 사장님을 비난하였다. 사실 이래저래 보험비로 나가는 것 생각하면 실 급여는 비슷한데 말이다. 일하는 날에는 사실상 식사도 제공되고(그것도 밥으로, 그것도 내가 원하는 재료를 골라 만들어 먹을 수 있었고), 여러 가지로 내 가게 내 집같이 사용할 수 있는 그런 직장이 세상에 흔하지 않은데 말이다.
한국에서 나의 한인식당 취직 소식을 들은 부모님은 "(외국 유학 석사까지 나온) 니가 어디가 모자라서 그런데에서 일하냐(번듯한 기업에서 일해야지)"고 하시기도 했다.
그런 얘기를 자꾸 듣다 보니, 나도 내가 처음 그 일자리 제안을 수락했을 때의 마음가짐은 어디로 가고, 그 사장님이 하는 일들에 대해 불만이 쌓이기 시작했고 괴로워지기 시작했다. 하루하루 내가 못하게 되고 있는 것들을 생각하며 그를 원망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심지어 그 시기에, 내 평생 관심도 없고 한 번도 거들떠보지도 않던 마음 다스리는 유튜브를 매일 챙겨 듣고 때로는 울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가 잘못한 것 없는데, 그때 나 혼자
주변의 그 '돈'과 '명성'에 중점을 두고 하는 말들에 휘둘려 힘들어했고 이에 몸도 마음도 매우 상했던 시간들.
그때 사장님은, 사실 내가 뭘 해도 허락해 주고, 일일이 따지지도 않고 나를 믿고 많은 것을 맡겨주셨다. 그런 상사 세상에 만나기 힘들 텐데 그런 기회가 이제 평생 어디에 또 생길까.
지금 돌아보니
나도 직원이라도 알바생이라도 맞이하게 되면 그렇게 제안할 것 같고, 그가 나에게 해 주었던 것처럼 그들을 대할 것 같다. 그럴 때 그들이 내 마음을 알아주고 나를 믿고 서로의 인생을 꾸릴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들이 나와 함께 있으면서 내가 그와 함께 있었을 때의 같은 실수를 범하지 않기를.
한국 2025년, 한국은 특히나 돈과 명성에 집착하는 사회이다.
그 10년 전, 그런 조언을 한 어른들은 모두 한국인이었다.
그런 기준으로 살아서, 도대체 행복한가?
아니,
그 기준에 맞춰 살아주려고 하니 몸과 마음이 힘들다.
나는 그들의 기준에 맞춰 살아보려고, 그렇게 해서라도 그들을 이해해 보려고 들였던 시간과 나의 수고가 너무나 아깝다. 그런 것도 인생 배운 것이라고, 전생의 업보라는 식으로 자기 합리화를 하며 위안을 할 뿐이다.
나와 만나는 이들은 부디
나와 함께 지내면서, 나와 한 순간이라도 눈을 마주치는 그 한순간이라도
그 기준의 잣대를 잊고 자신이 원하는 자신으로서 보내는 시간이 되기를 바란다.
(가끔 그는 지금 뭘 하고 있을까 궁금하다. 그는 그때 50대였고, 그 식당은 나름 그의 인생의 마지막의 챌린지였던 것 같다. 그의 인생 마지막 도전이 성공하고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내가 그 일을 그만두게 된 과정은 그의 입장에서 보면 너무나 어이없었을 텐데, 그는 아무 말 없이 나를 놓아주었다. 보통의 사람이라면, 1인기업 사장 입장에서 유일한 직원이 휴가 갔다가 거기 머물러 안 돌아왔으니, 혼자 속상하고 슬프고 황당하고 화났을 것 같다. 그래도 내가 아는 그라면, 잠깐 당황했다가 그저 나를 내려놓고 바라보고 방법을 찾아 또 앞으로 달려 나갔을 것이다.
그러기를 바란다.
나는 지금 그에게 먼저 잘 지내냐고 안부를 물을 용기조차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