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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니 Mar 25. 2023

​-마음의 호수에서 더 많은 고기를 낚는 아들을 보며-

<월든의 2장을 읽고>

월든 2장 (고독)


-자신의 마음의 호수에서 더 많은 고기를 낚는 아들을 보며-


오늘따라 상쾌한 아침이다. 큰 아들이 휴가를 나와 집에 오는 날이다.

"엄마 저 이번 역에서 내려요. 짐이 좀 많네요!"

아들을 빨리 만나고 싶은 마음에 나는 차를 세워놓고 지하철 입구까지 단숨에 달려갔다.

군복을 입은 아들의 얼굴이 보였다.  큰 배낭을 메고 양손에는 쇼핑백을 한 아름 든 채 나를 보며 웃었다.

나는 뛰어가 꼭 안아 주었다.  

아들은 집에 도착하자마자 물건을 꺼내놓고 정리를 시작했다.

쇼핑백의 많은 물건들은 바로 화장품 종류다.  같은 구역 집사님들이 자신을 위해 늘 기도해 준다고 사고 싶은 물품들을 말씀해 주시면 PX에서 사간다고 얘기해 부탁했던 물품들이었다.  거기다 할머니와, 누나, 이모, 동생, 위층 아주머니까지 아는 친인척의 선물을 가득 챙긴 녀석을 보니  '누구 닮아 오지랖도 넓구나' 생각했다. 

아들은 이미 구매자의 품목과 가격까지 정리를 완벽하게 해서 각자의 지퍼백에 담아 정리해 주었다.

거기에다 일반 시중에는 없는 몽쉘통통 딸기맛과자를 PX에서만 살 수 있다며 하나씩 덤으로 넣어주었다.  

오랜만에 집에 오니 살 것 같다며 너무나 행복해 좋아죽겠다는 듯 입이 귀에 걸렸다.

한숨을 돌린 후 자신의 옷이며 신발을 찾아 점검하기 시작했다.

큰아들의 발 사이즈는 작은 아들과 같은 285cm이다.  

윗옷들은 105 사이즈여서 아빠와 동생과 같고, 바지는 허리가 나와 같고, 박스형으로 옷을 입으면 누나와도 같다. 워낙 깔끔한 성격인 데다 패션에 관심이 많은 아이라 아주 많은 옷은 아니지만 고급진 옷과 신발을 가지고 있는 편이다.  군대 가기 하루 전까지 과외로 알바를 했던 아이라 차곡차곡 저축을 하기도 했지만 심사숙고해서 꼭 사고 싶은 필요한 옷들도 신중하게 샀었다.  하지만 아끼는 옷도 보고도 못 먹는 그림의 떡처럼 1년 6개월 동안 사용하지 못하게 되니 모든 물건을 가족과 공유하겠다고 허락한 상태였다.  군대 간 사이 우리들은 큰아들 옷이며 모자며 신발을 모두 제 것인 양 편하게 입고 신었다.

험하게 쓴 옷과 신발들을 보며 서운해하는 감정이 있는 것 같아 "속상하지?"라고 묻자  씁쓸하게 웃고 만다.   "어차피 저는 입지도 못하니까 괜찮아요"라고 말한다.  나는 이렇게 소극적으로 표현하는 아들의 모습이 늘 못마땅하다.  평소 말수도 적은 데다 당당하게 자신의 속내를 드러내고 감정을 좀 더 적극적으로 표현했으면 좋겠는데 쉽게 속을 보이거나 말도 하지 않는다.  나처럼 외형적인 사람은 도통 말을 안 하면 상대를 알 수가 없어  답답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말 걸지 않으면 아마 온종일  말하지 않고 더 편하게 지낼지도 모른다.   나야 그래도 같이 살아 따뜻한 마음과 섬세하고 배려심 있는 것은 알고 있지만,  상하조직으로 힘든 군생활을, 동료들과 친밀하게 서로소통하며 지내야 하는데, 말도 표현도 안 하니 어려움 없이 잘 지낼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이만저만 드는 게 아니다.   이런 나의 걱정에 딸과 막내아들이 한 마디씩 한다. 

"엄마 얘는 사람들과 관계에서 허용 범위가 넓어서 괜찮아요.  다만 어느 땐 일부 자신의 색깔을 정확히 내는 스타일이니  크게 문제없을 거예요." "맞아요".

마치 소로우가 자연에 대해 홀로 고독함을 느끼며 사람에게 느낄 수 없는 더 많은 충만함을 느끼듯 아들 역시 사람에게서 얻는 것보다 자신이 가진 무게 그 자체의 무한하고도 설명할 수 없는 어떤 다른 감정을 가지고 있는지 모른다.  

괜한 걱정일까? 부모도 없이 세상에 홀로 떨어져 있는 듯이 매우 외롭고 쓸쓸해도 맘 붙이고 얘기할 데가 없는 것은 아닐까.  겸손한 자세로 자신을 지탱해 나가는 아들임을 믿는데  나는 또 쓸데없는 걱정을 하는 어리석은 엄마라는 생각도 들었다.   말 없고 표현이 서투르고 자주 고독하면  어떠랴!  고독은 이미 우리에게 친구와 같다 하지 않는가.  고독은 사람과 사람사이에 놓인 거리로 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사람끼리 꼭 같이 있다고 해서 고독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오히려 많은 사람 속에서 더 고독할 수 있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자신을 깊이 고독 속에 빠지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  나의 힘의 원천은 어디서 나오는 것인지.  자신의 지하실을 파는 저장장소는 무엇인지 살피고 찾아야 한다.  아들뿐 아니라 나를 살피는 것도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따뜻하고 순순하고 자애로운 자연 앞에서, 무궁무진한 건강과 환희를 안겨주는 자연 앞에서, 인류에게 무한한 동정심을 가지고 있는 자연 앞에서, 희석하지 않은 순수한 공기를 가치 있게 여긴 소로우처럼  고독 속에 자주 빠져드는 아들을 보며 소로우의 자연의 삶을 탐색하며 오늘도 한수 배우게 된다.    정말 혼자  잘 있을 수 있는 사람이 다른 사람과도 잘 있을 수 있다는 믿음을 가져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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